엔지니어링산업의 구심점,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 수상
“플랜트, 건설산업이 해외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엔지니어링 업계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 뻗어 나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때입니다.”
3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송 대표는 4대강사업·인천신공항·원자력발전소·반월열병합설계 등 국내 주요사업에서 우수한 경험을 거둔, 우리나라 엔지니어링산업의 역사와 함께 해온 산 증인이다. 지난 2006년 (주)창대티이씨를 설립, 수장으로서 국내 엔지니어링산업의 발전을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수행했다. 그 결과 엔지니어링 산업 발전에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송 대표는 지난 10월 개최된 ‘엔지니어링의 날’ 행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을 수상해 주목받았다. 이 외에도 속초시 지자체장 표창, 전력기술인 협회장 표창 등을 수상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기설계 분야에서 기술자로 일하며 한우물만 팠습니다.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어 발전해 온 우리나라는 각각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도 기술인으로서 또 국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한 일원으로 국내 엔지니어링산업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국내외 프로젝트 수행, 기술혁신 기업으로 자리매김
“6년 전 창대티이씨를 설립했을 때 컴퓨터 4대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국내는 물론 몽골·필리핀·베트남 하노이·호치민·인도네시아·라오스·감비아 등 해외에서도 국내외 대기업과 협력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저희는 자체적으로 기술 영작문 해석이 가능하니까요.”
현재 14명의 직원들과 함께 창대티이씨를 이끌고 있는 송 대표는 사내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GRAPHIC 기술을 응용한 SIMULATION 기법 도입과 각종 신기술 접목에 힘쓰고 있다.
송 대표는 “이미 검증된 요소기술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산업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기술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술 파급효과’도 크다”며 “신기술과 접목된 엔지니어링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어가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신규인력확보와 기계설비 및 소방분야업 등록을 하며 ‘제2의 도약’을 시작한 창대티이씨는 최근 국내 대기업 엔지니어링업체와 함께 국내 ‘최초’로 유럽의 조지아에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차관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30년 기술인 인생, 평생 기술자로 남고 싶어
이렇게 지난 30여 년 동안 기술인으로 살아 온 그는 오랜 세월을 거쳐 생긴 기술 노하우와 경쟁력으로 특허 지정 및 신재생에너지, 일반 플랜트 설계, 해외 프로젝트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송 대표는 하수처리장의 배선시스템(등록 제0199531호), 유선 통신수단에 구비된 하수처리장의 제어시스템(2000-0034209호), 폐타이어를 이용한 연약지방 시공방법(등록 제0195280호) 외 다수의 특허를 획득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정 분야나 법을 제대로 몰라 사업을 하면서 손해를 본적도 있지만, 장인정신을 가지고 30년 이상 기술자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해당 기술분야에 관한 고도의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에 입각한 응용능력을 보유한 인재를 우리는 ‘기술자’라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인정받으며 오직 한 길만을 가는 사람을 ‘장인’이라 부른다.
송 대표는 “이제는 기술 분야에서도 장인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직원들에게도 열심히 살라, 혼이 담긴 설계를 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엔지니어링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평생 대표가 아닌 기술자로서 일을 하고 싶다는 송 대표. 그는 기업을 잘 경영해 신규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인의 사명이며 사회 공헌의 한 방법이라며 이를 위해 오늘도 자신 스스로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의 책상 위에는 ‘Think like a man of action and act like man of thought’라는 글이 쓰여 있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