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 1959년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들은 먹을거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천막을 쳐놓고 시작한 은평천사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생을 받치며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가 있다. 바로 조규환 원장(79)이다.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오직 한길, 아이들과 장애인들을 돌보며 달려온 지 어느덧 5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조 원장은 가족의 불만도 있었지만, 내 자식이나 천사원 아이들이나 다를게 없다는 평소 신념대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내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조 원장을 만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나눔과 봉사, 복지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1만여 명의 후원자가 은평천사원 불 밝혀
은평천사원의 설립자는 고 윤성렬 목사(1885~ 1977)이다. 한국전쟁 후 많은 전쟁고아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던 시절 이를 딱히 여긴 당시 75세의 윤 목사가 사재를 털어 천사원을 세웠다. 이렇게 전쟁고아와 함께 보금자리를 튼 육아시설이 바로 은평천사원이다. 이곳에는 현재 결손가정 아동양육시설인 은평천사원, 지적장애인 생활시설인 은평재활원,여성장애인 생활시설인 은평기쁨의집, 단기보호시설인 출소자쉼터흰돌회,모자가족자활쉼터흰돌회 등 생활시설과 여러 위탁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재가 장애인도 하루 1,500명이 와서 교육, 재활치료를 받는다. 이곳에서 중점적으로 하는 업무는 주로 장애인 봉사와 청소년수련관을 통한 청소년 선도, 상담이다. 물론 노인사업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세계 최빈국 아동 지원사업도 사업항목에 추가됐다. 이 모든 선행사업은 모두 후원을 전제로 한다. 조 원장은 “지원을 안 받으면 여러 사업을 못한다”며 “정부 지원이 대락 연간 100억 원 정도”라고 말했다.

과거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80대 이상의 후원자들이 많았으나 우리나라도 경제성장과 함께 OECD 가입국이 되면서 미국 후원자들이 대부분 줄었다는 것이 조 원장의 설명이다. 요즘은 99%가 한국 후원자들이란 얘기다. 은평천사원이 밝힌 후원자는 대략 1만여 명. 이들이 보낸 후원금액은 약 15억~20억 원 정도다. 여기에다 자체 연하장 등 카드판매 사업으로 3~4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들 후원금으로 생활하는 은평천사원 식구들은 구체적으로는 일반고아가 남녀 80명 정도, 장애고아가 70명 정도다. 장애 여자고아가 42명이 있고, 어머니와 자녀 노숙자들이 39명, 어머니가 20명 정도 생활한다. 출소자들도 쉼터에 7명이 기거하며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조 원장 복지철학은 정직·깨끗·헌신봉사“우리 애들 왕같이 모셔”
지난 52년을 이곳에서 지내온 조 원장은 그동안 나름대로 사회복지에 대한 철학이 뚜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하고, 깨끗하고, 헌신봉사하는 것입니다. 종사자들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제일 편해요. 우리 애들을 왕같이 모십니다. 그래야 이들이 커서 나를 왕같이 모셔요. 내가 공부시킨 애들 중에는 의사, 박사, 노벨평화상 수상자, 미국 NASA 소장 등 잘된 애들도 많이 있어요.” 사실 이곳 출신들이 사회에 나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조 원장은 이들을 더 자세히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제는 개인의 명예가 있으니까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와 NASA 소장은 10만 달러를 보내기도 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왕처럼 대해준 결과 이들이 성공해서 결초보은하듯 은혜를 갚다는 것이다.

‘고아들에게도 투자해야 한다’는 조 원장의 이런 신념 때문에 종종 공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은 ‘원장님! 왜 애들 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보냅니까? 직장만 얻어주면 됐지…’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고아들도 공부시키니까 세계적인 박사가 된 것 아닙니까? 사람에게 투자하니까 애들도 (은혜를) 갚지 않아요? 대도 조세영 씨는 IQ가 140이랍니다. 만약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왔더라면 아마 제가 박사 만들어서 사회에 큰 기여를 할텐데 지금 교도소에 16년을 살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애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투자를 했으면 우리 사회나 국제사회에 기여를 할 겁니다”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는 뭐든지 투자해야 한다는 조 원장의 신념은 앞으로도 은평천사원의 미래를 더욱 든든하게 만들고 있다.

반기문 UN총장, 장관시절 장애아 목욕봉사 4번 ‘경의’
조 원장은 최근 우리사회에 부는 기부나 나눔문화에 대한 신념도 확고했다. “내가 건강하고 있을 때 조금이라도 나눠야 합니다. 그래서 전 평생 재산을 안 갖기로 했어요. 퇴직금도 전액 법인에다 기부를 하니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욕심은 끝이 없고, 안갖는다는 마음을 먹으니까 그게 마음 편하고 약자를 도울 때도 마음놓고 도울 수가 있어요” 은평천사원은 사회복지시설이다 보니 요즘 봉사활동 문의가 많다고 한다.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대부분으로, 1년에 몇만 명이 와서 봉사활동을 한다. 또한 삼성그룹 등 대기업 신입사원이나 간부들도 30여 명씩 와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들 봉사자들은 주로 장애아들의 목욕 봉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청소와 빨래 등 잡일과 육아활동,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포함돼 있다. 조 원장은 특히 “모든 봉사활동 중에 가장 힘든 봉사가 애들 목욕시키는 일”이라며 현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일화도 소개했다. 조 원장에 따르면 반 총장은 70년 외무부 공무원 시절부터 중증 장애인들을 목욕시키는 봉사활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조 원장은 “그동안 국장이나 차관들만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반기문 총장은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에도 4번이나 다녀갔다”며 반 총장의 남다른 인간애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도가니’사건? 고아들을 왕같이 모시면 절대 그런 일없어!”
최근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더니 조 원장은 “아직 영화를 못 봤지만 듣고 알고는 있다”고 했다. 심지어 부산에서 전화와서 “거기도 그런 일이 있느냐”며 따지듯 묻는 전화도 걸려왔다고 한다. 조 원장은 “내부 직원들 관리 안하면 그렇게 된다”면서 “저희는 한 달에 한 번씩 전 직원 회의를 통해 정신교육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고아들을 왕같이 모시면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관리자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원장은 우리나라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어가는데 복지예산은 OECD 국가 중에서 밑바닥”이라며 “이제는 정부가 청소년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고 복지정책을 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조 원장의 이같은 지적에는 한국사회 이혼률이 OECD 국가 중 1위,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우리 청소년들이 굉장히 문제가 많습니다. 부모가 이혼해서 결손가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데 정부의 대책은 하나도 없어요. 요새 천사원에 들어오는 99%가 스트레스 받은 애들이에요. 청소년들이 한번 잘못 가면 국가에서 얼마나 돈을 써야 합니까? 100원 투자해야 되는데 앞으로 1천원 투자해야할 상황이 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에 대해서 국가나 사회나 국민도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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