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군 카다피 마지막 요새 함락, 6개월 대서사극 종료

카다피의 마지막 요새가 함락됐다. “리비아 반 카다피군은 지난 23일 오후 총공세를 펼쳐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은신한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를 함락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6개월간 계속 됐던 리비아 시민혁명이 사실상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시민혁명에서 국제전으로
리비아 시민혁명은 거리시위에서 출발해 내전으로, 그리고 다시 국제전으로까지 비화된 6개월간의 대서사극이었다.
지난 2월15일 리비아 제2의 도시인 벵가지에서 출발한 시위는 1996년 아부 살림 교도소에서 발생한 정부군의 학살 사건 때 희생된 재소자들의 유족이 자신들의 변호를 맡았던 페티 타르벨 변호사가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체포되자 경찰서로 몰려가 그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리비아 경찰은 변호사를 석방했지만 주변 두 나라에서 시민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을 접한 리비아인들에 의해 이는 곧바로 42년째 리비아를 철권통치해온 카다피를 몰아내기 위한 투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카다피 정권은 이제껏 해온 방식대로 시위를 유혈진압했고 분노한 시민들이 총을 들며 시민혁명은 내전으로 바뀌었다.
40년 넘게 통치해온 카다피는 성난 시민들에게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2월에는 대대적인 시위대 진압 작전에는 박격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됐다. 뿐만 아니라 무력을 앞세워 반군 거점인 벵가지로 대대적인 반격을 전개했는가 하면 반정부 시위대 배후에 알-카에다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3월17일에는 유엔 안보리가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3월19일 프랑스와 영국이 주축이 되고, 미국이 가세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연합군이 ‘오디세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으로 리비아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커졌다. 이후 반군과 카다피군 간의 전투는 한동안 소모전 형태로 전개되다 6월말 반군 쪽으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반군은 지난 20일부터 트리폴리 함락을 위한 최후의 작전 ‘인어의 새벽’을 전개했다. 23일에는 승리를 위한 최후의 일격이 거행됐다.
반군은 이날 오전부터 ‘찬란한 문’이라는 뜻을 가진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로 진격해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나토군의 공중 지원을 등은 반군은 육상 저지선을 뚫고 요새의 시멘트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요새의 벽이 헐리고 육중한 문이 열리자 반군 수백 명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일제히 요새 안의 땅을 밟았다.
반군들은 금빛으로 된 카다피의 두상 조형물을 짓밟고 발로 차며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했고 허공에 총을 발사하며 요새 장악 작전 성공을 자축했다. 요새 내 깃대에는 반군의 깃발이 새롭게 펄럭였다. 나토군의 집중 폭격과 반군의 지상 작전이 빚어낸 쾌승이었다.
압델 하킴 벨하지 반군 사령관은 23일(현지시각)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카다피와 그의 친구들은 쥐떼들처럼 도주했다”면서 “우리는 트리폴리 전투에서 승리했다. 전투는 이제 끝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요새 내에서 카다피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카다피 일가가 요새 지하에 숨어 있거나 새의 지하에는 2,000 마일에 이르는 대규모 비밀 터널망이 터널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갔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카디피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은 24일 “알-오루바 TV는 ‘카다피는 자신이 요새에서 철수한 것은 전술적인 움직임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알-오루바 TV의 보도에 따르면 카다피는 “바브 알-아지지야는 나토군의 64차례에 걸친 공습으로 이미 초토화돼 있었다”면서 “공격에 맞서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다짐했다.

시속 185㎞ 강풍 동반한 ‘아이린’에 떨고 있는 미국
시속 185㎞의 강풍을 동반한 강력한 허리케인 아이린(Irene)이 미국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아이린이 미국 동부지역에 접근하면서 뉴욕주를 비롯한 6개 주가 대피령을 내려 약 230만 명이 대피했다.
뉴욕시에서는 사상 최초로 ‘의무 대피령’ 25만 명에 대해 대피령을 발령하고 대중교통 운행도 27일 정오부터 강제 정지시켰다. 사상 처음 있는 조치였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전까지 한 번도 의무대피령을 내린 적이 없었지만, 이번 허리케인의 피해는 매우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뉴욕주에서 대중교통이 운행된 것은 2005년 관련 노조 파업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뉴저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7일부터 열차 운행을 중지한 뉴저지는 이와 함께 아이린의 피해가 심각해질 경우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 영업 또한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필라델피아는 교외의 대중 운송 수단만 중단했다.
그런가하면 항공기 운항도 취소됐다. 27일부터 미국 동부지역에서는 약 7,000편의 항공이 운항이 취소,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던 이들의 발이 꽁꽁 묶였다.
휴가를 떠났던 이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26일, 아이린이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자 동부 해안의 여러 도시들이 이에 대비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해변을 찾았던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은 일정을 단축함 대피에 나섰다.
25일 바하마를 강타한 아이린은 27일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 케이프 해터라스로부터 남남서쪽으로 78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아이린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상륙한 뒤 뉴욕주 등을 향해 이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며 아이린의 경로에 있는 최대 5,000만 명이 아이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스캐롤라이나뿐만 아니라 버지니아와 델라웨어, 메릴랜드주 등의 해변에는 대피가 시작됐다. 미 항공사들도 동부 지역 공항으로의 운항 편수를 줄이거나 취소하고 있다. 여행객들에게는 동부로의 여행을 연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당초 아이린의 위력은 3등급으로 발표됐지만 26일 2등급으로 약화됐다. 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확대될 수 있으며 특히 최고풍속 170㎞ 이상의 강풍과 홍수를 동반할 것으로 예보되어 해안 인구밀집지역의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 국립 허리케인센터는 아이린이 미국 동부지역을 지나가는 허리케인으로는 7년 만에 가장 강력한 것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휴가를 떠났던 오바마 대통령도 일정을 단축해가며 재난 대책에 나섰다.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 섬으로 휴가를 떠났던 오바마 대통령은 현지에서 대국민 연설을 발표, “이번 허리케인은 역사적인 파괴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며“허리케인이 지나갈 경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장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재닛 나폴리타노 미국 국토안보부장관과 연방재난관리청(FEMA) 크레이그 퓨게이트 청장, 백악관 참모들로부터 아이린 진행상황과 당국의 대비 상황, 주민들의 동향 등에 대해 보고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재난당국에 긴급 대비 지시를 내리고 휴가 일정을 단축한 것은 지난 2005년 뉴올리언즈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비난을 초래한 것을 의식한 행동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당초 백악관은 지난 18일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일정을 단축하지 않고 예정대로 27일 워싱턴으로 복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26일 오후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유엔 건물로 자살 폭탄 테러 차량 돌진
26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 위치하고 있는 유엔 건물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이 발생해 최소한 18명이 사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폭발물을 실은 혼다 어코드 승용차가 유엔 건물을 향해 돌진, 유엔 정문을 통과해 4층 규모의 유엔 빌딩에 근접해 폭발했다. 목격자들은 이 폭탄 테러로 인해 건물 한쪽이 무너져 내렸으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급진 이슬람무장단체 ‘보코 하람’이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 있는 유엔 건물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고 27일 영국 BBC가 보도했다.
보코 하람의 대변인은 B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6월 경찰 본부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 테러 역시 자신들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테러로 2명이 사망한 바 있다. 
이슬람 성직자인 무하메드 유수프가 2002년 세운 보코 하람은 나이지리아 정부를 전복시키고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기반을 둔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장단체다. 보코 하람이라는 이름도 아랍어로 ‘마호메트의 가르침과 성전 전파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9년에는 이들의 근거지인 나이지리아 마이두구리에서 나이지리아군과 충돌해 보코 하람을 세운 유수프를 비롯한 대원 수백 명이 사실되기도 했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6일, 이번 자살 폭탄 테러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아직 모르지만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반 사무총장은 “이번 공격을 남들을 돕는 헌신적인 사람들을 노렸다. 이들의 무지막지한 행위를 규탄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 있는 유엔 건물에 대한 차량폭탄 공격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

자유의 여신상 보수 봉사 위해 1년간 폐쇄
자유의 여신상이 1년 간 재활에 들어간다.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보수공사를 위해 오는 10월 말부터 폐쇄한다. 켄 살라자르 미 내무장관은 “여신상 내부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보수 공사를 위해 10월28일부터 1년간 여신상 내부의 관람을 중단한다”고 10일(현지시각) 밝혔다.
자유의 여신상은 새로운 방재 규정에 따라 2시간 안에 관람객이 모두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를 갖춰야 하나 지금의 구조로는 내부 계단이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지난해 8월 보수공사가 결정되어 건립 125주년 기념식 다음 날인 10월29일부터 내부공사가 시작된다.
이번 보수공사를 통해 전기설비를 개선하고 계단, 화재 제어 시스템, 엘리베이터, 화장실이 수리될 예정이다. 이 모든 보수공사에는 총 2,725만 달러(약 294억 원)가 투입된다.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 강 입구의 리버티 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우호증진을 위해 선물로 준 것으로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1875년에 만들기 시작해 1884년에 완성됐으며, 1885년 배를 통해 미국으로 이송되어 1886년에 현재의 자리에 서게 됐다. 내부 철골구조물에 대한 설계는 에펠 탑의 설계자인 귀스타브 에펠이, 여신상의 받침대는 건축가 리차드 헌트가 디자인했다. 받침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92m이고, 여신상의 높이는 46m. 여신상은 오른손에는 횃불을 치켜들고, 왼손에는 1776년 7월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 석판을 들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2001년 9.11 테러공격 후 또 다른 테러 목표가 될 우려 때문에 폐쇄됐다가 2,000만 달러를 들여 보안시설을 강화한 뒤 지난 2004년 관광객들에게 다시 개방됐으며, 뉴욕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설치된 왕관 부분은 2009년 7월4일 관람을 재개했다.

갱단의 카지노 방화로 무고한 시민 52명 사망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에 위치한 카지노에서 방화사건이 발생, 최소 5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6일 현지 언론인 밀레니오TV와 외신보도에 따르면, 구조 당국은 25일 사건이 발생한 카지노 로얄레에서 시신 수습작업을 벌여 최소 52구의 시신을 확인했으며, 부상자도 1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밀레니오TV는 자체 통계를 인용해 이번 사건이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 취임 이후 벌어진 가장 최악의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25일부터 사흘간의 국가 추모기간을 선포했으며, 몬테레이에 연방 경찰을 추가로 파견해 치안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칼데론 대통령은 26일에는 방송 연설을 통해 “우리가 진짜 테러리스트들과 맞서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시민에 대한 가장 심각한 공격”이라면서 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낸 카지노 방화참사에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멕시코 당국은 방화사건을 갱단의 소행으로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최소 8명가량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수사 당국은 사고 현장에 군을 투입해 조사에 나서는 한편 용의자 체포에 기여한 정보 제공자에게 240만 달러(한화 25억 9,000만 원 상당)의 포상금을 제공키로 했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날 사건이 발생하기 전 카지노에는 1,000여 명의 손님과 직원들이 있었다. 오후 4시경 괴한들이 카지노에 들이닥친 후 불이 나고 검은 연기가 나자 손님과 직원들이 공포에 질린 채 밖으로 대피했다. 인명피해가 커진 것은 괴한들이 불을 지르기 전 카지노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했으나 겁에 질린 사람들이 출입구 반대편인 안쪽 화장실로 몰렸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페르난도 라라사발 몬테레이 시장은 “많은 시신이 카지노 내 화장실에서 발견됐다”며 “직원과 손님들은 괴한들로부터 도망치려다 참사를 당했다”고 전했다.
멕시코 몬테레이 시민들이 이번 사건에 특히 충격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사건이 멕시코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혔던 몬테레이 부촌지역에서 발생한 데다 희생자 대부분이 갱단과는 관련이 없는 중산층 이상의 평범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무장괴한들이 도시 내 한 술집을 공격해 20명이 숨진 바 있다.

성폭행 혐의 벗은 스트로스 칸, 정계 컴백은 ‘글쎄’
성폭행 혐의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자리에서 물러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총재에 대해 뉴욕 지방법원이 모든 성폭행 혐의 관련 기소를 기각, 스트로스 칸이 사건 3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뉴욕 검찰은 “스트로스 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온 기니 출신의 호텔 여종업원 피사투 디알로의 거짓 진술과 신뢰성 의문으로 스트로스 칸 사건을 계속 진행할 수 없다”며 법원에 기각을 요청했다. 이에 지난 23일 마이클 오버스 뉴욕 판사가 스트로스 칸의 성폭행 혐의 관련 기소를 모두 기각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됐다.
이에 앞서 뉴욕 검찰은 25쪽 분량의 공문에서 “물리적 증거들이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호텔 여종업원 나피사투 디알로를 성폭행했다는 주장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면서 디알로가 거짓말을 반복해 증언으로서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 간 짧은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여종업원의 제복에서 묻어나온 얼룩에 스트로스-칸의 정액이 묻어있었지만 성폭행에 저항할 때 발생하는 상처가 없었다”면서 속옷이 일부 상한 흔적은 일상적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뉴욕 검찰은 증거 불충분 사유와 함께 고소인이 거짓말을 반복한 점도 고소 취하의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고소인이 스트로스-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직후의 복도에 숨어있었다고 말하다 그가 떠난 방에 청소하러 들어갔다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한 검찰은 고소인이 기니에서 미국으로 망명신청을 할 당시 성폭행을 당했다고 꾸며낸 전력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디알로 측 변호사 케네스 톰슨은 이를 강하게 반발했다. “밴스 검사가 법률적, 의학적, 물리적 증거를 깡그리 무시했다”고 담당 검사를 비난한 톰슨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리가 충분하지 않았고 문제가 많았다면서 특별검사 선임을 요청했다. 하지만 마이클 오버스 판사는 “뉴욕 지방검찰의 부적격 성을 드러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특별검사 신청을 기각했다.
성폭행 혐의에서는 벗어났지만 스트로스 칸의 정계 컴백은 사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언론들은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프랑스로 돌아온다고 해도 실제로 정치판에 뛰어들 것으로는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비록 뉴욕 검찰이 스트로스 칸에 대한 소송을 취하한다고 밝히긴 했지만 그가 문제의 여종업원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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