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땅’ 노르웨이 오슬로에 연쇄테러 발생

지난 7월22일 오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중심가. 여름 휴가철에 접어든 까닭에 도심은 한산했다. 오후 3시26분경 굉음과 함께 도심의 건물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노벨평화상으로 낯익은 북유럽 평화의 도시 오슬로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던 것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정부청사 인근이었다. 소형화물차에서 비료와 연료를 혼합해 만든 폭탄이 폭발했다. 이는 지난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탄테러 때 쓰인 폭탄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충격적 연쇄테러
테러의 위력은 대단했다. 17층의 정부청사 유리창이 모두 박살났다. 거리에는 건물잔해와 금속조각, 그리고 서류뭉치로 아비규환을 이뤘고 거대한 먼지 구름이 시내중심가를 뒤덮었다. 이 테러로 7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1시간30분이 지난 오후 5시. 폭탄테러가 발생한 오슬로에서 약 30km 떨어진 우퇴위아섬에서는 10대 청소년과 20대들이 야영을 즐기고 있었다. 집권노동당이 마련한 여름캠프 행사였고, 당초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의 강연도 예정돼 있었다.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1시간 전에 발생한 폭탄테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경찰복장을 한 남자가 작은 배를 타고 섬에 내렸다. 그는 테러 이후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섬에 들어오는 길이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때까지 경찰복 차림의 그 사람에게 의심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경찰복장을 한 남자는 700명의 청소년들을 향해 자동소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들이 비명을 지르며 호수로 뛰어들었다. 이 중 일부는 지하와 산턱에 몸을 숨기거나 죽은 척 엎드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쓰러진 이들을 확인사살하는 한편 호수로 뛰어든 사람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충격적인 총격은 90분 이상 지속됐다. 신고가 접수된 뒤 경찰특공대가 출동하는 데 50분이 걸렸고, 우퇴위아섬을 둘러싼 호수까지 도착하는 데 다시 20분이 걸렸다. 그리고 보트를 구해 섬에 들어오는 데 20이 더 지났다. 헬리콥터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던 탓에 경찰의 현장 도착이 늦어졌던 것이다.
오후 6시20분. 경찰특공대가 섬에 도착했고, 15분 뒤 용의자를 체포했다. 체포 당시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그는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32)라는 노르웨이 남성으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날 테러로 총 77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유럽극우파 청년
이번 테러사건의 용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범행 1시간 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문건인 ‘2083: 유럽 독립선언’을 극우정당 관계자 등 1,000여 명에게 이메일을 통해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평소 극우주의자들과 교류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로써 범행에 직접 관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근 유럽 내에서 만연한 극우이념이 간접적으로 범행에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에서는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앤드류 버윅이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발송한 이메일에서 ‘선언’과 함께 자신이 유튜브에서 올린 동양상 링크 주소도 함께 보냈다. 브레이비크는 “이것은 당신들을 위한 선물이며 아는 사람 모두에게 다시 전달해 주기를 부탁한다” 전했다.
벨기에의 극우정당 블람스벨랑 소속의 한 의원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수신자들 중에서는 이탈리아인, 프랑스인, 독일인 등이 있었지만, 영국인이 가장 많았다”고 밝히고, 자신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블람스벨랑 정당은 브레이비크의 문건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다. 그는 이 정당에 대한 각별한 친밀감을 표시했으며 지도자 필립 드빈터의 “브뤼셀과 쾰른은 이슬람화에 무릎을 꿇고 굴복하는 시장(市長)들을 갖고 있다”는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영국의 인종주의 반대단체 ‘서치라이트’는 EDL과 브레이비크 사이에 상호교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온라인 메시지를 통해 EDL에 “이 대륙에 드리운 사악한 조류인 이슬람화를 되돌리기 위해 유럽은 당신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며” “훌륭한 일을 계속하라”고 격려한 노르웨이식 닉네임을 사용한 사용자가 바로 브레이비크라고 서치라이트 측은 주장했다.
한편 브레이비크 본인은 스스로를 ‘기독교 근본주자’를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기독교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랍권 위성 보도채널인 알-아라비아는 지난 7월26일 보도를 통해 이런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슬림이 테러를 자행했을 경우 이슬람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마련인데, 기독교인의 테러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현재까지 진행된 수사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슬람의 확산에 맞서 유럽의 기독교 시민사회를 수호하려했던 브레이비크의 의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작성한 문건은 제목부터가 기독교가 연관이 있다. 그는 문건의 제목에 대해 “1633년은 기독교군이 이슬람 오스만튀르크 군대를 무찌른 비엔나 전투가 벌어진 해로, 이로부터 400주년이 되는 2083년까지 유럽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기독교계에서는 이런 해석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계 개신교 대표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울라프 트비트 사무총장은 “브레이비크가 기독교인을 자처하고 있다 해도, 이번 테러와 기독교를 결부시키는 것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브레이비크, 뻔뻔함의 극치
현재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브레이비크는 각종 비현실적인 내용을 포함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담당 변호사 가이르 리페스타드는 “브레이비크가 2가지 목록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는데, 하나는 일반 수감자와 비슷한 담배와 사복 등을 제공해 달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부 총사퇴와 일본인 의사에 의한 정신감정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브레이비크가 노르웨이와 유럽 사회체제의 완전한 정치개혁을 요구해왔으며 그 과정에 자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브레이비크는 자신의 정신감정을 명예의 가치와 개념을 잘 아는 일본인 의사에 받고 싶다고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또한 구치소에서 특식과 노트북 컴퓨터 사용을 요구한 데 이어 2개의 다른 소규모 테러조직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리페스타드 변호사는 ”이런 요구사항들은 완전히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며 이런 요구를 한 것은 그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언급했다.
한편 브레이비크가 수감될 것으로 예상되는 오슬로 인근의 할덴 펭셀 교도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관용적인 사법제도와 교도소 운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할덴 펭셀 교도소는 세계에서 가장 호화롭고 인도주의적 교도소라 할 수 있다. 정부가 1억 6,500만 유로를 투자해 지은 곳으로 내부에는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장식되어 있고, 다양한 오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감자 1명이 쓰는 감방 공간은 12㎡이며, 이곳에는 방을 비롯해 거실, 욕실,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아파트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부대시설 또한 화려하다. 학교수준의 도서관과 최고급 녹음스튜디오, 체육관 등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수감자들은 교도소 내에 조성된 숲길을 산책하고 암벽타기 연습도 할 수 있다. 모든 교도관은 비무장 상태이며, 이 중 절반은 여성으로 이뤄져 있다. 교도소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바스퇴이 섬에 있는 교도소는 세계 최초의 친환경 개방형 교도소로 유명하다. 수감자들이 개인용 오두막에서 생활하며, 자유시간에는 승마와 낚시 그리고 크로스컨트리스키 등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농장에서 채소를 기르고 동물을 키우기도 한다.
여느 나라의 교도소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죄수들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노르웨이 교도소가 이처럼 죄수들에게 호사스러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수감자를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재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테러사건을 계기로 살인마에 대한 이러한 처우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노르웨이 국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르웨이 이민자 논쟁 불거지나
이번 테러사건으로 인해 노르웨이 이민자 논쟁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번 참사가 반이슬람주의자의 광기어린 단순 테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7월26일 뉴욕타임스는 이번 테러의 원인을 노르웨이가 지난 수십 년 간 추진해 온 다문화주의 정책에 따른 이민자들의 영향력 확대로 발생한 갈등으로 진단한 바 있다.
노르웨이는 풍부한 석유자원과 낮은 실업률 등으로 안정적인 경제를 누려왔다. 그로 인해 범죄발생률이 매우 낮아 평화의 나라로까지 불릴 정도였다. 이에 따라 1970년 이후 이주 인구가 꾸준히 늘기 시작했다. 수도 오슬로의 서쪽지역에는 부유한 상류층 백인들이 자리 잡았고, 동쪽에는 이슬람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민자들이 차지했다. 이렇듯 원주민과 이민자 사이의 지역적 분열은 감정적 갈등을 내재한 것이었다.
노르웨이 총 인구는 490만 명으로, 이중 11%에 달하는 55만 명이 이주인구이다. 이주민 중 44% 정도는 노르웨이 시민권을 획득해 유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이후 이슬람교도들이 노르웨이로 이주해옴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이슬람교도의 영향력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주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해 노르웨이 사회 전반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주민들은 역사적으로 부유한 나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해왔지만, 상대적 빈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온 이민자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거친 생활에 익숙한 탓에 현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종교적 갈등은 국가정책의 영향으로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오랫동안 다문화정책을 추진해 이슬람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은 금기시해왔다. 이슬람 교도를 비난하면 이슬람 증오자나 인종차별주의자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테러사건으로 인해 노르웨이 다문화 사회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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