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적 병영문화 개선을 통해 근본적 사고예방을

   
7월초 해병대 2사단 강화도 해안초소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해 범국민적 충격을 안겼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4명의 장병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병영악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을 입증이나 하듯 최근 한 달 사이에 군대에서 자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대부분 군대 내 적응문제나 병영 내 병폐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병영 내에서 이러한 전근대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 당국은 그럴듯한 대책과 다짐을 내놓곤 했다. 하지만 매년 비슷한 사건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비극의 악순환은 어디서 출바하는 것일까.
앞서 2005년 6월에는 경기 연천군 최전방 소초 내무반에서 총기난사로 8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행했다.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군수도병원으로 조문은 갔지만 유족은 거세게 항의하며 윤 장관을 밀쳐버렸다. 이후 청와대 직속으로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들고 병영문화 혁신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병영에서 악습과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이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군대와 외국군대는 어떤 점이 다른가. 병영생활의 핵심은 생활관이라 불리는 내무반에 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내무반 생황의 부조리에서 갈등이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군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계급이 낮은 병사들에게 내무반은 휴식공간이 아니다. 사생활을 반납한 수용공간에 가깝다. 이는 어쩌면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남긴 지독한 잔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현재 일본 자위대에서는 이러한 악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합’이라는 일본군 용어가 ‘얼차려’로 바뀌는 데 40년이 걸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절대다수의 병사가 훈련이 힘든 게 아니라 내무반 생활이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혹자는 “군대에 사생활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사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군대는 오히려 조직의 근본 목적과 존재 이유가 왜곡되기 십상이다. ‘훈련은 힘들게, 생활은 즐겁게’라는 강한 군대의 모토는 ‘훈련은 적당히, 생활은 힘들게’라는 뒤틀린 병영문화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이 지침을 통해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효과는 그때뿐이다.
우리군은 장병이 사생활을 누릴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고수한다. 군대는 흡사 교도소처럼 사생활과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조직이며, 그래야 상명하복의 군 기강이 바로 선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무엇이 강한 군대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대전의 성격과 첨단 무기체계는 뛰어난 전문성, 용기를 지닌 수준 높은 전투원을 요구한다. 오늘날의 한국군이 유사시 치러야 할 전쟁은 옛 일본군의 태평양전쟁도, 1950년대 6·25전쟁도 아니다. 이른바 ‘4세대 전쟁’을 수행하려면 가장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병사가 필요한 새로운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를 무시한 채 오랜 고정관념과 자학적 인간성에 기초한 잘못된 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진화를 가로막고 약한 군대, 지는 군대로 가는 첩경이나 다름없다. 이 점을 간과하면 한국의 징병제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기가 곧 닥쳐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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