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실용적인 예술 작품을 창조하다”

맥간(麥稈)공예는 문자 그대로 보리의 줄기를 이용한 공예다. 보릿대의 한쪽을 쪼개 편 후, 도안에 맞게 접착해 오리거나 모자이크처럼 순서대로 붙여 투명한 칠을 입히는 독특한 기법을 자랑한다. 패널 위에 자리 잡은 보릿대의 고운 결들은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빛을 뿜으며 공예가의 뜻에 따라 잉어가 되었다가, 미인이 되었다가, 호랑이도 된다. 파스텔 톤의 은은한 황금빛이 신비스러운 맥간공예는 조명의 굴절과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입체감과 질감, 색감이 변한다. 한 작품이 공명하듯 다양한 감상을 전해주는 맥간공예는 1980년, 백송 이상수(맥간공예연구원 원장/이하 백송) 선생에 의해 창시되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공예계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다

소설가 이외수는 자신을 기인이라고 칭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펜 하나로 50여 년간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송은 엄청난 기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고안한 공예 기법을 통해 작품 활동을 펼치면서 30여 년 동안 ‘배를 곯지’ 않는 것만도 기이한 일인데, 100여 명의 전수생과 수만 명에 이르는 수강생에게 맥간공예를 전수해 공예계의 새로운 장르를 마련하고 있으니 그는 기인을 넘어서 지략가로 통할만 하다.

백송은 “70년대만 해도 보리는 어디서든 만질 수 있었고, 구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른들은 ‘환쟁이’가 되면 굶어죽는다고 하셨죠. 그렇게 꿈을 접고 살던 제 눈에, 어느 날 보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남들과 다른 특별한 예술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것이 맥간공예의 시초입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보릿대는 흔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 이외에도 눈과 비를 맞아도 썩지 않아 고유의 빛깔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백송은 보릿대를 마주하게 된 그 날부터 3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법 연구에만 매진했다.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잠자는 시간을 쪼개 연구를 거듭하던 그는 1983년 맥간공예 기법을 이용한 첫 실용신안 특허를 취득하게 된다.
이후 백송은 보릿대 잇기, 장식판 제조용 무늬지를 만드는 도안 등 맥간공예 기술에 관한 실용신안 특허를 5개 이상 보유한 맥간공예 ‘장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난해 12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수여하는 ‘제 30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 연희 및 전통부분에 선정되어 작품성과 예술성,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백송은 “공예라고 하면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없다면 대중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석함, 찻상 등의 생활용품은 물론 액자, 병풍, 테이블 등에도 응용할 수 있는 맥간공예는 실용적인 면과 심미적인 기능까지 갖춘 예술작품입니다”라고 말하며 진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수요에 따라 그에게 많은 ‘유혹’이 찾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가구를 제작하는 업체에서 제휴를 청하며 맥간공예를 상품화 해보자는 제의가 물밀듯 밀려들었지만 백송은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 백송이 진정 원하는 것은 상품화된 대중화가 아닌 품격 높은 생활 공예화이기 때문이었다. 백송은 예술성을 지향하는 고품격 작품 제작을 원칙으로 하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로 결심했고 이 소신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백송은 맥간공예 뿐만 아니라 금박 공예, 레인보우 아트 등 다양한 기법을 연구하며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그의 작업실인 맥간공예연구원을 찾았을 때 그는 승천하는 용을 보릿대가 아닌 금박으로 패널에 표현하고 있었다. 금빛 일색의 용은 보는 이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압도했다. 그는 “처음 맥간공예를 연구할 때 금박을 이용한 기법도 연구를 했지만 금이 워낙 귀했던 시절이라 재료로 활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재료로 활용할 금박을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 됐으니 금박 공예 기법을 이용한 작품으로 개인전을 낼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가 새롭게 고안한 레인보우 아트는 필름이 덧대어진 종이 뒷면에 여러 차례 칠을 먹여 특수한 효과를 내는 공예 기법이다. 자개와 맥간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특수 재료인 ‘레인보우 페이퍼’는 원단으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되고,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 또한 절약할 수 있어 높은 예술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화를 펼칠 수 있는 획기적인 공예 기법으로 현재 특허출원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레인보우 아트는 맥간공예와 마찬가지로 빛과 각도에 따라 드라마틱한 감상이 가능하다. 

맥간공예의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

현재 맥간공예는 백송의 공예 기법을 전수받은 전수생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 중인 예맥회를 통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예맥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맥간공예 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맥간 강사활동을 펼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전국에 12개 지회를 두고 공예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예술적인 감각을 타고난 사람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조금만 연습하면 실용화된 공예품을 완성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맥간공예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예맥회는 몽골에도 지회가 마련되어 있어 맥간공예의 저변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예맥회의 상임고문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백송은 자신의 뒤를 잇는 제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맥간공예를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맥간공예의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공예제작 수준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맥간공예의 세계화를 위해 일본에 진출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하며 일본에서 예술성을 인정받고 난 뒤에는 일본과 문화교류가 활발한 프랑스에도 자연스럽게 맥간공예를 소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한편 국내에서도 맥간공예가 위상을 떨칠 수 있도록 후진양성에 증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백송은 맥간공예를 학문으로 정착시켜 ‘맥간공예학과’등의 관련 학과 신설로 이뤄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는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 역시 백년대계라고 말하며 심미적인 완성도와 실용성까지 갖춘 맥간공예를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정립돼 백년 뒤에도 맥간의 명맥이 이어지를 염원한다.

30여 년전, 백송의 손에서 태어난 맥간공예 기법은 이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백송의 예술적 아집의 긴 세월동안 쌓아온 공로다. 앞으로도 한 평생, 맥간공예의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백송. 황금빛 물결을 가득담은 보리가 전 세계에 펼쳐질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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