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이끄는 김을동 의원

시대는 강물처럼 거대하고 또한 거세게 흐르는 법이어서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뜻밖의 홍수는 그 흐름을 관찰하고, 대비하는 것을 게을리 할 때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이는 손바닥으로 길어 올린 한 줌의 물일지언정 끊임없이 시대의 수위와 탁도(濁度)를 확인해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우리 역사에는 홍수가 많았다. 흙탕물 가득한 물줄기가 끼어들어 물길을 바꾸고 민가를 범람했던 일이 잦았던 것이다. 임진년의 비극이 그랬고, 치욕의 36년이 그랬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시신조차 찾지 못했던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2011년 대한민국은 반만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당당한 자주 독립국으로 건재하고 있다. 역사에는 우연이나 행운이 통하지 않는다. 그만한 이유와 희생이 있을 뿐이다.

시대를 읽는 눈, 시대에 맞서는 힘

북만주를 내달리던 시린 장백을 넘어 진격하는 깃발이 있었다. 그리고 조국과 민족의 사랑으로 갑옷을 두른 청년들이 있었다. 그 선두에는 언제나 백야 김좌진 장군이 있었다. 그는 흙탕물로 넘실대는 강에 띄운 거대한 함선이요, 장엄한 철갑선의 꼭대기에 나부끼는 깃발이었다.
백야 장군은 홍수로 아수라장이 된 역사의 강물을 거스르며 전투를 벌였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는 이를 산발적이고 조악했던 게릴라전으로 묘사했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백야 장군이 직접 설립한 여러 무관학교를 비롯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신흥무관학교 등을 통해 체계적인 군사훈련이 이뤄졌고 용맹스런 군사들이 배출됐다. 따라서 36년 동안 이뤄졌던 것은 무기력한 식민지배가 아니라, 명백한 전쟁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청산리 독립전쟁의 승리는 할아버지의 가장 큰 업적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단지 무관(武官)의 리더십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장군의 손녀 김을동 국회의원(미래희망연대)의 입을 통해 듣는 백야 장군의 면모는 새삼스러운 생명력으로 되살아났다. 김 의원의 집무실 벽에 걸린 영정을 다시 한 번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백야 장군은 안동 김씨 집안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문과보다는 무과에 밝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상 역시 범상치 않아 당대의 어느 선비보다도 깨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할 줄 아는 선비였다.

“17세 되던 해에 집에서 거느리던 모든 노비들을 불러 모으시고, 노비문서를 한 장 한 장 모두 불태우셨다고 합니다. 또한 가산을 모두 정리하신 후 독립전쟁을 하는 과정에서도 독립군이 머무는 곳마다 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울수록 구국정신을 키우고 결집할 수 있는 민족교육이 절실하다는 그의 신념도 그렇게 완성되었다. 이는 전략과 전술에 능한 무관을 넘어 사상가로서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20년대 말, 독립군들이 사상적으로 분리돼 혼란스러워 할 때에도 오로지 조국과 민족의 독립만을 위해 애쓰다 돌아가실 정도로 흔들림 없는 민족주의자이셨습니다.”
김 의원은 이렇듯 백야 장군이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안목과 사상을 가지셨기에 불온한 시대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추정했다.

역사에서 우연이나 행운은 없다 2011년 백야 장군은 없다.

하지만 시련을 겪었을지언정 결코 실패하지 않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건재하다. 이는 고스란히 그를 비롯한 이름 없는 영웅들 덕분이다. 다시 말하건대 역사에는 우연이나 행운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물줄기는 바르게 흘러가고 있는가. 또한 그 물은 얼마나 맑고 투명한가.
“역사는 국가와 민족의 혼이자 미래를 창조하는 밑거름입니다. 주변국의 역사왜곡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체성을 가다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집에서 직접 담근 오미자차를 손수 내오던 자상한 김 의원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한국사 교육을 선택 교과서로 전락시켰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포함시킨 정부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대목에서였다.

실제 김 의원은 ‘한국사교육 선택화’가 발표되자마자 국회에 관련 법안 6개를 제출했다. 모든 교육과정은 물론 공무원시험 등에서 국사를 필수화시키자는 골자였다. 일단 정부 정책의 번복으로 교육과정은 원래대로 되돌려 놨지만, 김 의원이 제출한 법안들은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총탄만 없을 뿐이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였으나 ‘나’를 먼저 살펴야겠지요. 그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김 의원은 임기 내에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 흔한 반지 하나도 끼지 않은 그녀의 손에서 눈부시고 웅장한 바람이 이는 듯 했다.

강물 위의 사람들 그리고 핏줄

얼마 전 한 유명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 착용자 출입금지 정책’을 펼쳐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김을동 의원은 고운 한복차림으로 국회 상임위원회에 참석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오늘 한복을 입고 그 뷔페에 가려고 한다’는 말로 좌중의 웃음보를 터트리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정치면 가십기사로 읽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지난 삶과 현재의 활동을 연관 지어 다시 이야기하면 웃음기가 싹 사라진다. 김 의원은 독립운동가 자손으로서 겪어야 했던 경제적 어려움과 국회의원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두한 의원 장녀로서의 역할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때론 배고픔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의 몫도 해내야 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부자로 살고, 독립운동을 하면 대가 거지로 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격이었다. 이는 비단 김을동 의원 가족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성파 배우로 자리 잡은 후 김 의원의 신산스러웠던 삶에도 제법 달콤한 훈풍이 불어 왔다. 경제적인 여유와 사회적 명성,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백야 장군의 손녀요, 정치협객 김두한 의원의 딸이었다.

“가산을 털어 할아버지의 기념사업회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 그 말 못할 고생을 아는 사람들은 다들 말렸죠. 하지만 그것은 운명이었습니다. 저는 백야 장군의 손녀요, 김두한 의원의 딸이니까요.”
역사는 강물처럼 흐른다. 그 위에 사람이 흐르고, 사람 속에는 뜨거운 피가 흐른다. 그녀가 운명이라고 표현했던 그것은 아마도 몸속에서 대대로 흐르고 있는 그 뜨거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념사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20여 년 간 배우로 벌어들인 전 재산이 바닥났다. 급기야 월세방으로 옮겨야 하는 기막힌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결코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장 몇 달 뒤에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월세방으로 짐을 옮겨야 하는 처지를 맞이했으니 오죽이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김 의원의 아들인 배우 송일국 씨가 드라마 ‘주몽’에 출연하며 소위 ‘대박’을 터트린 것이었다.
“이 기특한 녀석이 벌어온 돈을 고스란히 제게 내밀며 기념사업회 일을 위해 써달라는 겁니다. 한참을 끌어안고 울었지요. 기념사업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할아버지의 뜻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즘도 송일국 씨가 기념사업회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앞장 서 줘서 든든함을 더한다고 했다. 매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9박10일 간의 청산리역사대장정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김 의원은 깃발을 들고 맨 앞에서 걷고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그럴 수 없이 흐뭇하다며 웃어 보였다.
역사는 흐른다
인터뷰는 4.27재보선이 지나간 얼마 후에 이뤄졌다. 여야가 선거의 후폭풍에 휩싸여 여의도는 아수라장에 빠져 있는 형국이었다. 국회의원회관 7층, 김 의원의 사무실도 바빠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정쟁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정치적 현안들이 민감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국민을 대신해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진정 바빠 보였다. 권력과 주도권을 중심으로 한 정쟁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심각합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울릉독도해상국립공원 신규지정’이 시급한 이유이지요. 신규지정 요청서를 제출한 상태이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18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 하나라도 더 해내려면 더 힘을 내야죠.”
여기 인간 김을동이 있다. 이는 여성이며, 국회의원이다.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이며, 톱배우 송일국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는 백야 장군의 손녀이며, 김두한 의원의 딸이다.
이 많은 타이틀을 짊어진 그녀가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그녀가 짊어진 것은 멍에가 아니라 명예다. 스스로를 빛내는 명예가 아니라 민족정기를 계승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명예다. 그것은 다행히 찬란하고 빛나게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산물이나 흔적이 아닙니다. 오늘을 지탱하는 힘이며, 내일을 위한 반석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시대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것들이 홀대받는 시대, 역사를 더욱 소중하게 보듬고 되새겨 봐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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