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노조 서로 고소·고발, 49일 만에 노사협상안 합의하고 현업 복귀

 

하루 점심값 300원. 수십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 대학교의 청소노동자들이 받았던 금액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쓰레기 먼지를 마시고 받은 월급은 75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마저도 빼앗겼다. 갑작스러운 해고에 억울하고 분한 그들은 총장실을 점거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그렇게 한겨울 살을 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49일. 드디어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1월2일, 홍익대학교는 그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해 온 미화·경비직노동자 170명을 해고했다. 예고도, 설명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해고조치였다.
하루 일을 시작하려던 청소노동자들에게 학교 직원들은 “이제 우리와 상관없으니 집에 가라”면서 대기실의 열쇠를 반환하라고 말했다. 경비노동자, 시설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근무지의 비밀번호가 갑자기 바뀌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은 노동자들의 아우성에 학교 측은 용역업체가 계약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학교 측이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세우며 용역업체의 계약 포기를 유도했다”고 맞섰다.

실제로 홍익대는 용역업체와이 계약과정에서 낮은 용역단가와 단기적인 용역계약 연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홍익대가 용역업체를 상대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와 단 3개월뿐인 용역계약 연장을 요구했기 때문에 용역 업체가 계약을 포기한 것”이라고 노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노조 결성 한 달 만에 해고

그동안 홍익대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미화업무)에서 24시간 맞교대(보안업무)로 근무하면서 잔업이나 야간수당, 상여금도 일체 받지 못하며 월급 75만여 원을 받으며 일 해왔다. ‘쌀 값’ 명목으로 받은 한 달 점심값은 고작 9,000원. 하지만 학교 측의 부당한 처우를 더 이상 참다못한 이들은 지난해 12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약 한달 뒤, 이들은 해고당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해고에 140여 명의 노동자들은 1월3일 오전 9시, 평소 일하던 근무지가 아닌 총장실로 향했다. 홍익대 본관 6층에서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이들은 무기한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준비위원회(이하 공공노조)는 1월3일 성명을 통해 “해고된 170여 명의 노동자들은 기대에 차 있어야 할 새해 첫 출근을 학교점거 농성으로 보내고 있다”면서 “대학은 매년 용역업체에 책임을 돌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라도 노동자들의 정당한 목소리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공공노조는 연세대와 고려대도 지난해 12월 청소노동자들 모르게 용역업체를 바꾸기 위해 입찰설명회를 진행하려고 했다가 노조의 항의로 무산된 바 있다면서 “당시 노조는 기존 용역업체와 노동조건과 관련한 집단교섭을 진행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와 고려대뿐만 아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들도 지난해 10월29일, 학교가 느닷없이 용역업체를 바꾸는 바람에 9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통보를 받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도 이들은 삭발, 학교 점거농성 등을 벌여 학교의 고용보장 약속을 받아냈다.

 

공공노조는 무엇보다 해마다 이 같은 일이 많은 대학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한양대, 연세대, 성신여대 등의 청소노동자들 역시도 해고위기에 놓였다가 점거농성 끝에 가까스로 고용보장을 약속 받고 해고를 면했다. “설상가상으로 학교는 용역업체 변경을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밝힌 공공노조는 홍대 청소노동자들도 지난해 12월2일 노조를 결성했다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해고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학이 직접 나서서 이들의 고용을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점심값 월 9,000원, 대체인력에는 일당 7∼10만 원

한편, 홍익대는 1월5일부터 이들 노동자들을 대체인력을 투입했는데, 청소인력과 경비인력에게 각각 일당 7만 원과 1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또 한 번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에 홍익해 교수노조는 “해고한 기존의 노동자들에 비해 몇 배의 인건비를 주고 있는 대목에서 홍익대가 예산절감을 위해 계약을 파기했다는 주장은 그 설득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교수노조는 “자칭 지성의 전당이요 인재를 양성한다는 대학에서 간접고용에 대한 폐해가 발생했다는 데에 우리는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홍익대의 이번 조치를 보면서 재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아무리 사소한 이익을 위해서라도 상대가 약자이면 더욱 안심하고 짓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홍익대는 지금 몸으로 가르치고 있는 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점거농성 과정에서 1월11일에는 학교 측이 이숙희 분회장 등 노조 관계자 6명에 대해 업무방해와 건조물 침입, 감금 등 혐의로 수사해달라며 마포경찰서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대해 홍익대 관계자는 “노조가 본관의 사무처와 로비 등을 장기 점거하고 한때 총장까지 감금하며 정당한 업무를 방해해 대응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숙희 분회장은 “노조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이며, 조합원끼리 단결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급기야 1월27일에는 노조가 홍익대 재단 이사장과 총장 등을 최저임금법 위반 및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서부지검과 고용노동부에 고소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던 노동자들과 학교는 2월20일 극적으로 노사협상안에 합의했다. 점거농성을 벌인 지 49일만의 합의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튿날 현업에 복귀했다.

 

참여연대는 2월21일 “‘월 75만 원과 하루밥값 300원’으로 대변됐던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는 간접고용의 문제점에 대한 많은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이끌어냈다”면서 특히 고령·여성·비정규직이라는 삼중고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진행된 투쟁이 이번 타결의 큰 원동력이 됐으며,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를 계기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확대되고 간접고용에 만연해 있는 위법·탈법행위가 근절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기존보다 130원이 많은 시급 4,450원으로 인상됐으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1일 8시간 근무, 주 5일제가 명문화됐다. 또한 초과근무를 할 경우 시간외수당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식대도 올라 월 9,000원에서 5만 원으로 인상됐으며, 5만 원의 명절상여금도 받기로 했다. 그 밖에도 총 1.5명의 노조 전임자를 두기로 합의했으며, 노조사무실 마련을 위해 업체 측에서는 학교 측에 협조요청을 하기로 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이번 투쟁은 사회적으로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태를 근본적으로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이 같은 간접고용이 갖고 있는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열악한 근무환경, 만연해있는 위법·탈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관련부처의 제도개선과 점검 노력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우선,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을 강요하는 ‘최저낙찰제’에 대한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면 원청이 하청과 계약해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사항이 아닌 경우는 용역계약 해지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소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인 원청이 직접 나서야만 간접노동자들의 불안한 고용문제와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한 참여연대. 따라서 청소나 시설 관리처럼 상시근로에 대해서는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는 것과 ‘사용자’ 개념을 근로관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지배하고 있는 사람으로 확대하는 제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을 주장이다.

‘제2의 홍익대 사태’ 줄줄이 예고

절반의 승리를 거두며 홍익대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에 속한 고려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이 8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서 ‘제2의 홍익대 사태’를 예고했다.
860여 명에 달하는 이들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정하게 된 것은 단체 협약에서 임금에 대한 노사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올해 임금을 현재 받고 있는 2011년도 법정 최저임금인 시급 4,320원에서 생활임금 수준인 5,180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미 최저시급이 5.1% 인상된 상황에서 다시 시급을 5,180원으로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1년간 20.1%나 되는 임금상승률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 청소노동자들은 또한 직원들의 휴게공간과 노동자성 인정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러한 사안은 용역업체가 아닌 학교 측과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렇듯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이들은 2월2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 조정신청을 접수했지만 3월7일에 열린 최종 조정회의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파업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류남미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대학 측에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사태 해결의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했으나 연세대 관계자는 “학교는 용역업체와 계약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면서도 “연간 20%가 넘는 임금 상승은 학교가 감당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단 학생들은 노동자들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전국학생행진 측은 “고대, 고려대병원, 연세대, 이대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3월8일 경고파업을 벌이면서 최저임금의 비현실성을 폭로하고 생활임금 쟁취를 요구해왔다. 건물을 깨끗이 하기 위해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아버린 그들의 요구는 해왔던 노동에 비하면 소박한 것이었다. 물이 새고 좁디좁은 휴식 공간이 아니라 따뜻한 공간에서 밥 한 번 먹고자 했을 뿐”이라면서 “학교는 노동자와 업체 간 갈등의 실질적인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학교 측은 자신들이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면서 시급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황당한 주장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청소하는 공간은 모조리 ‘학교 본부’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사실상 업무지시와 임금, 해고도 모두 학교 본부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계속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발뺌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친다는 대학교가 ‘진짜 사용자는 학교 본부’라는 평범한 진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힌 전국학생행진은 “이번 파업의 책임과 이유는 바로 학교 본부에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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