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가곡문화 열고 있는 주인공

   
시대 정서의 변화에 따라 우리 가곡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일고 있다. 근자에 가곡의 새로움을 위해 소재 개발, 창법, 생활화 등을 아우르는 본격적인 가곡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이가 있다. 평생 음악가로의 삶을 살아오며 한국 가곡의 중흥을 이끌고, 가곡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박범철 교수. 성악가(테너)로서의 자질과, 후진양성에 힘쓰며 여러 단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 그리고 베풀 줄 아는 아량을 지닌 인물이기에 그의 인생에 더욱 관심이 가고 만나보고 싶었던 인물이다. 편안한 미소에서 풍겨져 나오는 인자함, 그리고 부드럽고 여유 있는 모습. 그를 만나 가곡과 함께 걸어온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가곡을 대중화하는데 선구자적 역할

박범철 교수는 국내외에서 독창회(13회), ‘사랑의 묘약’, ‘토스카’, ‘나비부인’ 등 40여 회의 오페라 주역, 오라트리오 ‘메시아’ 등 미사곡 테너 솔리스트로서 50여 회에 출연했으며 러시아 및 일본을 포함한 국내외 가곡과 아리아의 밤 순회공연 등 500여 회에 출연했다.
또한 그는 1991년도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고, 러시아 유학시절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페페르부르크오페라단이 공연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주역으로 데뷔했다. 특히 세계적인 성악가들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레닌 필 대강당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독창회를 가질 만큼 두각을 드러내며 라뻬츠코프스키 국제콩쿨 1위, 전국성악경연대회 우수상 입상, 러시아 국립 생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협연 등 수많은 수상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같이 화려한 경력은 음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음악가로서의 음악적 역량과 가치추구에 대한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악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은 그가 성악가가 아닌 가곡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우리 가곡은 예로부터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답고 친숙한 선율로 되어있고 가곡 안에는 우리의 멋과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가곡에 대한 청중들의 애착이 식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즉, 가곡이 점점 불려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곡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선입견을 없애고 침체된 가곡을 되살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가곡을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열린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1998년도에 박범철 가곡아카데미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는 가곡을 대중화 시킨 첫 주자로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곡전도사라고 칭하고 있다.

그는 박범철 가곡아카데미 이외에도 대구성악아카데미 회장, 나토얀오페라단 단장, 영남이공대 평생교육원 초빙교수 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우리나라 가곡 대중화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성악가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악가의 삶을 살기보다 가곡을 가르치는 교육자 삶에 더 치중한 그에게 그때 그 선택이 다소 후회되진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후회해 본적은 없습니다. 가곡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교육자의 길의 선택한 것인데 예전보다 가곡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특히 가곡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매우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현재는 대구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까지 퍼져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가곡의 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

   
각박한 삶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곡을 통해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박 교수는 “가곡아카데미는 일반인에게 재미있고 쉽게 가곡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만큼 우선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가곡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즉, 가곡은 다른 사람 앞에서 뽐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가 가곡을 재미있게 느끼고 즐길 줄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곡도 가요처럼 일상에서 언제나 흥얼거리고,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라며 “가곡은 알면 알수록 가슴속에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깊어지고 가사 또한 주옥같아서 가곡에 대한 조그만 관심에서 찾아 온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난 후에는 가곡 마니아가 됩니다. 가곡은 빠르고 자극적인 현대사회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정체성을 찾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가곡을 통해 국민들은 정서순화와 함께 우리글과 말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우리의 영혼을 고요하게 치유하고 아름다움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가곡교육의 키워드는 진정으로 가곡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범철 가곡아카데미는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주부에서 직장인, 교사, 의사 등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직장을 가진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학창 시절 성악가를 꿈꾸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꿈을 접어야 했던, 노래가 좋아서 혹은 노래를 배우고 싶어 모인 사람들. 오로지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 아카데미는 가곡 관한 이론 등에 대한 특강, 공개 레슨 등으로 알차게 꾸며지고 있으며 가곡에 관심이 있는 애호가는 물론 음악전공자들로부터도 호평을 받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까지 아카데미를 거쳐 간 회원만도 천여 명이 넘는다. 현실적으로 일반인들이 가곡레슨을 받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박범철 가곡아카데미가 가곡 대중화의 산실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교수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박범철 가곡교실을 열고 잘 알려져 온 한국의 고전 명가곡들을 중심으로 교육했다. 그러자 배우는 회원들의 호응은 높아만 갔고 가곡교실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가곡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8년 30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가톨릭대학 평생교육원의 가곡교실은 모집정원을 늘리고 반을 늘려야 할 정도로 회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이후 경주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대구 북구, 영남대학교, 영남이공대학, 경산시지가곡교실,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대구 나토얀 뮤직아카데미 가곡교실로 점차 확대되어 갔다.

박 교수의 수업이 대단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수업 자체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박 교수의 마인드 때문이다. 수업자체가 ‘예술의 장’이고 ‘무대’라고 말하는 박 교수는 음악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는 배우는 사람들과 자신이 즐기는 음악을 공유한다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한다고 한다. 즉,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는 그의 교육신념에 따라 음악을 재미있게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그 또한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겁다고 얘기한다.

   
박 교수는 “계속되는 수업으로 힘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곡을 배우러 오는 회원들을 보면 힘든 것도 잊게 됩니다. 가곡 배우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싫은 기색,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회원들이 항상 곁에 있기에 제가 지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박범철 가곡아카데미 회원들은 매년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며 가곡을 통해 연주자와 청중이 모두 즐거워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박 교수의 지도를 받은 몇몇 회원들이 독창회 등을 갖기도 한다. 특히 지난 2008년에는 가곡아카데미 10주년을 기념하는 ‘가곡의 밤’ 특별공연을 열기도 했다. 이날 복도와 계단까지 1,000여 명의 관객들로 가득 찬 음악회장은 아름다운 선율과 회원들의 열기가 하나 되어 낭만이 어우러진 감격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가곡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많은 공연을 준비하고 펼쳐나갈 계획이다.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진정한 음악인

성악가는 무엇보다도 무대에서 빛이 나야한다. 즉, 테너 박범철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음악을 통해 나 자신은 물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감동의 무대를 펼치는 사람이야 말로 빛이 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대의 화려함, 그 이면에는 나의 음악이 남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고독한 자기단련을 통한 노력과 실력이 전제된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선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찬란한 금빛소리로 여전히 무대를 들뜨게 하는 비결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또한 “음악의 즐거움을 맛보고 그것을 택했다면 좋은 음악가가 돼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좋은 음악가란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즐길 줄 알고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만 어떠한 음악을 하든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기본기에 충실해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것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그 과정들의 결과물이 좋은 음악으로 나오게 되고 이때 본인이 행복을 느끼며 동시에 다른 사람 또한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박범철 교수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감성적인 목소리를 지녔다. 그의 음성은 청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고 작은 무대연주를 통해 드러난 그의 평가는 ‘목소리가 아닌 가슴으로 노래하는 테너’라는 것과 함께 무대에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악이란 아름답고 듣기에 좋은 것임을 감안할 때 이는 아마도 최고의 찬사라 생각된다.
박범철 교수. 그는 연주자로서, 교육자로서 가곡의 발전과 융성을 위해 일해 온 선각자이자 스승이요, 선배로 그동안 우리 음악계를 지켜왔다.

그는 “음악의 목표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색깔이 각기 다를 뿐이지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게 되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이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들을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가곡아카데미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은데 이렇게 세상에 찌든 마음을 음악으로 씻어내 버리는 곳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과 삶을, 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라며 말을 맺었다.

아무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은 일을 그는 계속해서 이뤄왔고 그의 노력과 열정이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음악의 미래를 생각하고 세계적 우위에 올려놓기 위해 흘린 그의 값진 땀방울로 인해 한국음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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