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계속기업가치 산정이 사실상 불가능”…청산절차 돌입

시인 채권액만 3조 4,000억 원…전국 1만 명 일터 잃어

   
 
말 많던 한진해운이 결국 파산 했다. 지난 2월 17일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수석부장판사 정준영)는 한진해운 파산 선고를 내렸다. 지난 2일 한진해운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린 지 약 2주 만이다. 1977년 5월 설립돼 올해 설립 40년,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의 나이에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운사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벌크선, LNG선 등 총 200여 척의 선박으로 전세계 60여 개의 항로를 운영하며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던 국내 1위·세계 7위 해운사였다. 그러나 지난 2월 17일 한진해운은 끝내 글로벌 해운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4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수석부장판사 정준영)는 한진해운 파산 선고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한진해운이 주요 영업을 양도함에 따라 계속기업가치 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게 인정됨에 따라 2월2일 회생절차 폐지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에 대해 지난 2주간 한진해운 채권단 등의 항고가 제기되지 않았다”며 “이에 파산을 선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법원은 지난 2일 한진해운 회생절차폐지 결정을 내렸으며, 채권자 의견 조회 등 2주간의 항고기간을 거쳐 이날 최종 선고를 내렸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9월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1,300명이었던 직원을 50여 명으로 줄이고 회생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지난 3일 법원에 파산선고신청서를 직접 제출했다. 한진해운의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 역시 한진해운의 청산가치가 기업을 계속 운영할 때 얻을 가치보다 높다고 결론을 내고,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법원에 보고했다.

   
▲ 1977년 설립된 한진해운이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17일 결국 파산했다. 법원이 한진해운 파산 선고를 내린 17일 오후 부산신항만 한진해운터미널에서 컨테이너 크레인이 멈춰 서고 빈 화차가 줄지어 서 있다.
한진해운은 지난 1977년 5월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꿈을 안고 설립한 회사로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선사다. 한진해운은 출범 이듬해인 1978년 중동항로를 시작으로 1979년 북미서안항로, 1983년 북미동안항로, 1991년 구주항로와 북미남서안 항로 등을 연이어 개척하며 한국 해운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1988년에는 (주)대한상선(대한선주)과 합병하며 ‘국내 1호 선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1992년에는 국내 최초로 4000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선을 띄우는 동시 국적 선사 최초로 ‘연매출 1조 원’을 달성했으며 1994년 컨테이너 수송실적이 100만 TEU을 넘어섰다. 1996년 태국-일본직항로(CAX), 중국-유럽직항로에 이어 중국-북미직항로를 개설하고 1998년 카오슝 터미널에 이어 함부르크 터미널을 개장했다. 2001년 터미널운영 합작법인 TTI(Total Terminal International)과 미주 내륙 컨테이너 운송 자회사인 Hanjin Logistics Inc.를 각각 설립했다.
2002년 11월 조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에는 셋째 아들 고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방향타를 잡았다. 2003년 12월 영국에 본사를 둔 BVQI로부터 환경안전 품질경영체제에 모범회사로 선정되었고, 2006년 세계적인 물류 기업인 라이더사와 미국 4대 메이저 펄프 생산 업체인 레이오니어사로부터 ‘올해의 선사’상을 수상했고, 2001년부터 2008년까지 7년 연속으로 미국 오웬스 코닝사로부터 ‘올해의 선사’상을 수상했다. 2006년 9월 선박관리 전문회사 (주)한진 에스엠(HSM)을 세웠고 2008년 6월 자회사 거양해운(주)을 흡수합병했다.
2009년 5월 부산에 신항터미널을 개장한 데 이어 같은 해 6월 아시아 역내 베트남(하이퐁) 직항 서비스, 신규 동인도 서비스를 개설했다. 2009년 8월 포스코와 초대형 원료전용선(VLOC) 장기수송 계약을 체결했고, 한진해운의 자회사인 선박 수리조선소(ZESCO)의 영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Korea) 운송부문 최우수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2009년 12월 한진해운을 인적분할해 한진해운홀딩스(현 유수홀딩스)를 지주회사로 세우고 한진해운은 신설법인으로 출발했다. 2011년 3월 베트남 탄캉카이멥 컨테이너 전용터미널을 개장했고, 2012년 2월 경인터미널 운영을 시작했다.
이렇게 회사가 순항하는듯했지만 조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섰지만 글로벌 해운 장기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회사는 수천억 원대 적자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결국 한진해운 경영권은 지난 2013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어갔다. 2014년 6월 에이치라인해운(주)(구, 한국벌크해운(주))에 전용선 사업을 양도했다. 2016년 9월 1일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결정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한진해운이 미주-아시아 노선 영업권을 SM(삼라마이더스)그룹 계열의 대한해운에 매각했다. 해운업에 큰 애착을 가졌던 조 회장은 한진해운 회생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끝내 상황을 되돌리지 못했다.
조 회장은 지난 2016년 4월 한진그룹이 더는 한진해운을 떠받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부터 용선료 조정·사채권 만기연장 등의 조건부 자율협약이 시작되며 회생에 불이 붙는듯했지만 회사는 약 4개월 만에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 기존에 있던 한진해운 간판 등이 교체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의 모습. 개인 투자자는 물론 한진해운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빌려준 은행권 또한 투자금 회수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진해운의 파산 선고로 해운업계가 그야말로 실음에 놓여있다. 대량 실직사태는 물론이거니와 채권액 피해도 문제다.
파산선고가 떨어지면 곧장 파산재단이 설립되고 파산관재인이 선임, 이후 파산관재인 주도로 한진해운 잔여자산을 매각하고 채권자들에 대한 변제가 진행된다. 제1회 채권자집회와 채권조사는 6월 1일 오후 2시 서울법원종합청사 3별관 1호 법정에서 열린다. 파산채권의 신고기간은 2017년 5월 1일까지다.
법원은 “파산 절차를 통해 모든 채권자에게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채무 변제가 최대한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문제는 한진해운에 남은 자산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진해운의 주요 자산 매각은 대부분 마무리된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이 됐다. 파산관재인은 법률이 정한 순위에 따라 채권자들에게 배당을 하게 되는데 현재의 상황으로는 공익채권자를 제외한 나머지 채권자 전원이 투자금을 날릴 위험에 처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는 물론 한진해운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빌려준 은행권 또한 투자금 회수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신용보증기금과 산업은행 등 회사채 신속인수제 지원에 나선 기관들도 울상이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2013년 7월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의 회사채 차환 발행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제도다.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이 새로 발행하는 회사채를 산업은행이 사들여 자금순환을 돕는 제도다.
한진해운이 발행한 사모 회사채 발행잔액의 4분의 3이 넘는 금액을 지원했다가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처했다. 현재 한진해운의 사모사채 발행잔액은 9,39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약 76%에 해당하는 7,180억 원어치를 산업은행이 신속인수제로 인수했다. 출자은행들은 2천156억 원, 회안펀드는 718억 원을 각각 날릴 전망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신속인수제를 빌미로 팔을 비틀어 한진해운에 투자한 신보와 은행, 증권사, 유관 금융기관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설립한 신보가 대기업의 빚 부담을 나눠서 지다가 손실을 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진해운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이 지난해 12월 법원에 제출한 최종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자산과 부채는 각각 2조 7,231억 원, 3조 5,267억 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담보권·회생채권에 대한 채권신고를 받은 결과 총 31조 4,873억 원이 신고됐다. 한진해운이 시인한 채권액은 총 3조 4,054억 원이지만 향후 소송 등을 거치면서 이 금액은 더욱 확대될 우려가 있다.
대량 실직사태도 문제다. 법정관리 전 1,400여 명에 달했던 한진해운 육해상 직원 중 현재 750여 명 정도만 재취업에 성공했고 나머지는 구직 활동 중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 관련 전문가들은 한진해운 파산으로 협력업체를 포함 부산에서만 3,000여 명, 전국적으로는 최대 1만 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제1의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의 파산은 재벌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의 무능·무책임이 빚어낸 대참사라는 지적이다. 사진은 부산신항만 한진해운터미널에서 컨테이너 크레인이 멈춰 서 있다.
앞으로 정부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한진해운 퇴직근로자를 대상으로 전직(轉職)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3월부터 교육 및 컨설팅 등 창업지원사업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인해 퇴직한 선원들에 대한 재취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센터는 한진해운 퇴직선원의 재취업 관리·상담을 위해 전용상담창구를 개설하고, 전문 취업상담사를 배치해 1대 1 맞춤형 지원을 할 예정이다. 또 이미 운영 중인 선원취업정보망을 활용해 퇴직 선원별로 유선을 통한 일자리 안내, 문자메시지(SMS) 전송 등 구직희망 선원을 지속적으로 관리·지원할 방침이다.
기획재정부·해양수산부·금융위원회는 “향후 정부는 해운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대책을 이행하는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시민대책위는 “한진해운의 몰락은 무능한 금융당국자, 채권단의 책임회피와 비겁함, 힘없는 해양수산부 관료들과 사주의 무책임, 정부의 오판이 부른 대참사이다”며 “이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처벌, 그리고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국내외 화주 손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세계 해운무대에서 신용을 잃었고, 부산지역에 산재한 해운·항만 관련 영세업계는 여전히 경영 정상화에 애로를 겪고 있어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필요하다”며 “더불어 탁상공론이 아닌 치밀한 정책 보완과 강력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튼튼한 국적선사를 육성할 것”을 요구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한진해운 파산선고에 대해 “제1의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의 파산은 재벌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의 무능·무책임이 빚어낸 대참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에 문외한인 최은영 전 회장이 한진해운의 부실을 심화시켰다”며 “정부는 근본적 대책 없이 단기처방에만 의존했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 오히려 부실을 키운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꼬집었다.[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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