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하고 내밀한 노정이 가능한 유일한 곳
순 우리말인 얼굴이라는 단어는 영혼이라는 ‘얼’과 통로라는 ‘굴’이 합쳐진 결과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얼굴은 ‘영혼의 통로’라는 뜻이다. 영혼의 통로는 이 푸른별 지구의 모든 인류가 지나가고 싶어 하는 영원의 길이다. 이집트에게 영혼의 통로를 지나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이집트는 답을 했다. 지금 당신은 그 얼굴 앞에 서 있다고.
EDITOR+PHOTO 이곤 [자료_모두투어]
이집트 예습, 카이로 박물관
이집트 유물들을 총 집대성한 곳이 바로 이곳 카이로 박물관이지만 이집트를 대표하는 대다수의 걸작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각국과 미국 도처의 박물관에 분산되어 있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집트 유물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와 영국의 대영박물관 그리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놀랍게도 이집트 유물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인 기원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이집트에서 빠져나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런 방대한 컬렉션을 꾸밀 수 있다는 것. 수많은 세월 동안 해외로 밀반출되지 않고 그것들이 온전하게 모두 이 땅에 남아있었더라면 이집트라는 나라가 현재 어떤 식으로 변했을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는 이만큼의 유물들. 이집션들이 아니, 온 인류가 필사적으로 지켜야할 대상, 그 커다란 숙제가 이곳에 담겨있다.
박물관 건물은 카이로의 중심인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위치해 있다. 1902년에 지어졌으며 외벽은 짙은 핑크색으로 마감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사막 끝에 여울지는 늦은 석양빛이 내리는 듯한 질감이었다.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압권은 2층 전시실에 개별 전시되고 있는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금빛으로 말갛게 칠을 하고 생동감 있는 눈동자로, 특유의 아주 옅은 미소로 박제되어 있는 어린 투탕카멘.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관람객들은 탄식과 탄성을 교차시키고 낯설고 묘한 표정들을 짓는다.
Info.
사진은 촬영이 허락되지만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물론 내부의 경비는 철저하다. 이집트 정부는 2016년 카이로 박물관 유물들에 대한 보관과 존치를 강화하기 위해 시내 다른 지역으로 이관을 확정한 바 있으며, 올해 모두 이전하여 새로운 장소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박물관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수십 개가 넘는 각각의 전시실과 보관실에는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과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들, 이집트 각 왕조의 왕과 왕비 미이라 십 수점과 선사시대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의 유물들 13만여 점 이상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드 카이로, 카이로 구시가지
▲ 카이로 중심 타흐리르 광장에서 남쪽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는 구시가지는 카이로의 옛 정취를 느낄 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집트 고대 교회들이 있어 남다른 방문지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
박물관을 통해 이집트의 과거의 통로를 걸었다면 이제는 카이로의 과거의 통로를 걸어볼 시간. 카이로라는 도시 자체가 미스르 알 아디마로 불리는 이곳 구시가지에서 최초 번성한 후 북쪽으로 이동하며 완성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사람들은 현재의 주거형태를 띠고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카이로 중심 타흐리르 광장에서 남쪽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는 구시가지는 카이로의 옛 정취를 느낄 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집트 고대 교회들이 있어 남다른 방문지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콥트Copts-이집트의 기독교 신자 지역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이슬람이 국교인 이집트에서 꽤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지켜온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콥트교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아무르 모스크와 그리스 정교회, 유대교 등 이슬람 아래 갖가지 이집트를 지탱해 온 종교들이 모여 있는 곳. 종교적인 분쟁의 씨앗이 완전하게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구시가지라기보다는 그런 종교를 유연하게 풀어낸 이집션들의 너그러움이 스며있는 땅이다.
콥트 박물관은 지하철 마르 기르기스역 주변에서 시작되는 구시가지 콥트 카이로 지역의 상징적인 방문지로 이집트의 토착 기독교인 콥트교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콥트교도들의 성지이다. 콥트어로 쓰인 성경책과 마리아상, 조각과 도자기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콥트 관련 성물들이 전시돼 있지만 아쉽게도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인 세인트 조지 수도원을 지나면 마치 오래된 유적처럼 보존되어 있는 로만 타워를 지나고 무알라카 교회로 이어진다. 로만 타워는 나일강이 지금의 흐름으로 바뀌기 전 나일강을 관리하고 통제했던 군사시설로 이 요새를 기준으로 카이로는 남북으로 구분되었다고 한다.
로만 타워 옆에는 알 무알라카Al Moallaka라고 불리는 공중 교회Hanging church가 있다. 무알라카는 아랍어로 ‘매달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교회 마당에는 천사 가브리엘과 사도 바울 등이 색색의 타일로 표현되어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교회 본당으로 연결된다. 교회 본당 입구의 이슬람 형식과 비슷한 문양은 낯섦과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건네준다. 목조와 기둥으로 장식된 내부는 어느 종교시설과 마찬가지로 엄숙함과 경건함의 공간이며 8세기 이전부터 18세기에 이르는 110여 점의 이콘화들이 보존되어 있다. 다시 구시가지의 골목을 지나면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알려진 아기 예수교회로 연결되고 유대교의 벤 에즈라Ben Ezra 시나고그로도 이어진다. 두 곳 모두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신성한 종교시설에서 그것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 이제 다시 구시가지를 거닐 시간. 신성한 종교 시설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라 평온한 일상은 이 구시가지에 내려앉은 축복처럼 내린다.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지만 또 가장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곳, 카이로가 순수하다는 증거, 바로 구시가지이다.
재스민의 봄, 타흐리르Tahrir 광장
이집트 신시가지 중심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은 이제 혁명의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름을 이어받았다. 2010년 말 튀지니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는 인근 이집트로 옮겨 붙은 후 알제리와 예멘, 요르단과 시리아 등 아프리카 북부와 아랍까지 불길이 번졌고 재스민 혁명이자 아랍의 봄을 이끌어낸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어졌다. 이집트에서 결정적으로 불길을 피웠던 타흐리르 광장은 그래서 현대 이집트 민주화의 근거이자 상징처럼 남아있다. 이곳을 기준으로 카이로의 모든 주요 볼거리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아랍연맹 본부 역시 광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여행의 출발지점으로 삼는다. 지하철역인 사다트역으로도 바로 이어지며 박물관과 광장 건너의 여행자 거리로도 연결되는 타흐리르 광장. 카이로에 도착해 아무래도 낯설고 혼잡한 풍경을 그러나 의외의 평온한 모습으로 그나마 조금 누그러뜨려 주는 곳. 고르게 숨을 쉬며 언젠가 타오를 불길을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는, 이집트에 영원히 남을 또 다른 카이로의 상징.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라는 뜻이다.
이집트의 숨결, 나일Nile강
이집트 전체를 관통하는 혈관. 유역 면적만 아프리카 대륙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강, 나일. 나일은 아프리카 중동부 고원 지대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해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를 아우르고 에티오피아와 수단을 지나 드디어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끝, 이집트에 닿는다. 이집트 땅에 들어온 물은 지중해로 흘러들어가기까지 6,500킬로미터라는 장구한 물의 여행을 떠난 이후 외부로부터의 물의 유입 없이 온전히 이집트 나일의 물로만 지중해와 만난다.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 칭함은 나일이 자신의 수많은 희생을 통해 카이로, 나아가 이집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지중해의 파란 물은 나일강이 이집트 땅을 흐르는 동안 수많은 온갖 탁하고 불순한 것들을 걸러 내주었기에 그토록 파랗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집트는 나일에서 태어났고 현재도 나일과 함께하며 아마, 이집트가 생명을 다하는 아주 먼 미래에도 나일은 끝까지 이집트와 함께 할 것이다.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랫동안 이집트와 함께하고 있는 나일강. 묵묵하게 억만 년의 세월을 같이할 진정한 이집트의 심장은 스핑크스나 피라미드가 아닌, 그저 단순하게 흐르는 나일강일 터.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지구 상 가장 긴 강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제 1의 자리를 브라질의 아마존에게 넘기고 쉼, 의 영역으로 돌아간 나일강. 나일은 그렇게 아직도 태초의 그 흐름 그대로 천천히 흐르며, 처음에도 그랬듯이 카이로를 지금도 묵묵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집트의 어머니 나일, 나일의 숨 카이로 그리고 그 카이로의 곁 나일.
카이로의 꽃, 칸 엘 깔릴리Khan El-Khalili 시장
▲ 집트는 나일에서 태어났고 현재도 나일과 함께하며 아마, 이집트가 생명을 다하는 아주 먼 미래에도 나일은 끝까지 이집트와 함께 할 것이다.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랫동안 이집트와 함께하고 있는 나일강. 묵묵하게 억만 년의 세월을 같이할 진정한 이집트의 심장은 스핑크스나 피라미드가 아닌, 그저 단순하게 흐르는 나일강일 것이다. |
엘 깔릴리는 카이로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카이로 시장이라고도 불리며 아랍권에서는 터키의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아프리카 전체에서는 가장 큰 시장. 1382년 무역 대상들을 위한 숙소칸은 페르시아어로 대상의 숙소를 중심으로 지어졌으며 당시 이집트를 정복하고 카이로를 세운 파티마 왕조의 영묘가 있는 곳이라 카이로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땅이라 여겨진다. 역사가 무려 630년이 넘지만 실제 기록되지 않은 이 장소의 과거 역할까지 더하면 그 역사는 충분히 더 올라간다. 무려 1,500개가 넘는 상점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이곳에서 모든 카이로 사람들의 생활이 시작되고 또 이집트 전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물품이 거래된다. 형형색색의 물건들과 사람들이 벌이는 소소하고 치열한 축제. 이는 분명 카이로가 이방인들에게 건네는 꽃다발이라 칭할 만하다.
카이로 사람들은 이 깔릴리 시장을 종종 정신적 고향으로 여긴다고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이집트의 이슬람 문예부흥운동인 알 나흐다Al-Nahda의 근거지가 이곳이었으며 많은 수의 예술가와 학생들이 사회와 종교에 대해 밤새 격론을 벌였던 아고라이자 몽마르트가 바로 엘 깔릴리였다. 시장은 다소 혼잡하다. 골목으로 나오면 또 다른 골목이 이어지고 어딘가에서 스쳤던 사람들과 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며 미로와 같은 골목들은 혈관과도 같은 작은 길들로 촘촘하게 퍼져 나간다. 시간이 있을 경우 시장은 해질 무렵에 방문하는 것이 더욱 좋다. 어스름한 저녁 시간이 되면, 한낮의 치열했던 흥정과 거래가 끝나는 시간이기에 상인들은 이제 좀 더 여유로움을 찾고 또 방문객은 그만큼 느긋하게 시장을 들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랍풍 상품들과 이집트 고유의 향신료와 제품들이 시장 안에 가득하지만 깔릴리 시장에서의 흥정은 필수이자 시장의 미덕. 이 지점에서 진짜 카이로 사람들과의 접점이 생기고 그제야 유적과 유물에 집중했던 이집트를 한걸음 뒤 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관광지에서 보였던 호객꾼들의 상업적인 미소가 아닌 진짜 카이로 사람들의 가감 없는 얼굴을 보게 되는 곳. 어쩌면 이집트의 진짜 영혼의 통로는 바로 엘 깔릴리의 골목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 피라미드
4,500여 년 전, 높이 147미터와 각 밑변의 길이 230미터 그리고 평균 2.5톤의 석회암과 화강암 230만 개로 쌓아올린 지구 상 가장 위대한 건축물. 카이로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3킬로미터의 거리. 우리는 그저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피라미드를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 절정의 영험한 건축물에 대한 대단한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최초의 피라미드, 사카라Saqqara
사카라 피라미드는 기자 피라미드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한편에는 허허한 사막 벌판과 그 반대편엔 무성한 야자수로 숲을 이룬 오아시스 사이에 나타난다. 사카라 피라미드가 위치한 이곳은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의 정서 방향에 위치해 오랫동안 왕가와 귀족들의 장례를 집행했던 도시. 이 장구한 역사의 이집트에서 그토록 장대한 크기의 기자 피라미드를 제치고 이집트 최초라는 타이틀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입구를 통과해 굵은 열주들이 늘어서 있는 회랑을 통과하면 사카라 피라미드 부지에 들어선다. 반듯하고 세련되며 엄정한 사선으로 곧게 내려오는 기자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사카라의 피라미드는 계단형으로 현재 이집트 전역에 남아있는 크고 작은 80여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독특한 형태와 외관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6층 높이인 사카라는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이른 시기인 기원전 2,660년경에 지어졌으며 높이 62미터에 밑변은 123미터와 109미터. 물론 이 피라미드의 지하에도 많은 비밀이 숨겨진 채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아직 수많은 비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신비감은 어느 곳들과 다르지 않다. 발굴과 보수 공사를 동시에 하는 까닭에 피라미드의 모습은 공사 재료들이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본 형태는 짐작될 만큼 유지되어 있어 충분히 독특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사카라 피라미드. 영화 등을 통해서 익숙해진 이름인 이모텝이 바로 이 사카라의 최초 설계자이자 최종 검수자였다. 주변에 허물어진 10개 정도의 다른 피라미드들이 산재해 있어 현 시대의 말로 바꾼다면 ‘피라미드 파크’로 불러도 좋을 곳. 이곳은 세상 모든 피라미드들의 가장 깊은 뿌리이자 그래서 모든 이집트 피라미드들의 가장 오래된 요람이다.
카이로를 지켜온 심장, 시타델Citadel
카이로를 수식하는 표현은 많다. 아랍어로는 ‘승리의 도시‘라고 불리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또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이름도 있다. ‘천 개의 미나렛Minaret-첨탑을 가진 도시’라고도 불릴 정도로 크고 작은 모스크가 산재해 있는 카이로는 수 백 년 간 다양한 이름을 얻으며 발전해 이집트를 넘어 항상 이슬람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탐험가이자 전 세계 모든 여행자들의 원조라고 보아도 좋을 모로코 출신의 이븐 바투타Ibn Battuta130-1368는 자신의 오랜 여행 기간 중 카이로에서 따로 시간을 내 한 달을 살았던 적이 있다. 카이로에 들어온 이상 바로 이곳을 스쳐 지나갈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카이로 남동쪽의 무카탐Muqattam 언덕에 세워진 시타델에서 카이로를 바라보면 느낄 수 있는 단순하고 당연한 결과이다.
시타델은 1176년부터 1238년에 걸쳐 건설된 요새로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이집트를 지키기 위한 용도로 세워졌다. 1860년대에 카이로 중심부에 위치한 압딘 궁전Abdeen Palace으로 정부가 이전되기까지 오랫동안 이집트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시타델은 30미터 높이의 견고한 외부 성벽으로 오랫동안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시타델의 정문인 아자브 게이트를 통해 들어서면 먼저 알 나세르 모하메드 이븐 콸라운Al-Nasser MohammedIbn Kalawoun모스크가 보인다. 14세기 초 당시 술탄이었던 알 나세르가 그들의 금요 예배를 위해 특별히 지은 이 모스크는 단순하고 가지런하게 도열해 있는 기둥들로 모스크를 곧고 바른 공간으로 만든다.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가지는 행동들은 이런 절제된 정경에서는 당연한 반응. 단순한 기둥과 넓은 마당으로 이토록 정갈하고 경건한 공간을 꾸미는 곳은 지구 상, 모스크 밖에 없다.
카이로 시네마, 카이로 타워
카이로 타워는 나일강이 흐르는 강 가운데 있는 게지라섬에 위치하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도보로 15분. 187미터의 높이로 타워로써는 세계에서 4번째로 높으며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45미터나 더 위에 있어 카이로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여겨진다. 카이로 시내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웅장하고 높이 솟은 타워는 마치 모든 것이 평평한 사막에 홀로 솟아나 대지를 비추는 등대처럼도 보인다. 관광명소라기보다는 거대한 상징에 가깝고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작품이라고 칭해도 좋을 만한 카이로 타워. 1956년에 착공해 1961년 완성했으므로 55년이 넘은 건물이다. 외관은 연꽃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특유의 아랍식 패턴으로 형상화되었으며 심플하지만 무척 현대적인 모습이다.
카이로의 아름다운 어둠을 보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이 척박하고도 마른 사막의 땅에서 수 천 년을 질기게 살아온 위대한 도시 카이로의 모습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카이로의 매연이 어느 정도 걷혀진 해가 질 무렵이 적당하다. 정상까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안내를 해주고 외부로 나있는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드디어 카이로의 맨 꼭대기에 서 있는 셈. 거친 바람이 불어오지만 분명 이 바람은 사막의 어느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일 것이기에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해가 진 후 카이로의 어둠은 시내 곳곳에서 켜진 점점의 불빛들을 안고 찬란하게 등장해 한순간에 모든 사람들을 이 카이로 시네마에 몰입시킨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오고 그 소리들이 바람 소리와 섞여 하나의 심포니로 이어지면 드디어 이 영화는 종반부. 멀리 보이는 수 억 개의 카이로 불빛들이 반딧불이처럼 춤을 추고 이제 카이로가 더 깊은 시간 속으로 잠기려 할 때. 엔딩 크레딧이 뜨며 하루를 닫고, 카이로의 밤은 드디어 시작이다.
지중해와 홍해 그 사이, 수에즈
수에즈는 무엇보다 홍해 바다를 볼 수 있고 대규모 운하인 수에즈 운하와 인접하며 척박하고 황량한 북아프리카의 사막지대를 지날 수 있어 카이로에서 한나절 코스로 적당한 곳이다. 수에즈는 이집트에서 여섯 번째 큰 도시로 카이로의 작은 버전처럼 카이로를 축소해 놓은 느낌을 준다. 홍해는 수에즈를 기점으로 수에즈 운하와 연결되고 지중해로 이어진다. 붉은빛을 띠어서 불리는 이름 홍해. 한자로 쓰지 않고 한글로 부르면 그대로 붉은 바다라는, 조금은 느낌이 다른 이름이 나온다. 홍해의 최대 깊이는 무려 이천 미터. 홍해는 아프리카와 아랍 국가들에서는 따로 이 바다로 흐르는 강이 없기에 온전히 바닷물로만 이루어져 있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염도를 지닌 바다로도 알려져 있다. 홍해는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시나이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 방향의 수에즈만과 아랍땅으로 향하는 아카바만으로 다시 나뉜다. 수에즈에서 시작되는 운하 물길 192킬로미터를 따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이 손을 잡았고 또 유럽 대륙으로 연결되어 온 것이다. 막상 마주한 홍해는 분명 이집트의 모래가 섞여 바다가 붉은 색을 띨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완전히 시각적으로 반대의 풍경을 펼쳐주었다. 쏟아지는 햇빛에 반사된 홍해는 때때로 은빛이거나 가끔 금빛처럼도 보였고 지중해보다 더 파랬다. 이 반짝이며 빛나는 착시를 마음껏 펼쳐준 홍해. 이집트가 지니고 있는 두 아들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라면 홍해와 지중해는 이집트의 두 공주님. 이집트는 이로써 모든 것을 다 가진 셈이다.
INFORMATION |
전압과 시차 전압220V, 50Hz / 한국과 -7시간 비자 일반 비자는 이집트 한국대사관을 통하는 방법이 가장 쉽다. 도착비자는 공항에서 25달러로 구입이 가능하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 변수가 많다. 비자의 기본적인 체류 기한은 한 달. 환율 US 1달러 기준 18이집트 파운드 정도로 작년 초보다 반 이상이 폭락했다. 현재가 이집트 여행의 최적기. 치안 작년 미국 정부는 이집트 여행의 등급을 ‘SAFE’로 평가한 바 있다. 밤 시간 위험지역만 아니면 대체적으로 치안은 많이 양호해진 편. 언어 아랍어가 공용어이며 일부 지식층과 유명 관광지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통용된다. 종교 이슬람의 양대 교파 중 하나인 수니Sunni파가 90% 이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7%~10%는 콥트 교회Coptic Church신도이다. 기후 전 국토의 96%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열대성 사막 기후이지만 습도가 30% 이내로 햇빛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쾌적하다. 교통 카이로 시내의 대중교통 체계는 많이 혼잡하다, 횡단보도는 없으며 차선도 잘 지켜지지 않아 주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