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오늘, 8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해오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4.28~2006.12.30) 전 이라크 대통령이 고향인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 인근의 한 농가에서 미군에 생포됐다.

폴 브레머 이라크 미군정 최고행정관은 다음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13일 오후 8시30분 고향인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시 인근의 한 농가 지하 구덩이에 은신 중인 후세인을 체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후세인은 체포 당시 얼굴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상태였고, 미군 의료진의 DNA검사로 신원이 최종 확인된 후 바그다드로 압송됐다.

1979년 7월 대통령이 된 후 지난 봄 이라크 전쟁 때까지 사담 후세인의 24년간 이라크 통치 인생은 막을 내렸다.

당시 후세인은 미군이 찾는 제1의 인물로 2,5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대통령에서 전쟁포로 신세가 된 후세인은 2004년 6월 범죄자 신분으로 연합군 임시행정처에서 이라크 정부로 인도돼 재판을 받게 됐다.

후세인에게 적용된 죄목은 1983년 쿠르드족 바르자니 부족 8,000여 명 학살사건, 1988년 화학무기로 쿠르드족 5,000여 명 학살, 91년 걸프전 이후 시아파 회교도 30만 명 학살 의혹 그리고 그의 정권에 불만을 가진 세력에 대한 고문 등 반인륜적 범죄이다.

결국, 2006년 11월에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그해 12월30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담 후세인은 티그리트에서 출생해 카이로대학과 바그다드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에 바트당(黨)에 입당하였다. 1959년 카셈 정권에 의해 대통령암살음모사건으로 체포되었으며, 1964년 알레프 정권에 의해 체포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1969년 쿠데타에 참가하여 혁명평의회 부의장이 되었고,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기습 점령하였으나,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공격(걸프전)으로 1991년 2월 패배하여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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