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장인이 만들지만, 소비자의 안목이 그것을 완성 시킵니다”

빠르고 분주한 세상이다. 무엇이든 순식간에 바뀌는 탓에 늘 새로운 것으로 넘쳐난다. 어쩌면 그 덕분에 우리가 이토록 풍요롭고 멋진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매력적인 세상에 대한 얼마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속도와 편리함이 강조됨에 따라 세월과 열정이 버무려져 은근히 발효되던 소중한 존재들의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사이로 저잣거리의 장사치가 장인으로 둔갑하고, 싸구려의 수입산 상품이 그럴 듯한 상표를 단 채 명품으로 둔갑하는 어이없는 사건을 겪기도 한다. 흐르는 시간의 속도는 옛날과 다름이 없는데, 오직 세상만 바빠진 듯하다. 세상이 이러한데 사기꾼과 장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안목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명품과 유명브랜드의 간극

명품(名品)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나 작품’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부와 명예를 대변해주는 액세서리쯤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제품의 뛰어남보다는 이름난 물건에 주목하고,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제품 그 자체보다는 가격으로 평가하는 왜곡된 안목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명품의 가치는 결코 가격과 인지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익히고 이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단순히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제 삶에 녹아드는 운명처럼 가슴을 파고들더군요. 그 세월이 벌써 40년이나 흘렀습니다.”

장준영 봄바니에 대표, 그는 수제 양복제작의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자, 국내 웨딩사업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업가이다. 국내 명품시장을 장악한 외국의 수많은 명품 속에서 봄바니에는 적지 않은 인지도와 입지를 굳히고 있는 중이다.

서울 소공동의 롯데호텔 지하 1층에 위치한 봄바니에 양복점에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장관, 연예인, 경제인, 스포츠 스타 등 수많은 유명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유명세가 시장을 겨냥한 치밀한 마케팅이나 이벤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전히 장 대표가 걸어온 40년 외길의 인생이 꽃을 피운 것이며, 그 은근하고 짙은 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 결과이다. 사람에게는 인품의 향기가 있고, 명품에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법이니까.

국내 수제 맞춤 양복 세계화 가능하다
장 대표는 지난 2008년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의 위자푸 신화사 외사국장의 배려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주문 양복점을 후원하겠다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준비를 위해 약 3년 간 중국시장을 면밀히 조사한 일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중국 최고위 부호들 몇 백 명 중 주문양복을 입은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수제양복이든 명품양복이든 핸드메이드 제품에는 양복 겉면에 ‘핸드메이드’ 네임텍이 붙게 되는데, 중국의 부호들은 그것을 떼지 않고 자랑 삼아 붙이고 다니더라는 것이었다. 이는 수제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세계적인 명품 양복에만 집착할 뿐 정작 수제 맞춤 양복에 대해서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고가의 유명 기성복은 선호하지만 주문복을 통해 자기 몸에 꼭 맞는 옷을 맞춰 입겠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왜 비싼 옷만 선호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라며 “우리나라의 양복기술은 세계기능올림픽에서 15~16연패를 할 만큼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목소리를 높이며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 세계의 유명 명품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유럽의 제냐, 베르사체, 아르마니 등 국내외에서 명품으로 분류되는 제품도 결국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국내 시장의 수제 명품양복의 목표는 탄탄한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급브랜드를 만들어 해외시장까지 진출하는 것이다. 이에 장 대표는 중저가의 맞춤양복 브랜드인 ‘보막스뉴욕’을 계속 확장하여 전국 500개점을 10년 안에 오픈할 계획을 차분하게 추진하고 있다.

“명품은 장인이 만드는 것인데, 장인의 역할은 결코 컴퓨터나 대량 생산 시스템이 대신할 수 없지요. 결국 사람이 나서야 하는 일인데, 맞춤 양복을 배우는 과정이 매우 고되고 기간도 깁니다. 그래서인지 매우 괜찮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렇듯 아쉬움을 풀어내면서도 장 대표는 어찌 젊은이들을 탓할 수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장기불황의 고통 속에서 세상은 나날이 영악해지는데, 오롯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꾸려나가야 하는 젊은이들 역시 이러한 세태의 피해자라는 이야기였다.

“장인정신이나 명품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 젊은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수의 금융기관에서 5년 간 근무했던 젊은 친구가 기술을 배우겠다며 입사하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의 열의가 얼마나 대단하지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더욱 흐뭇하고 신이 난답니다.”
그제야 장 대표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가 들려 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던 기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세상의 남자들을 향한 장 대표의 당부

그는 ‘옷 잘 입는 남자가 성공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외모를 치장하고 포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으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가다듬고 재점검하는 시간이 늘어나지만,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게 되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외모를 잘 가꾸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고, 성공의 기회 역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복을 입는 분들이라면 좋은 양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증된 곳을 찾아 옷을 주문하고 구매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지요.”

명품을 만드는 것은 장인의 몫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기술과 땀과 열정이 발효된 가운데 은근히 풍겨나는 예술의 향기이자,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제품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명품을 완성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으로 남는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명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찾아내고 평가하는 안목을 가지지 못한다면 돼지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요, 진흙 속의 옥구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봄바니에 02)778-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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