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견 지명 있는 상황판단과 솔선수범 리더십
전설을 넘어 사실로, 신화를 넘어 역사로 만나야 할 이순신

다시 이순신 배우기 열풍이다. 난세를 살아가는 범부들에겐 영웅이 필요하다. 특히 국가의 존망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시점에서 나라를 구할 영웅의 존재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그 영웅의 대명사는 '이순신' 바로 그였다. 그러면 왜 지금 이순신일까?

불멸의 이순신에게 반하다
"이순신의 카리스마, 불굴의 의지, 군사와 백성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미. 이순신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칩니다"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 큰 가르침을 얻고 있습니다" '불멸의 이순신' 홈페이지에는 이순신 장군에게 '반한' 시청자들의 '연애편지'가 넘쳐난다.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감탄하며 존경심을 드러낸다. 그러다, 믿고 따를 만한 지도자가 거의 없는 현실을 떠올리며 절망하기도 한다. 이는 400년이나 된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우고자 하는 열기다. 그만큼 우리의 외교와 국방, 국내 정치와 경제 등 위기를 맞고 있다는 방증이다. 나라 안팎의 정세가 100년 전의 시련기와 유사하다. 정·재계를 비롯, 국민 모두가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워 국난을 타개하고, 미래를 개척할 때이다. "오늘의 문제 해법과 내일의 한국사회 비전을 이순신에게서 배우자"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최근 환경이 돌변하고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경영기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라고 흔히 말한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일은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상당히 긴박한 숙제거리임엔 틀림없다. 그것은 '리더쉽' 이라는 테마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
된다. 기업 경영의 모든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점에서 그 동안 해오던 방식의 리더십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데 있어 여러가지 문제점에 부딪힐 것이다.
또한 각 조직 구성원들간의 원활한 의사 소통과 관계 유지에 있어서도 리더십은 적용되고 꼭 필요한 것인 만큼 상당히 실용적인 정보가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류에 휩쓸려 전략의 기본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경영전략의 기본원리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유행처럼 바뀌는 기법을 좇는 것은 모래 위에 화려한 누각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렵고 급할수록
기본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순신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악의 조건에서 최고의 승리를
이순신의 삶이 갖은 어려움을 극복한 '역경형 인간'이 라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순신의 생애는 위대하면서도 비극적인 한 편의 서사시다. 이순신의 진면목이 가장 잘 드러난 삶의 한 부분은 어딜까.
세계 4대 해전의 하나인 한산대첩도 돋보이지만, 명량해전은 세익스피어의 극을 보는 듯하다. 충무공은 모함으로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백의 종군하던 중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하자 복권된다. 이 때 충무공이 접수한 것은 120명의 군사와 단 12척의 배였다. 국내 수로 중 조류가 가장 빠른 명량해협의 지리적 특징을 꿰뚫은 장군은 왜군의 133척과 맞서 단 한
척의 손실도 없이 31척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명량대첩은 충무공의 탁월한 리더십,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결단력과 용기, 탁월한 전략과 지략,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의 종합판 이다. 이순신의 삶에는 당시 이공기술의 집합체인 거북선을 만든 창의성과 '난중일기'의 기록정신, 청렴결백한 도덕성과 성실성 등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 절절이 녹아 있다.
이순신은 기업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업가정신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는 상상하기 힘든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싸워 찬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만큼 악조건 아래서 싸운 장군이 있었을까. 연전연승해 국가에 말할 수 없는 공을 세웠지만 누명을 쓰고 죄인이 돼 도원수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는 신세가 됐다. 세계 제일의 해군제독이 죄인이
되고 육군의 무등병으로 강등된 셈이다.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 수군에게 참패해 조선 수군이 괴멸된 후에야 임금인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해 일본 수군과 싸우도록 했다. 한마디로 병사· 배· 무기· 군량미 없이 홀몸으로 막강한 일본 수군과 싸우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에 그와 같이 외롭고 딱한 처지의 해군 사령관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당시 이순신은 억울한 죄로 시달린 나머지 마음과 몸이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났다. 그는 같이 싸울 수군을 모집하기 위해 일본군의 추격을 무릅쓰고 이 고을 저 고을 찾아다녔다. 텅 빈 관가의 창고를 뒤져 무기와 식량을 모으고, 칠천량 해전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12척의 배를 찾아내 남해안을 휩쓸던 일본 수군을 막을 태세를 갖췄다. 이런 와중에 조정은 12척의 배로는 도저히 2백척이 넘는 일본 수군을 막아낼 수 없다며 이순신에게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그는 선조에게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으므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적 수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선의 수가 적고 미미한 신하에 불과하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얕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12척으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돼 장수들도 도망가고 임금마저 전투를 포기하라고 명령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오히려 임금을 설득하고 명량대첩이라는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자기의 강점으로 상대의 액점 공략
군사전략이든, 경영전략이든 기본은 같다.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2천5백년 전에 쓰여진 '손자병법'이 오히려 새로움을 준다고 극찬하는 세계적인 전략가도 있다. 이순신이 보여준 23전23승의 전략은 이런 점에서 경제전쟁 시대에 진지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선 적이나 경쟁기업을 이기기 위해선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기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처한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자기의 강, 약점은 물론 상대방의 강, 약점도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이순신은 이 같은 전략의 기본에 충실했다.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를 훤히 꿰고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 지휘관이었지만 현장답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정보원과 정탐선을 파견해 적의 규모와 이동상황 등을 세밀히 파악했다.
이순신의 이 같은 정보중시 전략은 정보화시대인 지금 더욱 긴요하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생생한 현장 정보의 수집과 활용뿐 아니라 정보고속도로, 경영정보시스템 등 정보의 하부구조를 효율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순신은 지형, 조류 등 자연환경과 우리 수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적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일본 수군은 칼싸움에 능해 일단 배 위에서 싸우면 그들이 유리했다. 또 그들은 조총을 갖고 있었으나 화포는 미약했다. 이러한 적의 강, 약점을 파악한 이순신은 화포를 집중 발사해 적선의 접근을 막으면서 이를 격침시켰다. 이순신이 일본 수군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빠른 기동력이다. 그는 일본 수군을 선제 공격함으로서 기선을 제압하고 적이 공격해올 틈을 봉쇄했다. 또 신속한 함대 운용이 특기였다.
지금 기술과 시장 등 경영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기민성이야말로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가만히 있는 목표물은 좋은 공격대상이 될 뿐이다.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으로 경쟁자가 겨냥하기 힘든 목표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만하면 경쟁에서 진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에 철저히 대비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겸손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싸움에서 전승했음에도 "나는 나라를 욕되게 했다. 오직 한번 죽는 일만 남았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많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육지의 적까지 완전히 소탕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이런 자세 때문에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고 더욱 철저히 대
비했을 것이다. 오만한 사람들은 임진왜란에 대한 대비랄 게 없었다.
오만과 자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전쟁이나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자만에 빠진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하기는커녕 문제 자체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남이 문제점을 지적해 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는 치밀하고 철저한 대비를 할 수 없다. 세계 제일의 기업이라도 그 경영자나 종업원들이 자만에 빠지면 곧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서행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행정철학)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사표를 구하고 싶어하는데 실제 그런 인물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며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그런 인물을 찾다가 '이순신'이라는 괜찮은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6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불의의 관행을 용납하지 않는 공직관의
리더십 ▲효과 극대화의 행정력과 전술을 이용한 리더십 ▲선견 지명 있는 상황판단과 솔선수범의 리더십 ▲엄격한 신상필벌로 부하들의 사기와 복지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 ▲'백의종군'이라는 사형선고를 극복한 절대충신의 리더십 등이 그것이다. 또한 "국정을 책임지는 이들의 무책임한 발언과 행동 때문에 사회분열이 심각한 오늘날이야말로, 백의종군을 하면서도 꺾이지 않은 나라 사랑의 마음을 보여준 이순신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고 강조했다.

'이순신 바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난세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 높은 실업률 등 경제난에 더해 참여정부의 외교력 부재와 국제 분쟁에 휘말려 있는 우리의 상황은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만큼이나 위기일 수밖에 없다. 이 어려운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가기 위한 리더십이 간절한 이 때, 7년 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은 가장 훌륭한 역할모델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白衣從軍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굳은 심지를 가지고 치밀한 준비를 계획하며 위기를 기회로 삼아
끝내 승리를 성취한 이순신. 그의 전략적인 리더십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이자 진정한 영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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