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빠진 스토리에 정치 배우들의 연기력도 아니올시다”

정치판은 여러모로 ‘드라마’와 닮은 점이 많다. 밀도 있고 감동이 스민 단편이 있는가 하면, 얼통당토하지 않은 스토리에 막무가내로 방영횟수를 늘이는 막장도 있다. 그 과정에서 시청률과 비유할 수 있는 여론과 지지율이 따르기 마련이어서 국민들은 냉정한 민심과 표심으로 감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방영된 정치드라마의 시청률은 썩 좋지 못했다. 특히 지난 10월22일 막을 내린 정기국정감사는 아무런 흥행은커녕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한 졸작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맥빠진 20부작 정치드라마

지난 10월4일부터 진행됐던 국정감사가 20일여 일 간의 일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국감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여야는 대형 이슈와 현안을 두고 곳곳에서 충돌을 빚었지만,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른바 ‘한 방’이 없어 흥행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감 시작 전부터 ‘4대강사업 대공세’를 예고했던 야당은 불법성과 예산낭비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4대강사업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각인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피감기관이 시종 불성실한 태도로 국감에 임하는 데다 심지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본질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데에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여당이 핵심 증인을 채택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증인이 아예 출석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방어공세 역시 흥행부진에 한 몫을 해냈다.

국회가 정부의 국정활동에 대해 점검하고 견제하는 게 국감의 본질이라고 볼 때 큰 이슈가 없었다는 점은 현재의 국정운영에 별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국감의 흥행부진이 원활한 국정운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지켜보는 국민들을 더욱 맥빠지게 했다.

특히 자료제출 거부에 따른 국감 무력화는 심각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국회 사무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18대 국회에서 행정부에 요구한 국정감사 자료들 가운데 약 50% 가량은 거부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출 요구 후 제출까지 걸린 기간도 평균 20일에 이르렀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자그마치 137일 만에 자료를 제출하는 사례도 드러났다.

이슈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증인이 무더기로 불참했던 것도 흥행부진에 부채질을 했다. 4대강사업 논란과 함께 최대의 쟁점으로 떠올랐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신한금융지주 내분사태’와 관련된 핵심 증인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참석을 거부했던 것이다. 외교부 특채 의혹과 관련된 유명환 前 장관 역시 불출석했다.

여당은 연일 ‘정책국감’을 외쳐댔지만 유독 4대강사업과 권력형 비리 등에 대한 문제에서는 적극적인 정부 편들기로 방어에 나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여론은 싸늘한데 여야는 ‘자화자찬’

이번 국감에 대해 여야는 “서로 성과를 남긴 의미있는 국감이었다”고 자평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사실상 국감이 종료된 10월22일 “야당과의 불필요한 대립을 피하고 파행을 최소화 해 정책국감을 했다고 자부한다”며 “서민물가, 전세난, 저출산, 서민금융, 세제개편 등 시급한 민생문제 해결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열심히 국감에 임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은 현 정부가 곧 4대강 정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이는 불법사업, 파괴사업, 낭비사업, 거짓말 사업”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면서도 박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공정한 사회'는 헛구호”라며 “정부의 비리와 허점을 파헤친 국감이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우리 당은 재정건전성, 건강보험 및 공공의료, 교육불평등, 비정규직 실태를 주요 이슈로 제기하고 특히 4대강 사업이 더 이상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근거들을 충분히 제시했다”며 “반면 청와대, 한나라당, 피감기관은 한 몸이 돼 ‘4대강 사업 수비대’ 역할에 몰두하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증인도 참고인도 제대로 출석하지 않고 요구자료 제출도 하지 않아 부실국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자유선진당 의원들은 각 상임위에서 최선을 다해 빛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의미와 방향은 다르게 설명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괜찮은 국감’이었다고 자화자찬한 셈이다.

한편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이번 국정감사를 총체적으로 평가하자면 버티기, 자료제출 거부, 청와대 개입 등으로 얼룩진 총체적인 파행국감이었다”며 “4대강 사업과 민간인 사찰로 얼룩진 국가기관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 등 전반적인 국정에 대한 엄정한 감사가 이뤄져야 했지만 정부의 방해와 여당의 방조 때문에 자체 감사만도 못한 감사가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해마다 부실국감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감 종료 직후 민주당이 상시국감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시했던 것. 이와 함께 제도개선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정책위 차원의 협상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전병헌 정책위 의장은 10월24일 열린 국정감사 결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증인과 참고인의 무더기 불출석, 자료제출 부실과 지연 등 우리 국감이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가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고 평가하며 “제대로 된 국감을 위해 상시국감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증인 출석과 자료제출 의무를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국감의 내실화와 효율성 강화를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며 정책위의장단 차원의 협상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가물에 콩난 듯 돋보인 ‘국감스타 의원들’

지루하고 맥 빠진 국감이었지만, 성실한 준비와 날카로운 질의로 이목을 집중시킨 의원들도 있었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기획재정위 국감에서 배추와 양배추를 직접 가져와 윤증현 장관을 압박했으며, 국방위원회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국방부 내부문건 공개를 통해 천안함 사건 발생 당시 군이 북한의 이상 동향을 파악하고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야당보다 더 매서운 추궁으로 피감기관을 궁지에 몰아넣은 여당 의원들도 있었다. 재정위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허점을 파헤치는 가운데 공기업의 2년 간 금융성 부채가 58% 늘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의원은 공기업이 가진 도덕적 해이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정부부처가 책임지고 공기업을 개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끌고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외교통상위 구상찬 한나라당 의원은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이 ‘한일 공동연구지원’ 명목으로 올 상반기에 따낸 정부지원금 1억8,000만 원 중 4,600만 원이 유흥업소와 비즈니스 항공석 구매 등 직원들의 사적 용도로 사용한 사실을 질타했다.

성실한 정책연구로 명쾌한 대안을 제시한 의원도 있었다. 보건복지위 소속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각종 자료를 통해 한국 미혼남녀가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한편 이에 대한 근복적인 대책을 제시해 주목을 끌었다.

한편 재정위에서는 여성 의원들의 활약상이 눈부셨다. 논리적이고 침착한 어조로 핵심을 파고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국세청에 대한 감사에서 태광그룹 로비 의혹과 봐주기 세무조사 의혹 등을 파헤쳤다. 또한 박근혜 前 대표의 국가 준채무에 대한 지적은 전 세계적인 재정위기와 국내 공공부문의 채무 급증이 문제화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시의적절한 질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 내 ‘저격수’로 꼽히는 박영선 의원은 법제사업위에서 활약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기소된 원 모 전 사무관이 기록한 'BH 하명'이라는 메모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색 국감스타들의 ‘화려한 출석’

이렇듯 국감 스타에는 비단 의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번 국감에서는 낙지, 대인지뢰, 배추, 가스통 등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핵심증인들과 참고인들의 무더기 불출석으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사물은 단숨에 국감스타로 떠올랐다.

10월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장에 전남 무안, 신안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이윤석 의원이 낙지를 들고 나왔다. 이 의원은 국내 최대 낙지 산지인 지역구에서 구해온 세발 낙지 한 마리를 국감장에서 꺼내들고 최근 불거졌던 서울시의 발표로 불거졌던 이른바 ‘낙지파동’에 대해 질타를 쏟아부었다.

10월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장에 대인지뢰가 등장했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가져온 것인데, “비무장 지대의 평화 자전거 누리길에 폭발물과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는 지적을 하며 그 위험성과 심각성을 강조했다. 또한 조 대표는 “강원도 양구에서 1시간 만에 M3 대인지뢰를 비롯해 지뢰 18개를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배추파동의 절정에 달했던 국감기간에 채소 역시 국감장의 주요 ‘참고인’으로 출석해야했다. 10월4일 재정위에서는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물가폭등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배추, 양배추, 상추 등을 들고 나와 주목을 끌었다. 10월11일 국회 국토해양위의 국토해양부 국감장에서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얼갈이 배추를 들고 나와 채소 값 폭등과 4대강 사업의 연관성을 따져 물었다.

민주당 김재균 의원이 19일 국회 지경위 국감에서 '가스통 시위'를 재연했다. 김 의원올해 6월 중순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앞에서 고엽제 전우회가 주도한 이른바 '가스통 시위'를 거론하는 가운데 그 위험성을 직접 시연해 보였던 것이다. 김 의원은 20kg짜리 가스통과 가스토치를 감사장에 비치하고 관련 동영상을 보여주며 가스통 시위의 위험성을 제기했다.

한편 한나라당 박근혜 前 대표는 10월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재정 투명성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의 예를 들었다. 박 전 대표는 “우리 정부는 국가채무 통계를 1년 에 한 번 발표하는데 미국은 매일 발표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다운받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터리 문제로 화면이 뜨지 않아 실제 화면은 볼 수 없었다.

“감히 국감장에서 도박판을 벌여?”

10월18일 오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서 열린 환노위 국감장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조춘구 사장에 대한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응답이 끝난 직후 이찬열 민주당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고 “지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던 것.

이 의원은 “식당 건물 2층에서 공사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포커도박을 하고 있다”며 “빨리 확인해서 조처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이어 “국정감사가 열리는 날에도 도박판이 벌어지는 지경인데, 평상시에는 건물 전체가 도박장으로 변하는 게 아니냐”며 “위원장은 이 사건을 정확히 조사하고 응분의 조치를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이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관계자는 “조사 결과 피감기관장들의 차량 기사 6명이 식당 건물 2층 직원 휴게실에서 포커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돈이 오간 정황은 없고, 현재 환경부 감사실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민주당은 곧바로 논평을 내고 “피감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땅에 곤두박질치고 있는 가운데 그 수행원들까지 도박을 벌이고 있다”며 “해당 기관 관계자들의 도움과 묵인은 없었는지 철저히 밝혀내 신성한 국감장의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4대강사업 예산 통과 VS 저지 대격돌 예상

 

국감이 종료된 국회는 10월25일부터 새해 예산안과 쟁점법안 심의를 위한 후반기 국회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야 간 이견이 큰 쟁점 현안이 많아 전운이 감도는 안개국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은 ‘4대강사업’ 예산이다. 한나라당은 법정 시한인 12월9일까지 4대강 예산을 포함한 새해 예산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가 집시법 개정안의 처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했음에도 이를 유보한 것 역시 시한 내에 반드시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이에 민주당은 4대강사업 예산을 복지, 서민예산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이에 대한 방어 차원의 방안을 준비 중이다. 국회 각 상임위에서 당장 급하지 않은 선심성 예산을 걸러내 민주당이 주장하는 복지, 서민예산으로 돌린다는 것.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4대강사업 조정 요구 역시 보와 준설을 제외한 지천 등 하부사업 조정에는 유연하게 대응해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간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내년부터 본격적인 대선정국이 시작된다고 볼 때 사실상 이번 연말국회가 4대강사업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는 민주당의 마음은 급해 보인다. 이에 ‘4대강사업 예산저지’에 모든 당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구체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4대강사업이 대운하사업을 위한 예비사업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사업과 관련된 각종 불법과 허점을 밝혀내는 등 적극적인 홍보전략도 세워놓은 상황이다.

민주당은 지난 국감에서 4대강사업의 편법입찰과 설계변경 의혹을 제기했던 김진애 의원과 문화재 파괴에 대해 문제제기 했던 김부겸 의원 등 이른바 ‘4대강사업 저격수’들을 대정부 질문에 집중 배치해 전력을 증강했다. 또한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타 야당 및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강화해 화력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대기업 수사 역시 후반기 국회의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수사가 확대되면서 정관계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최근 C&그룹 임병석 회장이 구속된 뒤 구여권의 유력 정치인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민주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기업 수사를 빌미로 야당탄압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G20정상회의 준비로 잠시 유보 상태에 빠져 있는 개헌논의도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G20정상회의 이후 당내 의총을 통해 개헌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점을 밝혔고, 민주당 역시 개헌에 대한 당내 입장이 여러 갈레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야는 물론 각 계파 간 대립 구도 속에서 안개정국을 넘어선 얼음정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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