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 향해 외교적 도발 감행 '수면 위의 영토분쟁'

나라 전체가 독도 문제에 올인이다. 독도 셔츠, 독도 노래, 독도 관광. 사방에서 독도 이야기다. 올해 2월 2일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독일의 쾰러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과거사를 사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엄청난 反독일 정서로 인해 독일 대통령의 이스라엘 국회 연설은 애초 무산될 뻔했다. 그러나 쾰러 대통령의 화해를 위한 감동적 연설은 이스라엘 국민을 설득하고도 남았다. 독일은 나치 치하에서 관련국 국민에게 과거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주저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감추기 위해 주변국들과 연일 좌충우돌하고 있다.

불붙기 시작한 동북아 파워 게임
지난달 이스라엘의 야드바셈 유대인학살박물관의 개관식에 세계 40여 개 국가들의 귀빈들이 초청 받았으나 유독 일본만이 빠졌다. 과거사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보이지 않는 일본을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보편적 역사인식을 갖추지 못한 일본의 망신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올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려던 일본의 야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관한 역사왜곡이 한중일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동아시아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 때문이다. 경제대국이자 정치소국 일본의 현주소다.

요즘 동북아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거대한 지각판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진원은 일본이다. 최근 들어 일본은 주변국들을 향해 잇따라 외교적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일본은 경제대국에서 군사대국으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반도의 상황도 남이나 북이나 공히 군사비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저마다 자신감도 만만치 않고 민족주의적 경향도 강하다. 동북아 공동체의 평화와 협력을 외치면서도 영토와 역사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국가주의적이다. 그 결과 동북아 세 나라는 지금 영토문제와 교과서문제로 서로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고구려사 문제를 놓고 한중관계에 마찰음이 일고, 독도와 교과서 기술문제로 한일관계도 긴장이 높다. 또한 동북아 세 나라는 북핵문제로 직접 안보상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일본은 지난 2월 말 한국을 향해 갑자기 동해의 독도 영유권 문제를 들고 나오더니, 곧 이어 동(東)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구 제도에 대한 '영유권 고정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옛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점령한 남(南)쿠릴 열도 4개섬(일본은 북방영토라고 부른다)을 러시아로부터 돌려 받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영토 문제와 역사 왜곡 문제와 관련, 지금까지의 소극적, 수세적 자세에서 적극적, 공세적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한 동북아 평화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일본 불법을 면책한 한일협정
역사에 가정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일본 수상이 한국의 국회에서 진실을 인정하고 과거를 반성하는 눈물을 흘렸다면, 한일 갈등이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그토록 줄기차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국제사법심판소를 통해 사태의 반전을 꾀하려는 얕은 계산 못지 않게, 한일관계 정상화 이후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적 협상 과정에서 보인 일련의 약점을 일본이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올해가 광복 60년이라 하지만 100년 전 을사조약에 의한 불법침략과 40년 전 한일협정에 따른 매국협
정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을사조약은 일본이 조선 외무대신의 관인을 무력으로 훔쳐내어 조약문서에 날인한 불법이었다. 명백한 범죄행위다.국제법상의 조인과 비준 절차가 전적으로 무시되어 있다. 이처럼 한일협정이 갖는 문제는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천명할 뿐 불법임을 확인하지 않음으로써 과거사 진실 규명과 배상 책임을 어렵게 하는데 있다.
한일협정 제2조에 의하면,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로 되어 있다. 역사왜곡을 미화하는 일본 정관계 인사들의 뻔뻔스러울 만치 '당당한' 태도는 1965년의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이 과거사 책임문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확신에 기인한다. 한일협정이 일본 정부에 대해 과거사 책임과 보상 문제에 관해 면죄부를 준 꼴이다. 일본이 과거사 사과는커녕 망언을 일삼고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강제 징병징용·종군위안부 문제에 침묵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독도「수면 위의 영토분쟁」으로 부상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 것은 1905년 1월28일. 그로부터 4주 뒤인 2월22일 시마네 현은 현(縣) 고시40호로 우리의 독도를 「다케시마 」죽도(竹島)로 명명,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둔다고 공시했다. 그후 독도는 1952년 1월 18일,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로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규정하는 해양 경계
선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평화선'을 규정하였고, 그 뒤 51∼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협상과정에서 두 나라간의 외교문제로 논쟁대상이 되었으나 그 해결이 뒤로 미뤄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최근 선거공약과 정책지침에까지 공공연히 독도 영유권주장을 포함시키는 등 독도문제를 수면 하의 영토문제」에서
「수면 위의 영토분쟁」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토편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첫 번째로, 근세초기 이래 독도는 일본영토였고 영토편입 직전까지 오랫동안 일본이 「실효적 경영」을 했으며 두 번째로, 영토편입 당시 독도는 주인 없는 돌 섬이었으므로 「무주물선점」을 한 것이라는 두 가지 논리로 집약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대일평화조약」의 제2조에 의하면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그리고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right), 권원(title)과 청구권(claim)을 포기한다"로 밝혀져 세 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큰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이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있는데는 크게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첫째, 장기적인 전략에 바탕을 둔 외교적 대처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 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 지금 당장은 독도를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틈나는 대로 문제를 제기해 놓음으로써 외교적인 기록을 남겨 두자는 속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도가 한·일간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 나중에 언젠가 국제 정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날이 오면 그 때에 본격적인 땅뺏기 싸움을 벌일 수도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둘째, 독도 문제를 센카쿠 제도(중국명 釣魚島 : 현재 일본이 점령 중)와 쿠릴열도 남단 도서(일본식으로는 북방 4개 섬 :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 문제와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 센카쿠 제도를 놓고 중국과, 쿠릴열도 남단 도서를 놓고서는 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독도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다른 두 건의 분쟁 상대방에게 시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한국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경계 설정을 위한 협상을 할 때, 좀더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독도 문제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설정은 현재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 가고 있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과 일본은 그 경계를 설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선긋기' 협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 협상에서 일본은 '독도'를 하나의 협상 도구 내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어떤 변수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는 분석이다.
넷째, 하시모토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국내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하시모토 총리 자신이 일본 내 보수 우익 세력의 지도자 중 하나이고 일본 연립 여당의 권력 기반 역시 보수 우익 세력에 있다. 따라서 보수 우익을 표방하고 있는 현 정권에게 있어서 '영토 분쟁'은 어느 정도의 외교적인 부담이 따르더라도 상
당한 국내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슈라는 것이다.

거꾸로 가는 독도 대응
독도문제를 둘러싼 일본측의 공세적 태도는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또 이에 대한 한국민의 반발도 날이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우리 외교통상부의 대응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독도문제는 이미 21세기로 접어들었는데, 외교통상부의 대응은 아직도 20세기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한 듯하다. 독도문제가 나올 때마다 외교통상부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상, 굳이 이 문제를 국제쟁점화 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 동안 이 독도 문제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하여 회피해 왔다. 특히 한국은 자국의 온전한 영토가 인접국에 의하여 근거 없이 법적 권원의 다툼을 받는 문제이므로 진작에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안주하여 이 문제를 진지하게 분쟁으로서 다루는 일 조차도 금기로 해왔던 것이다.
일본은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를 쟁점화하기에는 불리한 여건임을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최소한의 영토주장을 계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일본의 주장을 보편화, 관례화 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다 때가 오면 언제든지 독도문제를 현안화 시키면서 노골적으로 점령을 가시화 할 것이다. 특히, 국제 사회의 변혁기가 오고, 주변국이나 다른 강대국이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판단되면 독도는 자국의 영토이며, 인근해역도 자국의 해역임을 주장해온 그간의 입장을 일본 정부의 공식 의견화합과 함께, 이전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전환하여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조치에 착수하여 독도와 인근 해역에 걸쳐 해상자위대의 작전 지역 내로 편입 확정하고 한국해군의 통과나 주둔을 실력으로 저지할 것이다. 곧이어, 군사력과 힘을 바탕으로 군대 주둔을 시도하여 일방적인 점령을 감행하거나,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함으로서 영토편입을 관철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지역 어민과 극우단체 등을 동원하여 독도 편입을 유리하게 여론화하는 노력을 강화할 것 또한 분명하다. 행정조치를 취해 일본의 조업구역으로 결정하고 해상자위대의 보호아래 한국어선의 조업활동을 막으면서 일본어선이 제멋대로 조업활동을 본격화해 버릴 것이 틀림없다.
한국 정부의 항의나 한국민의 열띤 반응은 의도적으로 무관심한 자세로 일관하여 아예 무시해 버릴 것도 분명하다. 오히려 정당한 일이었음을 주장하고 준비가 덜 되거나 대응능력이 약화되어 있는 한국 정부에 오히려 항의할 수도 있다.
이처럼 1952년 1월 28일 일본의 독도 영유 주장이래,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일본 외무성과 일부 일본 학자들의 집요한 합리화 작업으로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일본의 영토 정책의 하나가 되어 있다. 물론 일부 국수적 성향 일본 국민과 정치인들의 계산된 움직임이 여기에 부수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독도에 대해서 일본이 영유적 지배를 행사한 실적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19세기 말에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하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감행한 한반도 병탄 행위의 일부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실적은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함으로서 법적으로 무효이며, 아무런 의미를 인정할 수 없는 침략적 사실로 확인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정책은 유엔 헌장에 명기된 2차 대전의 적국으로서 침략적 전력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의 주도적 국가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려고 하는 일본으로서는 일찍이 시정해야 할 문제의 정책이며 일부 일본의 진지한 학자들도 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그러한 논리와 근거, 주변환경부터 뿌리뽑아 버려야 한다.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기본 전략은 결코 수정되지도 폐기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정부와 국민들이 독도 문제에 대한 감정적이고 일시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전략에 따른 신중하고도 치밀한 대응을 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논박
하고 제압하기 위해서는 현재 확보하고 있는 우리측의 자료와 사료를 한층 더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토문제는 가장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그것이 일본측에서 제기
될 때 감정폭발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일본을 침묵케 하는 길을 찾는 것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한국인이 발휘해야 할 지혜다.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통해 독일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독일 안팎에서 사과, 참회, 속죄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이 독일로부터 배울 점이다. 일본이 고립을 면하려면 국제양식을 가져야 한다.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를 통해 바깥으로 뻗어나가려는 일본의 변신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 '독도 한국땅' 1946년 이미 인정
미국은 독도 영유권과 관련 일본쪽 주장에 치우치고 있지만 1946년과 1951년 공문서에서는 이미 독도가 한국땅임을 인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과거 한국에서 10년 간 영어교사로 근무할 당시 독도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한 미국인 교사가 최근 미 국립기록조사국(NARA)에서 찾아낸 관련 문서들을 분석해 밝혀냈다고 23일 미주한국일보가 보도했다.
NARA 문서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임시통치한 연합군최고사령부(SCAP)는 1946년 1월 29일 일본정부에 하달한 지시령(SCAPIN) 677호 3항에서 "일본 영토는 홋카이도, 혼슈, 큐슈, 시코쿠 등 4개 주 섬들과 약 1천개의 주변 작은 섬들로 제한한다"며 "웃즈로(Utsuryo.울릉도),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독도), 쿠엘파트(Qualpart.제주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미국은 또 1951년 6월 20일 주한미군 존 B. 콜터 중장이 장면 국무총리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독도를 한국땅으로 인식했다. 또 1951년 7월 7일 주한 미8군 육군부사령관실이 주한 미사령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7월 1일 장면 총리실과 국방장관실은 물론이고 독도는 한국 내무부 관할이어서 내무부 장관도 이를 승인했다"고 언급, 독도가 한국땅임을 거듭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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