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떠올리며

MBC 『PD수첩』이 방송한 ‘검사와 스폰서’ 편으로 촉발된 검사파문이 특검을 통해 민망한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4월 20일, 법의 날 특집으로 다룬 이날 방송은 경남 일대에서 대형건설회사 경영자인 홍두식 씨(가명)가 작성한 문건을 중심으로 법조계에 만연한 ‘스폰서’ 관행을 신랄하게 파헤쳤다.

방송에 등장하는 문건에 의하면, 실명이 거론된 전․현직 검사가 57명, 현직 검사장도 2명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법무부 고위직 인사와 부장검사가 언급돼 있으며, 적어도 100명 이상의 전․현직 검사들이 홍 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중 일부는 성 접대를 받은 정황마저 드러나 방송을 지켜본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서 허탈감마저 느꼈다는 반응이다.

물론 홍 씨가 25년 동안이나 향응과 현금상납을 이어오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정당하지 못한 특혜를 누렸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가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될 처지에 이르자 이를 면피할 목적으로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안의 중대함과 그 파급효과에 비해 폭로의 진정성(眞正性)이 의심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산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여파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는 검찰청은 물론 법조계 전반의 자성을 촉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검찰청이 가진 ‘불필요한’ 권력집중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검찰개혁론’도 설득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검찰에 드리워진 타락의 혐의(嫌疑)에 소나기 같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유혹을 거부한 채 법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는 ‘좋은’ 검사들까지 화살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오래된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1948년, 배우 이업동(李業童), 정웅(鄭雄)이 주연하고 윤대룡(尹大龍) 감독이 연출한 흑백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가난과 싸우며 공부하는 학생이 있고, 그를 후원하는 스승이 있다. 스승의 참된 가르침 덕분에 학생은 검사가 된다. 그 무렵 스승은 남편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법정에서 옛 제자와 재회한다. 제자는 정의의 칼을 휘둘러 스승의 무죄를 입증한다. 가슴 훈훈한  보은(報恩)을 실천한 것이다.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 줄거리 속에 이번 사건의 해답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스승은 참된 가르침 제공했고, 제자는 그것에 대한 대가로 정의를 실천했다. 조금 비틀어서 말하자면 일종의 스폰서 관계가 성립하는 셈이다. ‘제공한 것’과 ‘보답한 것’이 다를 뿐이다.

기죽은 대한민국의 검사들이여, 그렇다면 해답은 분명하다. 이미 일어난 사실은 어찌해도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니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다. 밝혀야 할 진실이 더 있다면 스스로 꺼내놓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면 몸을 사리지 말고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이왕이면 좀 더 과감한 ‘스폰서 검사’로 다시 태어나길 주문한다. 이제 그대들이 붙잡아야 할 스폰서는 국민이다. 국민은 향응이나 현금이 아닌 굳건한 신뢰를 제공할 것이다. 그 후 그대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다. 특혜나 이권이 아니다. 법과 정의를 위한 원칙, 오직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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