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하늘에 날개를 단 항공우주산업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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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하늘에 날개를 단 항공우주산업의 리더
  • 편집국
  • 승인 2017.02.0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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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곧 기회,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기업문화

1916년 태평양항공기제작회사로 출발한 보잉사는 유럽의 에어버스와 더불어 세계 항공업계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민간항공기, 군용항공기, 인공위성, 방위산업 및 우주 항공과 관련된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우주 기업이다.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 150개국의 정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65개국에서 약 16만 9,000여 명의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 [사진_뉴시스]
보잉사의 설립자인 윌리엄 E. 보잉은 미해군의 장교로 1916년 콘래드 웨스트벨트와 함께 2개의 플로트를 단 2인승 ‘B&W 수상비행기’를 개발하고 몇 달 뒤 보잉사를 설립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습기와 정찰비행정을 생산했으며, 1920~1930년대에는 연습기·전투기·관측기·정찰폭격기 등 여러 군용기를 제작했다.
1928년 이 회사는 윌리엄 E. 보잉을 회장으로 몇 개의 항공기제작회사와 항공회사가 연합한 ‘유나이티드항공기-운송회사’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1934년 연방의 독점금지정책에 따라 항공기제작과 항공수송이 분리되었는데, 이 유나이티드항공기-운송회사가 해체되면서 설립된 3개의 회사 가운데 하나가 보잉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중에 보잉사는 몇몇 유명한 폭격기를 설계·개발했으며, B-17 일명 하늘의 요새라 불리는 비행기와 초공중요새(Superfortress)라는 별명이 붙은 B-29 등이 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군부와 거래를 계속하면서 상업용 항공기로도 눈을 돌려, 1954~55년에 미국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을 생산했으며, 1958년 팬아메리칸항공회사가 대서양 횡단 항로에 최초로 취항시켰다. 이후 1960년 보잉사는 당시 세계최대의 독자적인 헬리콥터 제작회사인 ‘버톨항공사’를 매입했다.
1960년대에는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로켓의 1단과 몇 개의 주요 달궤도선을 설계·제작했으며 미니트맨 대륙간 탄도 미사일 무기체계 통합생산자로도 참여했다. 1970년 취항한 미국 최초의 대형 초음속제트여객기인 보잉 747을 생산하기도 했다.

보잉사(The Boeing Company)는 미국의 항공기 제작회사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본사가 있으며, 워싱턴주 시애틀 근처의 도시 에버릿(Everett)에 대규모 공장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군수업체로서 다우존스 평균지수의 항목이기도 한 보잉은 크게 두 개의 회사로 나눌 수 있는데, 보잉 종합 방위 시스템(Boeing IDS; Boeing Integrated Defense Systems)은 군사와 우주에 관련된 일을 맡고 있으며, 보잉 상업 항공(BCA; Boeing Commercial Airplanes)은 민간 항공기를 제작하고 있다.

   
▲ 캘리포니아주 헌팅턴에 있는 보잉 빌딩. 1916년 태평양항공기제작회사(Pacific Aero Products Company)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보잉사는 유럽의 에어버스와 더불어 세계 항공업계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민간항공기, 군용항공기, 인공위성, 방위산업 및 우주 항공과 관련된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우주 기업이다.[사진_뉴시스]
보잉사는 1916년 태평양항공기제작회사(Pacific Aero Products Company)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1917년 보잉항공기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61년 항공기제작 이외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 반영되어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상업용과 군용 항공기, 헬리콥터, 우주선, 미사일, 수중익선, 도시 철도차량 등을 설계·생산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지상지원망도 제공할 뿐 아니라 에너지 설비, 물처리, 급수에 관계된 공사와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보잉사는 주로 미국 육해군의 대량주문에 힘입어 발전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활약한 대형폭격기 B-17 및 B-29의 개발·생산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기 제조회사가 되었고, 전후에는 B-47 및 B-52 등 세계 최초로 본격적 제트폭격기 개발을 했으며, 이후 민간용 대형 제트수송기 분야로 진출했다. 수송기 계열에는 중형 장거리용 707형, 중형 중거리용 720형, 중형 중·단거리용 727형, 중형 단거리용 737형 및 대형 장거리용 747형·757형·767형·777형 등의 여객기를 생산하며 세계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군용기로는 E3A공중경계관제기, E4공중사령기 등과 수송기 C-135형, 미사일 부문에서는 공중발사순항미사일(ALCM),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우주부문에까지 진출, 인간 최초의 달착륙선 아폴로계획의 주계약자 중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타이탄, 스페이스셔틀용의 상단 로켓 등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1966년에는 록웰의 우주항공부문과 무기생산부문을 흡수·통합하였으며, 1997년에는 맥도넬더글러스와도 합병을 하여 전세계 최대의 우주항공회사가 되었다.

세계 최대의 항공우주산업 업체 보잉은 초창기부터 많은 역경을 겪었지만 독특한 경쟁력으로 이를 극복해 온 기업으로 그 경쟁력은 항상 한 발 앞서가는 선견지명, 그리고 효율과 혁신을 우선시하는 기업 문화에 있다.
지난 100여 년간 항공기 산업은 보잉사가 독점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보잉이 1970년에 설립된 지 3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유럽의 에어버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이목은 대체로 현재의 강자보다는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는 신인에게 집중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보잉의 독점 체제가 아닌 보잉과 에어버스의 복점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많은 분야에서 에어버스와 동등해지고 있는 보잉은 작아지는 시장 지배력 회복을 위한 새로운 경쟁전략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전략은 세계화와 현지화였다. 오늘날 세계는 단일시장으로 통합되었고,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세계의 모든 기업들은 특정국가의 기업이라는 국적을 가질 필요 없이 어느 나라에서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상반된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보잉사도 세계 실정에 맞는 경쟁전략을 내놓기 시작했다.
기술 진보를 선도해야 하는 항공 산업의 구조적 특성뿐만 아니라 군수산업 내에서 입지 확보, 장기간의 R&D와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신형 항공기 개발 리스크, 거대한 조직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노사갈등, 그리고 유럽 제국의 자존심을 건 에어버스의 도전 등이 보잉의 앞에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잉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IT기반의 경영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잉사는 항공기의 300여 개가 넘는 부품과 공급업체에서 제공하는 각종 정보 및 데이터들을 고객들에게 항공기 유지·보수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온라인 전략을 세우고, 항공사와 항공기 유지·보수 담당자들이 항공 운항 및 유지·보수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여 항공기 제작 업체, 부품공급 업체, 엔진 제작업체, 항공사 등에서 제공하는 모든 정보를 포함했다.

   
▲ 상업용과 군용 항공기, 헬리콥터, 우주선, 미사일, 수중익선, 도시 철도차량 등을 설계·생산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지상지원망도 제공할 뿐 아니라 에너지 설비, 물처리, 급수에 관계된 공사와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과거에는 보잉사의 고객들이 보수용 부품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복잡한 다단계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만일 기술자가 어떤 부품을 필요로 하게 되면 그는 이 사실을 구매 승인권을 가진 구매나 자재 부서에 통보한다. 그러면 구매부서는 전화, 팩스, 텔렉스 등을 통해 보잉사에 주문서를 보내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또 주문 물량이 크고 주문이 정기적으로 계속되기 때문에, 대형 항공사들은 보잉사와 부가가치통신망(VAN)을 이용한 EDI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모든 고객들이 이러한 선례를 따른 것은 아니었다. 1992~3년이 되어서도 상위 10%의 대형 고객들이 EDI를 통한 주문 물량의 60%를 차지했다. 그 후에도 이러한 양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보잉사는 인터넷이 보급될수록 보다 많은 고객들이 전자적 주문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하고 표준적 PC와 기본적인 인터넷 접속기능을 갖추는 소규모의 초기 투자만으로도 소규모 고객들까지 전자상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헸다. 더욱이 인터넷은 쌍방향 통신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전화응답센터가 수행하고 있는 많은 고객서비스 기능들을 대신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1996년 11월 보잉사는 인터넷에 PART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으며, 전세계 보잉사 고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부품의 구입 가능 여부와 가격을 확인하고, 부품을 발주한 후, 주문 처리 상황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잉사 고객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전체 부품의 9% 정도를 PART를 통해 주문하고 있으며, 고객서비스 요청의 경우는 그 비율이 훨씬 높았다. 운영을 시작한지 1년 만에 보잉사의 PART 홈페이지는 전 세계의 고객들과 약 50만 건의 거래를 수행할 수 있었다.

1990년대를 풍미하며 세계 민항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보잉사는 2003년 이후 유럽의 라이벌 기업인 에어버스사에게 추월당하면서 미래 시장인 대형 민항기시장마저 에어버스에게 잠식당할 위기에 놓여졌다. 이에 보잉의 민항기사업부의 맥너니 회장은 이사회에서 더욱 큰 점보제트기의 생산을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450명 정원인 보잉747모델보다 연료절감이 뛰어나고 5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신모델 787 드림라인의 생산을 추진했다.
그는 “2005년6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항공박람회 ‘Le Bourget’에서 긍정적이며 지속적인 판매상승의 서막을 보잉 항공기들이 보여줄 것이다”라고 말하며, 보잉787은 에어버스 A350과의 경쟁에서 분명한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경쟁사인 에어버스에서도 555명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민항기 사상 최대형인 A380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맥너니는 “에어버스의 A380 항공기가 크고 멋지기는 하지만 그만큼 보잉747모델과의 투자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보잉은 항공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운송용 항공기를 기존 모델보다 큰 운송기를 2008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보잉모델에 관심 있는 항공사의 60%가 747모델의 후속버전을 원하고 있으며, 40%가 민항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20년간 400~500대는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현재 보잉에 점점 불리해지고 있는 항공시장 분위기가 가시화 되고 있지만, 2006년 375~385대 항공기 생산량 증가를 통해 280억 달러 규모의 민항기시장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고 이러한 그의 확신은 적중했다. 현재까지 보잉787모델은 266대 항공기 주문계약과 27개 항공사로부터 427대 항공기 주문의뢰를 받았으며, 2008년에는 에어버스 판매량을 따라 잡았다.
이는 회사차원의 경쟁과 함께 미국과 EU의 항공기 보조금에 대한 분쟁도 큰 영향을 미쳤다. EU가 에어버스 A350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할 경우 미국은 WTO 제소도 불사한다는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EU는 오래 전부터 에어버스와 경쟁사인 보잉의 직간접 보조금에 대해 논쟁을 벌여 왔는데 양측은 서로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속적인 분쟁을 해 왔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과 유럽간의 ‘항공’ 분쟁에 영향을 받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EU의 장거리 항공기인 에어버스 A350였다. 현재 에어버스는 16억 유로 규모의 보조금을 EU국가들로부터 받고 있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의 분쟁으로 인해 이러한 보조금의 지급이 지연되면서 에어버스는 보잉과의 경쟁에서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보잉의 꿈의 항공기인 드림라인 787과 맞서기 위한 에어버스 A350이었지만, 보잉787기는 세계 시장 점유율은 점점 격차를 보이며, 에어버스에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드림라인은 이미 2006년부터 제조되어 2008년 이미 항공시장에 공급되고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도 많은 항공사들은 보잉사의 모델을 선호하고 있다.

   
▲ 지난 2011년 10월 18일 성남 공항에서 개최된 SEOUL ADEX 2011에서 보잉사의 차세대 여객기 B787 Dreamliner의 기장인 Mike Carriker가 조종석을 공개하고 있는 모습.[사진_뉴시스]
경영위기에 직면했던 보잉사가 정상을 재탈환하고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2005년 새로운 CEO로 취임한 제임스 맥너니 회장의 리더십이 있었다. 차기 GE의 회장으로까지 주목받았던 맥너니 사장은 2000년 18년간의 GE 생활을 끝내고 3M의 최고경영자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후 2005년 초까지 그가 재직했던 4년간 3M의 영업이익률은 13%에서 23%로 높아졌으며, 신제품 개발기간은 4년에서 2.5년으로 단축됐다. 3M에 이어 경영위기에 직면했던 보잉사를 또 다시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게 함으로써 맥너니 회장은 재계로부터 ‘역전의 명수’, ‘낡은 산업도 성장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촉매자’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맥너니 회장은 거친 파도를 뚫고 나가는 함장이라기보다는 임직원들의 부가가치를 높여 주는 촉진자 역할을 자임하며 직원들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독려하는 ‘혁신촉진형’ 리더십을 구사한다. ‘우리 모두 1년에 15%씩 나아지자’는 식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제시하며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또한 폭넓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으로 다른 리더들이 모방할 수 없는 차별화된 능력을 발휘했다. P&G·매킨지·GE·3M 등 다양한 조직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 재계의 유목민’으로서 이질적인 문화와 조직에 남달리 빠르게 적응할 뿐만 아니라 폭넓고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보잉사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경영자라면 매사에 한 가지 이상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복잡한 상황에 대한 분석력과 자신감을 높여 주고,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기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경영방식을 견지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 자신도 M&A 등과 같이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기보다는 GE에서 익힌 구조조정, 글로벌경영 경험 등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경영방식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왔다.
더불어 맥너니 회장은 변화의 속도 조절에 노력한다. 조직의 문제점이 보여도 성급히 달려들기보다는 깊이 관찰하고 서너 번은 돌이켜 보는 등 심사숙고를 거친 후에야 결정하되 결정한 일은 과감하게 추진하면서, 특히 임직원과 문화의 변화가 조직과 전략에 우선해야 한다는 신념하에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을 강화함으로써 패배의식과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거대조직을 새롭게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는 일방적인 톱다운식 경영을 탈피하기 위해 2005년 CEO로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열린 대화를 몸소 실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맡아 회생시킨 맥너니 회장의 성공은 ‘어떤 경영위기도 임직원의 잠재력을 자극시키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경영의 맥을 입증하는 사례로 “기업회생에 성공한 것은 맡겨진 기업들이 원래부터 강한 기업이었기 때문일 뿐이며, 나는 단지 성공 경험이 자만과 실패의 씨앗이 될까 두려워했다” 는 맥너니 사장의 말은 우리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영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오늘날 기업문화와 상황에 적합한 리더십을 구사함으로써 임직원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더욱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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