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서인 「오대사(五代史)를 읽어보면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이다.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건국된 960년까지 대략 60년 간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 왕조와 지방정권 10국을 가리켜 ‘오대십국 시대’라 부르고 이후 일어난 송, 제, 양, 진, 수 5개의 나라를 전통적인 오대국이라고 칭한다.

무엇보다 당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은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 등의 중앙정권을 비롯해 오월, 민, 형남, 초, 오, 남당, 남한, 북한, 전촉, 후촉 등의 지방정권이 난립해 매우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이 기간 동안 호랑이가 없는 굴에 여우가 날뛴다는 말처럼 영웅호걸들이 등장해 활거하며 민심을 좌우편으로 가르고 있었다.

이때 후량의 주전충 밑에서 싸우던 장수 ‘왕언장’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며 자신의 인생철학을 속담으로 비추어 밝히곤 했다. 그는 힘이 세고 용맹할 뿐만 아나라 들고 싸우는 창칼 전체가 무쇠로 되어 있어 ‘왕철창’이란 별명이 붙었다. 이후 후당의 공격으로 후량이 멸망하자 적진의 왕은 그의 용맹함을 듣고 귀순을 종용했다.
하지만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길 수 없다”고 거절하며 죽음을 선택했다. 비록 무장이라 한자를 쓸 줄 몰랐지만 인생철학만큼은 분명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난관을 극복하며 과연 무엇을 남기기 위해 애쓰는 것일까.
석가모니 법어 중에는 ‘공수레 공수거 인생(空手來 空手去是 人生)’이라는 말이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듯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길이길이 ‘네버엔딩’으로 기억되는 이름이 있다. 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왕언장처럼 역사 속에 기록되는 이름이 따로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칫 오욕이 될 수 있고 영예가 될 수 있는 일들을 만나게 된다. 선택의 한 순간이다. 이러할 때 자신의 인생철학을 생각하며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진정성 있는 일을 실행해야 한다.

21세기 들어서 사회 개혁과 혁신을 부르짖는 수많은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올 한해만큼은 세류에 휩쓸려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고, 뚜렷한 자신의 철학과 주장을 내세우며 근면성실하게 일하기를 권해본다.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주변을 밝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견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 사회의 주춧돌 같은 인물이다. 시대가 어지럽고 어려울수록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하는 삶이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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