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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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의 전설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0.08.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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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땅딸막하고 배불뚝이에 얼굴까지 얽은 못생긴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머리통보다 조금 작은 보따리 하나를 둘러메고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평생 동안 사흘 이상 한 곳에서 머무른 적이 없었다. 가족도 없었으며,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는 이야기를 팔며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이야기꾼이었다.

입담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그가 자리 잡은 곳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가 웃으면 사람들이 울었고, 그가 울면 사람들이 웃었다. 그 맛깔스럽고 열정적인 이야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넋을 놓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저마다 이야기 값으로 준비해온 동전과 음식을 던졌다. 언제나 키보다 높은 재물이 쌓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꾼은 다음 여정에 필요한 약간의 동전과 음식만을 챙겼을 뿐이었다.

“이건 당신이 우리에게 들려준 재미난 이야기 값이오.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그럼 금방 부자가 될 것이오.”

“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니라오. 내 귀와 눈과 코가 잠시 빌려온 남의 것이란 말이오. 그리고 난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소.”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가 떠나고 나면, 마을에는 그가 남기고 간 동전과 음식으로 며칠 동안 잔치가 벌어졌다.

그의 정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왜 세상을 떠돌며 이야기를 팔고 다니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다. 언젠가 마을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누군가 물은 적이 있었다.

“빌려온 이야기 말고,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땅딸보 배불뚝이 곰보 이야기꾼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난 재미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날따라 그가 끌고 가는 그림자가 더욱 길고 깊어 보였다고 전해진다.

세상을 떠도는 동안 이야기꾼도 점점 늙어갔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졌고, 그나마 남은 것도 새하얗게 탈색해 버렸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자주 기침을 했고, 기침 사이로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그럴수록 청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야기를 끝낸 그의 앞자리에 수북하던 동전과 음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열광하지 않았다. 박수도 치지 않았고,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사람도 생겨났다. 땅딸보 배불뚝이 곰보 대머리 이야기꾼은 힘겹게 이야기를 끝냈다. 그의 앞에는 동전과 음식은커녕 야유와 조롱만이 가득 쌓여있었다.

“감동적인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가진 게 없어서 이야기 값을 치를 수 없어요. 미안해서 어쩌죠?”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끝까지 남아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람처럼 머리를 기른 여자였다. 여자는 웃었고, 웃을 때마다 그녀의 입과 머리카락에서 바람향기가 났다.

“내 이야기가 아니에요. 모두 빌려온 것들이지요. 그래서 난 단 한 번도 이야기 값을 바란 적이 없답니다.”

이야기꾼은 이마에 가득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더듬거리며 말을 이을 때마다 숭숭 빠진 이 사이로 한숨이 샜다. 여자는 자리에서 뜰 생각도 없이 턱을 괴고 앉아서 이야기를 조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이야기 값으로 치를 수 있는 게 있을지, 뭐든 찾아볼게요.”

늙고 병든 이야기꾼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꾸만 마른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한참동안이나 생각에 잠겼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떨리던 그의 팔과 다리가 잠잠해졌으며, 주름진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식은땀도 잦아들고 있었다.

“재미없는 이야기일 텐데요?”

“그건 듣는 사람이 판단할 문제예요.”

“아주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아요. 난 가난한 사람이지만, 시간만은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답니다.”

 

이야기꾼은 어깨에 메고 있던 작은 보따리를 풀어 반듯하게 깔았다. 그 보따리 위에 누운 이야기꾼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 이상 기침을 하지도 않았고,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 곁에 모로 누워 팔베개를 하곤 가만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키는 땅딸막하고 배불뚝이에 얼굴까지 얽은 못생기고 나이 많고 병까지 든 대머리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한 평생 이야기를 팔며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그는 작고 때 묻은 보자기 한 장에 몸을 누인 채 마지막 이야기를 팔고 있었다. 그것은 귀와 눈과 코가 빌려온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땅딸막하고 배불뚝이에 얼굴까지 얽은 못생긴 사나이가 그의 귀와 눈과 코로 겪은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해가 졌고, 졌던 해가 다시 떴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다. 사나이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도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사나이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죽어서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 그루의 편백나무가 되었다. 살아서, 땅딸막하고 배불뚝이였던 그의 몸은 단단하고 늘씬한 나무기둥이 되었고, 구름처럼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그의 입담은 짙고 푸른 나뭇잎이 되었다. 여자는 아직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머리카락처럼 길고 가는 바람이 되어 자꾸만 이야기를 조르고 있다. 그의 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까닭에 아직 이야기 값을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땅딸보 배불뚝이 곰보 대머리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따금씩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편백나무를 찾아온다. 그리고 길고도 깊은 그의 그림자를 베고 누워 그 맛깔스럽고 열정적인 이야기에 몸과 마음을 적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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