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에서 <말아톤>까지 장애인의 시선 담고자 전진, 또 전진
영화 <말아톤>이 '잘나가고'있다.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영화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라는 평가다. 흔히 자폐로 불리는 발달장애를 세밀하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도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02년 <오아시스>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비평적 찬사를 얻었으나 장애인을 중심으로 이 영화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장애인의 시선으로 보면, <오아시스>에서 <말아톤>까지 한국 장애영화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오아시스>, 장애인을 너무 몰랐다'
<오아시스>는 뇌성마비 장애인 한공주(문소리)가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숨지게 하고 자신을 강간하려 한 비장애인 홍종두(설경구)를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200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면서 비평적 찬사를 받았다.
처음 '오아시스'가 개봉됐을 때 공주 역을 소화한 문소리씨의 연기에 관객들은 찬사를 보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역할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기해냈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여성장애인의 현실성에 대해 장애인계는 주저 없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리얼리티의 부재는 이후 발표된 영화들에서 조금씩 개선됐지만 극단적인 상황이 줄었을 뿐 여전히 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표현들이 일부 영화에서 드러났다.
평단의 호평과 달리 장애인의 비판은 거셌다. 송정문 경남여성장애인연대 회장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오아시스, 장애인을 너무 모른다'는 글에서 "아무리 외로워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강간하려고 한 사람에게 그렇게 대처하는 사람은 없다"고 비판했다. 장애여성은 비장애인 남성이라면 어떤 사람이든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는 비장애인 남성의 무의식이 녹아 있다는 비판이었다. 종두가 공주의 강간범으로 몰리지만, 공주는 종두를 끝내 변호하지 못하는 장면도 논란거리였다. 장애여성들은 "아무리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도 그 정도 절박한 상황에서는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여성 공감'의 홍성희씨는 "오아시스는 장애여성의 생각있음, 저항함, 욕망함, 분노함, 생존을 위해 노력함, 성폭력에 상처받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장애인들은 <오아시스>에서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오아시스>를 지지하는 장애인도 있었다. <오아시스>는 장애를 영화의 소재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오아시스>에 이어 <후아유>(2002), <안녕! 유에프오>(2004) 등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제작됐다. 두 영화는 장애인 묘사의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장애인을 주체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05년 <말아톤>이 나왔다. <말아톤>은 발달장애(자폐)를 가진 스무살 초원이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초원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가를 묻는다. 초원이의 달리기가 엄마의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닌가를 의심하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해답을 제시한다.
마라톤 레이스에 지친 초원이의 환상 속에서 누군가 초코파이를 내민다. 초코파이는 엄마가 초원이를 달리게 하기 위해 내밀던 유인책이었다. 초원이는 초코파이를 버리고 달리기를 계속한다. 초원이가 스스로 달리고 싶어서 달린다는 영화적 표현이다. 이처럼 <말아톤>의 시선은 장애인을 향하려고 애쓰고 있다. 비장애인의 시선에 포획된 장애인을 그렸던 한국 장애영화의 한계를 나름대로 돌파하려는 몸부림이다.


◆장애, 소통불가의 영원한 소재?
'장애'라는 소재는 줄곧 인간과 인간, 사회와 개인 사이의 '소통불가'의 상징으로 등장해 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복수에 대한 여오하 <복수는 나의 것>(2002년, 감독 박찬욱)은 청각 장애인 청년 '류'가 그 중심에 서 있다. 누나의 장기이식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밀매하면서 꼬이기 시작한 사건은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면서 등장인물 전원이 죽음을 맞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 영화에서 '복수'의 근거가 되는 사건들은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딜레마이고 관객들은 소리가 '단절'된 청각장애인 류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화 전반에 얽힌 일방적인 소통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후아유>에서도 주인공이 청각장애라는 장애로 인해 현실에서는 상대에 대한 원만한 이해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믿으며 사이버 공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장애인의 현실을 실제와 비슷하게 반영한다기보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특성, 또는 상징의 요소로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영화 <말아톤>에서는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자폐장애인을 영화전면에 등장시키면서도 그 장애가 고립이나 소통불가의 상징으로 작용한다기보다는 장애특성을 있는 그대로 내보임으로써 장애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영화는 자폐장애인의 내면을 끌어내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고 관객들은 '자폐증'에 대한 이해와 더 나아가 한 개인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안고 가고 있는 것. 바로 이 점이 <말아톤>이 장애인을 다룬 이전 영화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가졌다는 근거다.



◆편견과 환상을 깬 <말아톤>에 남겨진 숙제
<말아톤>은 발달장애에 대한 편견과 환상을 동시에 깬다. 초원이는 발달장애인의 여러 가지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도 초원이의 행동을 보며 마치 우리 아이의 모습, 아이 친구의 행동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한 부모는 "자폐아 부모들과 단체 관람을 했는데 대형 마트에 진열된 물건들을 지나가며 빠르게 정돈을 하는 초원이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들이 '내가 아는 자폐아 중에서도 저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며 동감했다"고 전했다.
한편 발달장애인은 <레인맨> 등의 영화에서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말아톤>은 이런 환상도 깨뜨린다. 초원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동물의 왕국>의 내레이션을 줄줄 외우자 초원이의 마라톤 코치는 "365 곱하기 27은?"하고 묻는다. 하지만 코치의 기대와 달리 초원이는 하품을 한다.

장애인 가족 묘사에서도 <말아톤>은 진전한다. 초원이의 비장애인 동생은 형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엄마에게 불만을 느끼고 반항을 한다. 동생은 엄마에게 "나는 반항이라도 하지. 초원이 쟤는 대체 뭐야?"라고 따진다. <친구> 등 장애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온 류미례 감독은 "주원이의 엄마에 대한 불만은 엄마의 소홀함에 대한 항의를 넘어서 엄마가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대한다는 지적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아톤>이 장애극복의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에는 "쟤가 다른 애들과 다를 게 뭡니까?"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이 질문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이 녹아 있다. <말아톤>에서는 엄마가 초원이의 마라톤 도전을 포기하려는 순간, 코치가 이 질문을 이어받는다. 장애극복 신화의 재연은 장애인의 현실을 억압한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장애인 김영용씨는 "<말아톤>은 비장애인을 교육해주는 고마운 영화지만 관습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극복 성공담은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희망이 되는 동시에 '나는 저렇지 않은데' 하는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성공담은 장애인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에게도 부담이 된다.
자폐아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말아톤> 같은 영화를 본 친척들이 전화를 걸어 '저 엄마 하는 것 좀 봐라. 너는 왜 저렇게 못하느냐'고 핀잔을 준다"고 전했다. <말아톤> 다음에는 장애극복의 신화마저 극복한 장애영화를 볼 수 있을까? 장애영화는 전진하고 있다.

◆영화 속 장애인, 달라지고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영화 속 장애인의 모습이 과거와 조금 다른 분위기를 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장애인계 안팎에서 맹렬하게 비판받은 '오아시스'는 여성장애인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극단적인 내러티브가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삶이 영화의 소재가 되고 대중성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오아시스>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켜서인지 이후에 발표된 영화들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극단적 묘사가 줄었고 장애인이 비교적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특히 영화 <안녕, 유에프오>에서 여주인공이 시각장애인임에도 독립생활을 하고, 사랑을 하는 과정도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표현한 부분은 눈에 띈다. 또 장애인 역할을 예쁘고 인기 있는 여배우가 맡아 '장애인들은 모두 일그러진 신체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데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영화의 흥행을 위한 전략이었을지라도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