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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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0.08.2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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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리(月田里) 어귀에는 왜성(倭城)이 서 있다. 병풍처럼.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지은 성이라고 했다. 메이드 인 저팬이 품질은 참 좋다. 몇백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그 위풍당당함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자랑찬 민족승리의 유물일 수 없는 성, 왜성.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성을 공동묘지로 쓰고 있었다.

계절이 바뀔 무렵마다 꽃상여들이 줄을 지어 왜성으로 올라갔다. 겨울에 올라가는 꽃상여 뒤로 동네 아이들이 따랐다. 하관을 하고 꽃상여를 태우는 불 근처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호미와 낫을 들고 칡뿌리를 찾아 헤맸다. 아기 팔뚝같은 칡을 끌어 올리는 날도 있었으나, 낫자루같은 정체불명의 뼈를 파내는 날도 있었다. 어떤 형은 육이오 때 파묻힌 빨갱이의 정강이뼈라고 했고, 다른 형은, 지난 여름에 마을 어른들이 군청 어촌계장에게 대접한 개다리뼈라고 했다. 논쟁이 격렬해지면, 종종 그 뼈의 정체를 두고 주먹이 오고 갔다. 싸움의 승패에 따라 그 뼈의 정체가 확정되었다.

그 해 겨울, 삼촌이 죽었다.

서른 한 살. 마을사람들이 두유가 든 봉지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냉장고 밖까지 베지밀 박스가 쌓여갔다. 나는 벽돌처럼 생긴 베지밀 박스로 성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베지밀을 꺼내 마셨다. 삼촌은 뚝배기 같은 항아리에 담겨 왜성으로 올라갔다. 칡이 한창 맛나게 여물어가는 동짓달이었으나, 꽃상여는 없었고,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도 없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고, 너무나 시린 날씨였으나, 어른들은 아무도 옷깃을 여미지 않았다. 고모의 등에 업힌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어른들의 발걸음은 너무 느렸다. 할머니는 집에 누워 계셨으나, 대금소리 같은 당신의 곡소리는 왜성 끝자락까지 따라 올라왔다. 흰장갑을 낀 아버지가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어른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고 고모의 등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날이었다. 바람을 타고 한 줄기의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느다란 뱀같기도 했던 그 연기가 빠르게 흘러 내려갔다. 우리가 걸어 올라왔던 그 길을 거슬러 내려가고 있었다. 땅에 닿을 듯 낮았으나 떨어지지 않았고 흩어질듯 격렬히 요동치기도 하였으나,  용케도 풀이며, 나무들을 피해갔다. 개울을 뛰어 넘었고 몇 채의 지붕을 스쳤으나, 굴뚝에서 피어나오던 연기와는 섞이지 않았다. 연기의 꼬리가 사라진 뒤, 어른들은 또다시 느린 걸음으로 왜성을 내려왔다.

그날의 바람은 우리집 쪽으로 불었을 것이다. 바람은 왜성 돌길을 걸어 내려와 허겁지겁 대문을 두드렸을 것이고, 누워있던 할머니가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인기척을 하는 사이 바람은 장독대 근처의 돌담을 훌쩍 뛰어 넘었을 것이다. 뚜껑이 열린 빈독에 발을 한번 빠뜨렸을 것이고, 미끈거리는 문고리를 두어번 붙잡았을 것이고, 미닫이문을 세차게 열어제쳤을 것이다.

그리고 반쯤 기대어 앉은 할머니 가슴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하얀 봉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꽃상여를 따라다니지도 않았고, 칡을 캐러 다니지도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지 수년이 지나도록 할머니는 자주 마루 끝에 앉아 곡을 했다. 대금소리 같은 곡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한 여름에도 시린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왜성 근처를 한 바퀴 휘돌아 할머니의 가슴 속으로 모여 쌓였고.

바람이 멎은 그 가슴 속엔
검붉고 오종종한 칡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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