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정책, 이번엔 약발 받을까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채권, 분양가 병행 입찰제 시행
정부는 지난달 17일 부동산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확정, 발표했다. 판교 주변과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불붙은 집값 오름세를 꺾기 위해서다. 1967년 '부동산 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된 후 투기 대책으로는 26번째다. 정부가 발표한 판교 신도시 택지, 아파트 공급 대책의 골자는 분양 시기 연기와 분양가 억제다. 이를 통해 청약 과열을 완화하고, 분양가를 낮춰 판교발(發) 집값 급등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분양 연기(6월→11월께)는 주변 수도권 분양 공백기를 불러 시장을 얼어붙게 하고, 분양가 억제는 아파트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도 클 것으로 지적된다.


판교, 그 욕망의 땅
마지막 노른자위 땅! 엄청난 시세 차익 보장! 청약경쟁률 1109:1! 건설사도 판교에 올인! 올해 11월 아파트 분양을 예정중인 경기도의 작은 도시 판교. 개발의 큰 밑그림이 확정되면서 작년부터 조금씩 들썩거렸던 판교는 올해 첫 분양 예정으로 그 일정이 구체화되자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박, 꿈의 도시, 최적의 입지, 청약률 사상 최대라는 보도에 이어 평당 분양가 2천만원 설이 연일 언론 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기름에 물 부은 격으로 지난해 12월 초 분양을 노린 청약통장이 거래되고 있다는 기사까지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한껏 달아오른 주변 열기와 달리 '큰손들이 벌이는 게임', '죽자... 무슨 낙으로 살 것인가' 등의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판교, 현재 그곳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개발예정지구 비닐하우스 촌, 이 단지에는 화훼와 채소로 생계를 이어오던 약 5백 가구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할 처지에 있다. 현지 주민들이 이번 개발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 원거주자들은 사유재산권과 거주권만 침해당했다고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는 가운데, 한 시민단체는 판교를 공영개발할 경우 6조3천778억원이상의 가격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판교 개발의 청사진을 그리면서 전용면적 25.7평 이하 주택에는 분양가상한제(원가연동제), 25.7평 초과 평수에는 채권입찰제를 최초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중가격제를 실시하는 명분은 분양가상한제로 소형 평수에 사는 사람들의 부담은 줄여주고, 중대형 평수에는 상한가 없는 채권입찰제를 적용해 가장 높게 가격을 써낸 건설사에게 택지를 분양하고 그 채권수입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데 쓰겠다는 것.
그러나 25.7평 이하 평당 천만원, 25.7평 초과는 평당 2천~2천 5백만원 설이 돌기 시작하면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집단이 늘어났고 중대형 평수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더불어 10.29 대책으로 겨우 잡혀가던 분당, 강남의 집값이 판교發 2천만원 이상 분양설에 자극받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요동치기 시작했고 주변 용인, 수지 땅값도 덩달아 뛰어 올랐다.
부랴부랴 2월 17일, 정부는 원안을 보완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과연 정책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판교 주변 집값 상승 잡힐까
판교 중대형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2,000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후 판교 인근의 분당 대형 아파트값은 1~2주일 만에 5,000만~6,000만원 뛰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 채권, 분양가 병행 입찰제를 시행키로 함에 따라 판교 분양가가 평당 1,500만원 이내로 묶일 전망이다. 판교 분양가가 분당 등 주변 아파트값 상승을 부채질할 소지는 줄어든 셈이다.
다만 중대형 아파트는 입주 후 거래가 가능하고 새 아파트인 데다 입지 여건도 분당보다 좋아 평당 2,000만원 이상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판교 주변 집값을 잡겠지만 하반기를 기점으로 주택시장이 본격 상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판교 개발과 맞물리면 예상보다 빨리 더 큰 과열 양상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분양가를 억제함에 따라 당첨자들은 그만큼 더 많은 웃돈을 기대할 수 있다. 고수익이 예상되면 청약은 과열되게 마련이다. 정부는 과열이 예상되는 25.7평 이하 아파트에 대해 ▶인터넷으로 청약을 접수하고 ▶모델하우스를 업체별로 분산 배치하며 ▶청약기간 연장과 예약접수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모델하우스 앞 줄서기를 막기 위해서다.
병행 입찰제는 전용 25.7평 초과 아파트에 대해선 시장에 맡긴다는 채권입찰제의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채권 매각으로 더 회수할 수 있는 개발이익을 당첨자에게 넘겨주기 때문이다. 또 주택 업계는 업체마다 아파트 설계가 다른 상황에서 분양가를 미리 정하도록 하는 것은 아파트 품질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지역 청약 기피할 듯
정부는 내년까지 판교 분양을 나눠 진행하면 수도권 다른 지역의 분양 침체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11월 일괄 분양은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수도권 수요자들이 11월까지는 다른 곳에 통장을 쓰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분양 시장의 침체가 예상된다.
주택개발업체인 신승플래닝 권영태 부사장은 “판교 이외 지역의 수요 감소로 수도권에서의 주택 공급이 많이 줄 우려가 있다”며 “판교에만 매달린 정책으로 주택 공급 시장이 왜곡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분양시장이 풀리는 분위기였는데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면서 “분양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이전에 판교 아파트를 분양할 가능성에 대해 건교부는 택지 공급 준비가 덜 돼 분양 시기를 더 이상 앞당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11월에 분양키로 한 것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보유세, 거래세 개편,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 등이 상반기에 완비되고 혁신도시, 행정도시 착공 등 수도권 분산 대책이 하반기에 본격 시행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쯤이면 시장을 안정시켜 과열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청약 일정 혼선도 불가피하다. 11월 중 한꺼번에 2만여 가구를 분양하면 청약 과열이 어느 정도 해소되겠지만 낙첨하면 판교 입성의 꿈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내년에 1순위가 되는 수요자들은 아예 기회조차 없다. 내년에 청약 자격을 얻는 서모(34)씨는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내집 마련 계획을 또 바꿔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김세호 건설교통부 차관은 “집값 안정의 기조를 견지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점을 설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재건축 시장 ‘개발이익 환수제’ 시행
정부가 마련한 재건축 아파트 대책은 개발이익 환수제를 예정대로 시행하고,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규제 완화는 하지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기존 제도로 재건축 시장의 과열을 막을 수 없다면 법령을 고쳐서라도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까지 밝혔다. 이에 따라 꿈틀대던 서울 지역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강남 지역의 아파트 수요를 무시한 채 공급을 억제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는 지적도 있다.
◇개발이익 환수제 4월 시행 추진=정부는 개발이익 환수 방안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법이 통과되면 4월부터 당장 시행할 방침이다. 기존 조합원 지분에 임대 주택을 짓도록 한 것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감안해 임대 아파트를 짓는 대지 지분을 공시지가로 보상하는 방안 등을 넣기로 했다. 조인스랜드컨설팅 백준 사장은 “지난해 법 통과가 무산되면서 개발이익 환수제의 시행이 불투명해지자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다”며 “재건축 규제 완화로 받아들여진 환수제 후퇴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면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진단 더 엄격하게=재건축 여부를 결정하는 안전진단을 앞둔 아파트 단지들은 올 초 서울시가 안전진단을 구청으로 위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기대감을 키웠다. 주거환경 개선이나 지역 발전 등을 의식하는 구청이 서울시보다 덜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서울시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구청들이 노후 아파트의 안전진단을 졸속으로 통과시키려 할 경우 서울시가 이 권한을 회수하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건교부는 서울시가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관련법을 고쳐서라도 안전한 아파트가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일은 없도록 할 방침이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세의 선두주자였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지난해 12월 예비 안전진단을 받고 이달 말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심의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층수 제한 유지로 초고층 재건축은 불가능=압구정동 등에서 추진되는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과 관련, 당초에 검토했던 2종 주거지역 내의 층수 제한(서울의 경우 12층)을 풀어주는 방안은 새로운 임대 주택 단지를 빼고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재건축을 할 때 국민주택 규모 이하의 소형 평수를 의무적으로 짓는 제도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권도엽 건교부 차관보는 “초고층 아파트 건립에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어떠한 정책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정부가 필요에 따라 제도를 바꿔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억누르기만 하고 있다”며 “수요에 맞게 주택을 추가 공급하는 장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3개 신도시 ‘효과는 미지수’
경기도 양주 옥정, 남양주 별내, 고양 삼송 등 지역이 판교 신도시 수요를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는 부동산전문가가 많다. 이들 단지는 모두 수도권 북부권역이지만 판교 수요의 상당수는 서울 강남권과 분당, 용인 등 남부지역이어서 기본적으로 수요층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실거주 여부와 관계없이 '판교=로또'라는 기대심리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수요는 차단할 수 없다. 연세대 도시공학과 김의준 교수는 “수도권 동북부에는 신도시가 없기 때문에 주거환경이 좋아지면 강북권 수요를 끌어들일 수는 있다”며 “하지만 판교 대책으로는 수치상의 청약 경쟁률을 일부 낮추는 의미에 불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도 판교 신도시(280여만평)보다 100만평 이상 작아 신도시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지 미지수다. 양주 덕정을 제외하고는 규모를 늘리지 않아 기반시설만 괜찮은 '택지개발지구'로 남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3곳의 아파트 분양도 2007년께나 가능해 이미 판교 청약열풍이 휩쓸고 간 뒤다. 이에 따라 이는 판교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라기보다 판교에 쏠린 관심을 잠재워보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차라리 판교와 버금가는 입지의 땅을 개발하라는 주문도 나온다. 한국주거문화연구소 김승배 소장은 “공급확대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판교 수요 분산을 위해선 성남 서울공항이나 서울 강남권 그린벨트 지역 등을 개발하는 게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주거환경연구원 김우진 원장은 “수도권 북부는 지금도 미분양이 많은 지역”이라며 “강남 이남의 공급물량을 늘릴 수 없다면 오히려 강남권 재건축을 허용해주는 게 수요분산 측면에서는 더 효과가 클 수 있다”고 주장했다.

'2.17대책'후 강남, 분당, 용인 매수 문의 '뚝' 끊겨
정부의 ‘2.17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다음날인 18일 서울 강남, 경기 분당, 용인 등 최근 집값이 급등했던 지역의 일선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전날까지 빗발치던 매수문의 전화가 뚝 끊겼다. 매수세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 사무실에는 이번 대책의 여파를 묻는 매도자들의 문의만 간간이 이어졌다. 일부지역에선 소액(1백만원 정도)으로 가계약을 해놨던 매수자가 대책발표 직후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왔다. 하지만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매도호가가 급락하는 심각한 휴유증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래 매수문의 실종
대책발표 직후 수요자들은 관망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급등한 호가가 내릴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엘리트공인 박병수 사장은 “설연휴 직후부터 매수문의가 줄더니 대책발표 이후에는 한통의 전화도 못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개포동 조은집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을 팔려고 내놓은 집주 인이 매수자인 것처럼 꾸며 싸게 나온 매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특히 대책발표 직전에 평수를 늘려 이사하기 위해 큰 평형을 매입했던 실수요자가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복비를 줄 수 없다며 중개업소와 실랑이를 벌이는 진풍경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분당, 용인지역도 썰렁한 분위기였다. 팔자와 사자간 호가 차이가 4천만-5천만원 정도 벌어진 상황에서 대책이 터져나와 매수자들이 일제히 발길을 돌리고 있다. 분당 이매동 아름마을 신용공인 임이태 사장은 “호가 공백이 너무 커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그렇다고 싸게 팔려는 집주인도 없어 매물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현동 시범단지 백현공인 전상익 사장은 “거짓말처럼 거래가 뚝 끊겼다”며 “매수자들이 급매물을 기다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용인시 상현동 석사공인 이호영 사장은 “판교 중대형 분양가가 2천만원대로 알려졌을 때는 한달에 5건씩 계약을 했었다”며 “설연휴 직후 가계약을 했던 수요자가 이번 대책발표로 계약을 포기했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며 거래실종을 우려했다.

◆거래공백 장기화될 듯
일선 부동산중개업소는 이번 대책발표로 거래공백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책발표 직전에 급등한 매도호가에 주저하던 매수자들이 더 이상 집값 상승이 없을 것으로 판단, 매수를 포기하고 있어서다. 서울 대치동 엘리트공인 박 사장은 “기대했던 재건축 규제완화가 없던 일로 돼 버린 상황에서 호가는 올라있으니 앞으로 호가가 내리지 않는 한 찾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용인 죽전동 현대홈타운3차 인근 중앙공인 윤석민 사장은 “판교 분양가가 평당 2천만원 가량 될 것이라는 기대로 지난달 들어서만 중대형 평형이 6천만원까지 뛰었다”며 “정부가 평당 1천5백만원 이하로 분양가를 묶어버렸으니 집값이 오를 근거가 사라진 셈”이라고 향후 호가조정을 예상했다.
분당 이매동 아름마을 신용공인 임 사장은 “추가상승은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매도자들이 가격을 낮출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어 당분간 매수자와 매도자간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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