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지 선정,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1위’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고액의 연봉?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해고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일 것이다. 1998년 포춘(Fortune)지 어워드가 생긴 이래 줄곧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리스트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SAS. 비상장기업이라 스톡옵션도 없고 구글이나 골드만삭스처럼 네임 밸류도 높지 않지만 그 곳에는 야근, 비정규직, 정년, 정리해고가 없다.

미국 내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직장’에서 1위를 차지한 SAS는 특히 보건 및 의료 복지 혜택, 아동 보육 혜택 부문, 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 분석(business analytics)’ 소프트웨어를 개발, 서비스하는 SAS는 포춘 상위 100대 기업의 91%를 포함한 115개국 4만 5,000여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미국 인구 집계하고 분류할 때 ‘Base SAS’ 사용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농업데이터 분석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짐 굿나이트(Jim Goodnight) 박사와 존 샐, 앤소니 바, 제인 헬위드가 의기투합해 1976년 설립한 SAS(Statistical Analysis System).

고등학교 시절 수학과 과학에 큰 흥미를 느낀 굿나이트 회장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응용수학과에 진학, 새롭게 개설된 컴퓨터 과목을 수강하면서 프로그래밍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통계자료 분석을 쉽게 해주는 SAS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1976년 SAS 창립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는 창업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학교 근처에 회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학교에 묶인 몸이었던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때문에 창업 초기에는 대학 정문 앞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가 이후에 지금의 캐리로 회사를 옮겼다. 숲으로 이루어진 지역인데다가 합리적인 가격, 거기에 박사 학위 소지자가 많아 인력 확보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캐리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SAS 본사가 있는 캐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연구개발 클러스터인 ‘리서치 트라이앵글파크(Research Triangle Park·RTP)’의 중심 지역이다. 우리나라 대덕 연구단지가 벤치마킹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최근에는 세종시 수정안의 모델로도 알려졌다.

창립 당시 개발했던 SAS의 통계분석 프로그램인 ‘Base SAS’는 미국 인구통계국이 인구를 집계하고 분류하는데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농림부가 곡물 수확량을 예측할 때, 그리고 장거리 전화회사가 요금을 책정할 때에도 사용되고 있다. SAS는 이것만으로 2년 만에 600여 개 기업·기관 고객을 확보했지만 거기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이 ‘Base SAS’를 통해 축적한 대용량 정보처리 기술과 분석 능력을 기반으로 기업의 경영 전반을 다루는 솔루션 개발에 나선 것이다.

매년 총매출의 25% 정도를 연구 개발에 투자
SAS는 매년 총매출의 25% 정도를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금융·유통·제조·의료·통신 등 개별 산업 분야에 특화된 200여 개 응용 솔루션을 개발했다. 고객의 신용카드 거래 패턴을 분석해 도난이나 분실로 인한 불법 사용이 의심될 경우 승인을 보류하는 ‘카드 사기방지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이 솔루션은 전 세계 HSBC 지점에 도입돼 2006년 한 해에만 480억여 원의 비용을 절감해주는 역할을 했다.

SAS는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끝나는 일반적인 사업 모델을 벗어나 연간 단위로 소프트웨어 이용권을 판매하고 이를 갱신하는 ‘임대형 모델’을 선택했다. 1년이 지난 후에 SAS 솔루션이 마음에 안 들면 계약을 해지하고, 좋으면 할인된 가격에 계약을 연장한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객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SAS만의 독특한 사업방식이다. 실제로 SAS 고객의 서비스 재계약률은 98%에 이른다.

이 외에도 SAS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은행의 신용평가, 호텔의 고객 관리, 통신판매 업체의 고객별 카탈로그 선정 및 발송 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1990년 중반 이후 SAS는 다차원분석처리(OLAP), 데이터 추출(ETL) 툴 등 데이터 웨어하우스(DW) 솔루션과 품질 마이닝 및 리스크, 활동 기준 원가 관리 등 기업의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포괄적인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제품군을 선보이면서 엔터프라이즈 인텔리전스, 즉 ‘전사적 BI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 조성
SAS는 company 대신 연구소를 뜻하는 institute를 쓰고, 본사는 ‘캠퍼스(campus)’라고 부른다. 이는 일반적인 회사가 아닌 ‘공부하는 학교’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SAS의 직원들은 새로운 기술과 프로그래밍 언어, 운영 체계, 기타 다양한 방법론을 익히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항상 직원들에게 무조건적인 노력만 요구한다면 지금의 SAS는 없었을 것이다.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SAS가 돋보이는 이유다.

 

약 120만 평 대지에 25개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으며, 4,2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SAS캠퍼스 안에는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외에도 병원, 유아원(프리스쿨), 세탁소, 미용실, 병원 등 다양한 편의·복지시설이 갖춰져 있다. 또한 전문의와 간호사가 상주하는 병원이 있고 자체 요리사와 안마사 등이 있다. 자체 요리사가 있어 요일마다 다른 식사가 직원들에게 제공되고 휴게실에는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간식들이 가득하다. 수요일에는 M&M 초콜릿, 금요일에는 크리스피 도넛이 공짜로 제공된다. SAS에서는 M&M 초콜릿을 연간 22.5톤의 소비하고 있는데, 워낙에 많은 양이다보니 대량 할인을 받아 시장 가격의 1/3 정도로 구매하고 있다고 한다.

미취학 아동들이 다니는 프리스쿨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직원들은 아이들과 함께 출근했다가 아이들과 함께 퇴근할 수 있으며 점심시간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 특히 저렴한 이용료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외부의 프리스쿨들이 약 1,500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반해 SAS 내 프리스쿨은 단 410달러면 가능하다. 하지만 SAS 직원들은 이용료도 이용료지만 프리스쿨 덕에 마음 편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데 더 큰 점수를 준다.

하지만 프리스쿨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고생 자녀들을 둔 직원들을 위해 진학 상담소를 설립한 것도, 재무·법률 상담소, 은퇴 후 프로그램 안내센터, 노인건강 센터를 설립한 것도 SAS에게는 유별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신생아 출산 세미나’, ‘노인 가족 돌보기 세미나’ 등을 개최해 직원들이 평소 갖고 있던 고민거리를 해결해준다.

또한 SAS에서는 직원들이 매주 35시간 이상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야근을 하는 대신 맑은 정신력으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 낫다”는 굿나이트 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이에 SAS 직원들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주 35시간을 자유롭게 나눠서 일할 수 있다.

정년이 없는 SAS에서는 60세가 넘은 직원도 흔히 볼 수 있다. 기술 지원부서의 경우에는 직원들의 평균 재직연수가 15년이다. 굿나이트 회장은 “오래 근무한 직원일수록 더 많은 고객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역시 수월하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고객의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서 장기근속자들의 경험과 지혜를 높이 사고 있다.

이러한 SAS의 복지 프로그램들은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구글(Google)이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IT 기업들은 파격적인 직원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구글은 상장을 하기 전부터 인사 담당자를 SAS에 파견해 복지후생 프로그램을 배워가는 등 SAS를 벤치마킹했다. 구글의 대표적인 ‘무료 식사’ 복지 프로그램도 SAS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처럼 SAS를 모델로 많은 기업에서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인력에게 복지 늘려 이직률을 낮춘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직면했을 때 굿나이트 회장은 “아무도 자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SAS는 아무도 자르지 않았다. 오히려 직원이 더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이직률이 높은(20% 이상) IT 업계에서도 SAS는 불과 5%에도 못 미치는 이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을 두지 않는 SAS의 고용방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레크리에이션 센터 강사, 미용실 직원, 운전수들까지도 SAS에서는 모두 정규직원이다.

창립한 지 30년을 훌쩍 넘겼고, 글로벌 기업으로도 자리 잡은 SAS. 하지만 SAS는 여전히 비상장 회사로 남아 있다. 그동안 인수·합병 제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SAS는 비상장 회사를 고수하고 있다. 이에 굿나이트 회장은 “SAS가 대기업에 팔리게 되면 기존 직원 중 상당수가 해고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새로운 직원을 뽑아 새롭게 교육하는 것보다 기존의 인력에게 복지를 늘려 이직률을 낮추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한 SAS는 설립 이래 단 차례의 적자도 없이 매년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부채 역시 없었다. 단 한 번도 부채가 없었던 SAS이기 때문에 굳이 돈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도 여전히 비상장 회사로 남아 있는 이유다.

집 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되는 법
SAS에서는 신입사원을 포함한 전 직원이 개인 사무실을 사용한다. 임원들이나 개인 사무실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이는 업무 집중력을 높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늦게까지 직원들을 붙잡아두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35시간만 채우면 된다.

SAS는 일터이지만 업무 못잖게 ‘가정’을 중요시한다. SAS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업무에 집중하되 이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해 다음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업무에 집중하길 당부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오전 9시에 출근에 5시에 퇴근하지만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서는 7시에 출근해 3시에 퇴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SAS는 ‘칼퇴근’을 지향하기 때문에 오후 5시 이후에는 회사 내 전화를 자동응답기로 돌려놓는다. “가정이 편안해야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SAS에서는 업무와 가사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 스스로 SAS에 다니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일에 가치를 느끼게 되면 이는 결국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굿나이트 회장.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 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1위’인 SAS처럼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몇 해 전 미국 CBS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SAS를 ‘직원을 왕처럼 대접하는 회사’라고 표현한 것처럼 여느 기업들이 외부 고객을 향해 쏟는 신경 쓰는 만큼 내부 고객에도 소홀하지 않는 것. 이처럼 직원이 행복하면 좋은 제품이 개발되고, 소비자의 구매가 늘어나면서 회사는 성장하는 것이다. 진리는 의외로 단순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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