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컴퓨터를 이용한 도서 출판의 새 장을 여는데 주도적 역할

컴퓨터의 이해를 돕는데 많은 노력 기울여
이기성 교수는 한국 출판계 1세대인 이대의(장왕사 대표)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이신 이대의 씨는 광복 직후 많은 젊은이들이 한글을 모르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한글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출판사를 설립했다. 출판사를 설립한 이래 교과서를 발행·보급하는데 혼신을 기울여 온 인물이다.

지난 1964년, 이기성 교수가 대학생인 당시 6·3계엄령 사태가 발생하고 학교가 휴교되자 그의 부친께서는 그가 출판사에 들어와 출판 일을 도울 것을 권유했다. 이 교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출판사 업무를 배우게 되었고 이 일은 ROTC 통역장교 시절에도 이어졌다.
이기성 교수는 출판사 일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라디오 조립하기에서 비롯해 전축·무전기, 송수신기 등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혼자 만들 정도로 감각이 뛰어났다. 또 60년대 중반 컴퓨터와 처음 접한 이래 거의 독학으로 컴퓨터를 마스터했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 박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운 출판사 업무에 대한 오랜 경험과 노하우, 컴퓨터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열정이 더해져 자연스레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출판 분야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리고 ‘컴퓨터는 깡통이다’를 비롯해 ‘컴퓨터는 내 친구’, ‘소설 컴퓨터’ 등을 저술하며 컴퓨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컴퓨터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고 컴퓨터가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데 일조했다. 이중에서도 컴퓨터입문의 고전 ‘컴퓨터는 깡통’은 300백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의 책은 북한 IT연구개발기관으로부터 기증을 부탁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기성의 ‘SBS PC통신’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뚱보강사와 함께’ 코너를 통해 컴퓨터통신상의 어려움과 시스템의 문제들을 즉각 진단해 주기도 했다.

국내 전자출판분야 발전을 도모하는데 일조
이기성 교수는 23년 전 본인의 저서 ‘전자출판’에서 퍼스널컴퓨터를 이용한 출판시대를 예고했으며, 전자출판은 미래 성장산업이자 문화산업으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져 갈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일찌감치 예감하고 있었다. 이에 퍼스널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출판계의 선두자로 나서게 된다.
그는 출판계와 인쇄계의 한글처리 표준코드를 제정·보급하는데 기여했으며 1993년 컴퓨터에 쓰이는 한글
글자체의 표준형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출판 및 신문제작에 쓰인 컴퓨터사진식자기는 모두 일본에서 개발한 한글폰트를 사용해 왔다. 특히 일본에서 제작한 컴퓨터사식기가 국내 출판·인쇄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형 표준폰트의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교수는 한글폰트를 개발해 우루과이라운드협상과 관련, 지적재산권의 보호문제에서도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글 세라믹 폰트 개발, DTP 출판, 컴퓨터 한글·교신 등에 성공, 모든 컴퓨터에서 같은 방식으로 한글 출력, 개인용 컴퓨터에서 모든 한글 출력이 가능한 조합형 한글코드규격 KSC-5601-92 제정을 주도하는 등 큰 업적을 세웠다. 전두환 정부시절 공업진흥청에서 주도한 KS규격 코드는 이미 완성된 글자형태를 쓰는 2,350자 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이 교수는 초성, 중성, 종성을 활용해 한글 1만 1,172자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조합형을 주장하며 원리와 장점을 설파하였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이 빛을 발해 컴퓨터와 한글의 접목으로 새 시대, 새 장으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국내 전자출판분야의 대부’라고 불리고 있다.
특히 그는 2000년도에 도자기활자 제작기술을 180년 만에 재현하는데 성공하며 또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1820년께 소멸된 도자기활자는 금속활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유의 글자체로 180년 만에 세라믹 신소재를 이용해 한글 글꼴용으로 다시 탄생시켜 고품위 한글 출판물 제작을 가능케 했다. 이 교수가 도자기활자 제작기술에 주목하게 된 것은 유독성 있는 기존의 납 인쇄를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고심한 끝에 현대에 맞게 신소재를 혼합하여 연구에 성공했다. 그의 꿈은 연구에 성공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은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우리의 글자를 우리의 기술로 인쇄해 출판강국의 힘을 키우겠다는 또 하나의 간절한 꿈이 남아있다.

민족문화를 만들고 이어나갈 후진양성위해 최선
이기성 교수는 오랜 시간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오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후진양성의 필요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후학이 민족문화를 만들고 이어갈 수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교직에 몸담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전자출판학을 학문으로 정립하고 1995년 국내 최초로 계원조형예술대학에 ‘전자출판 전공’을 개설, 출판교육을 했으며 2000년 한국사이버출판대학을 설립하여 6년간 학장으로 재직했다. 1988년 한국전자출판연구회를 발기하여 23년째 전자출판에 관한 연구, 2003년 인쇄포털 PRART.COM에 ‘DTP강좌’를 개설해 5년간 강의와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23년째 강의를 했다. 또한 2004년 한국콘텐츠출판학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국내 최초 전자출판개설서 ‘전자출판’을 포함해 저술 64권(단독 42권, 공저 22권)과 학술 논문 97편을 발표했다.
“앞으로 도자기활자 제작기술 상용화, 왼손을 주로 사용하게 돼 있는 키보드를 수정하는 작업 등에 심혈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또한 우리 계원디자인예술대 학생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며 말하는 이기성 교수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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