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경제 울고 웃게 하는 현금영수증 제도
"현금영수증이요? 그런 것 난 몰라요."
5,000원 이상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현금과 함께 신용카드나 적립카드,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등을 제시하면 가맹점에서 소비자에게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고 현금거래 내역은 국세청에 통보되는 제도인 현금영수증제.
2005년 1월1일부터 '현금영수증' 제도가 시행됐으나 시행 한달이 다 지나도록 실생활에서는 그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현금영수증제도 시행과 관련, 중소 자영업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숨겨진 '세원(稅源)'을 드러내 '조세의 형평성'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내수침체로 허덕이는 중소 유통업체, 음식점 주인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약발 안 받는 '현금영수증 제도'
올부터 본격 시행된 현금영수증제도가 초기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식부족과 홍보부족으로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특히 지하상가나 재래시장 등은 매출 노출을 꺼려 현금영수증 단말기 설치를 기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금사용도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현금영수증제도는 신용카드처럼 영수증 복권 제도를 채택해 조기 정착할 것으로 믿어왔었다. 그러나 정부의 홍보 부족과 영세업자와 소비자의 인식 부족으로 초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의 한 유명 전자상가. 전자상가는 컴퓨터 부품이나 휴대전화, 가전제품 등 을 구매하기 위해 누구나 한번쯤 가본 곳인 데다, 비교적 고가의 현금 거래가 많다. 한 업소에 방문해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영수증을 받게 되면 가격이 오히려 비싸진다"는 황당한 답변을 듣게 됐다. 업소 직원은 현금영수증을 요구하면 통상적인 물건값에 부가세를 포함한 10%를 더 내야한다고 설명했다. 현금영수증 대신 카드 결제를 물어봐도 역시 5%에 달하는 수수료를 물건값에 더했다.
업주가 물어야하는 세금이나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에서는 이런 업소에 대한 신고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현금영수증은 물론 카드 수수료를 포함해 세금은 업체측에서 부담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원래 물건값에 세금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답변. 오히려 "물건값에 일일이 현금영수증 발급하면 그만큼 세금이 업체쪽에 돌아오는데 그 피해는 누가 책임지냐"며 버럭 화를 냈다.
또 다른 곳에선 "영수증을 연말정산 때까지 일일이 보관하기 힘들지 않으냐. 비싼 수수료를 더하느니 그냥 현금으로 싸게 사는 게 이익"이라며 설득까지 했다. 용산과 오랫동안 거래해 온 한 PC게임 관련 직원은 "전자상가 상인들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꺼리는 이유는 매출액이 고스란히 드러나 세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며 "물건 가격을 조정하더라도 현금영수증 발급을 기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상인뿐만 아니다. 전자상가를 찾은 소비자들마저도 상인의 얘기를 그대로 믿거나 현금영수증 제도를 잘 모르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PC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수원에서 왔다는 한 대학생은 "현금영수증을 받게되면 물건값이 비싸진다"는 상인의 얘기를 그대로 믿었다.
식당들도 현금영수증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 사당동의 한 소규모 식당 주인은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데 몇 천원짜리 밥값까지 영수증 발행하면 우리는 죽으라는 얘기"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현금영수증발급기를 설치하고도 국세청에서 권장하는 가맹점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은 가게들도 눈에 띄었다.
이중 가격제도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금은 늘고 매출은 줄어들 텐데…". 서울 은평구에서 한 달 매출 1,000만원 정도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 씨(42)는 올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현금영수증제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자니 매출의 40%나 되는 '무(無)자료 거래'가 드러나면서 세금이 늘어 한달 130만 150만원에 불과한 수입이 더 줄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발급하지 않으면 영수증을 쉽게 내주는 할인점 등으로 손님을 뺏기고 세무조사까지 받을까 우려한다.
이 씨처럼 현금영수증제도 시행에 따른 중소 자영업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숨겨진 '세원(稅源)'을 드러내 '조세의 형평성'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내수침체로 허덕이는 중소 유통업체, 음식점 주인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5,000원 이상 현금 거래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는 가맹점 수는 지난해 말 전국적으로 45만 곳, 올 중에는 100만 곳 이상으로 늘어난다. 또 정부는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 복권 제도를 시행하고 신용카드 수준의 소득공제 혜택도 주기로 했다. 소득이 없는 배우자, 자녀, 부모 등의 영수증도 합산해 소득공제 혜택을 주기 때문에 발급을 요구하는 소비자는 급속히 늘어날 전망.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金京源) 상무는 "신용카드 확산 때 그랬듯 영수증 발급을 잘해 주는 대형 매장은 손님이 늘고 발급을 꺼리는 중소형 업체는 손님이 줄어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며 "중소 자영업이 위축되면 체감경기도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도심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홍모 씨(38)는 최근 세무사와 현금영수증제 문제로 상담을 했다. 결론은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 영수증을 발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 홍 씨는 "한 해 매출 12억 원 중 세금신고에서 뺐던 4억 5억 원이 영수증 발급으로 노출되면 지난해 6,000만원 정도였던 세금이 1억 원 이상 될 것"이라며 "현재 이익을 유지하려면 주변 가게와 '담합'이라도 해서 음식 가격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무자료 거래의 비중이 높은 서울 용산, 테크노마트 등의 전자제품업체들은 현금영수증을 받지 않는 고객에게 가격을 깎아주는 '이중 가격제'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재정경제부는 올해 수입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업소는 늘어난 세금 전액을, 2006년 수입이 전년보다 30% 이상 늘면 절반을 돌려주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중소 자영업자들은 "한두 해 세금을 깎아줘도 이후 수입이 노출돼 세금을 모두 내면 투자비용도 뽑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잘만 챙기면 돈 되는 현금영수증
현금영수증제도 도입이 침체된 소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제전문가들은 현금영수증제에 따라 소비자의 현금 지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소비자들이 그 동안 일반 영수증을 받을 때는 전혀 혜택이 없었던 데 반해 현금영수증제도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5,000원 이상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현금영수증을 잘 챙기면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이와는 별도로 추첨을 통해 최고 1억원의 보상금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현금영수증은 복권 당첨과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현금영수증 사용 금액은 신용카드(직불카드 포함) 사용 금액 및 학원 지로납부 금액 등과 합산돼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전체 총 급여액의 10% 초과 금액의 2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으며, 공제한도는 500만원이다.예를 들어 전체 급여액이 4,000만원인 근로자(4인 가족)가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현금영수증 사용액으로 1,500만원을 썼다면 근로소득 공제금액은 (1,500만-400만원 15%) 20%를 계산해 180만원 가량된다.
이에 따른 실제 세금 혜택은 30만~40만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특히 공제한도가 500만원이므로 전체 신용카드, 직불카드, 현금영수증 사용 금액이 위에서 예를 든 사례보다 많다면 그만큼 소득공제액은 늘어나게 된다. 다만 지난해 연말까지 시범실시 기간에 발행된 사용 금액은 올해 연말정산 때 소득 공제를 받지 못한다.
현금영수증 사용자는 신용카드복권제와 비슷한 보상금도 기대할 수 있다. 보상금은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현금영수증 복권을 통합해 운영되며 '생활영수증 보상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된다.
추첨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최고 액수는 1억원(1등)에 달한다. 2등 2명에게는 2,000만원, 3등 5명에게는 500만원, 4등 100명에게는 10만원, 5등 7,000명에게는 1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도 현금영수증을 사용할 경우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가맹점에서 현금과 함께 신용카드나 적립식카드 또는 기타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을 보이면 된다. 이러한 카드가 없어도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거나 휴대폰 번호를 제공해 본인임을 확인하면 된다. 현금영수증은 서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발급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발급받은 현금영수증을 일일이 챙길 필요는 없다. 자동적으로 적립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가 직접 현금영수증 발급 내역을 확인하려면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용자 ID와 비밀번호를 등록하면 가능하다. 접속을 통해 현금결제 내역을 확인할 수 있고 연말정산용 소득공제 확인서를 출력할 수 있다. 누락된 게 있다면 상담센터에 확인하면 된다.



현금영수증제 200% 활용법
아이들이 쓴 돈도 소득공제-카드와 합쳐 500만원 한도

새해 초 첫 도입된 현금영수증제 시행이 지지부진하다. 현금영수증 발급건수는 첫날인 지난 1일 21만1,080건에서 4일에는 34만5,903건으로 늘었지만, 가맹점수(68만357곳)에 비하면 가맹점당 하루 0.5건에 불과하다. 이는 현금영수증 시행 대상이 신용카드 가맹점이다 보니 소비자들이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을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홍보 부족 등 당국의 준비 부실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금영수증의 다양한 혜택에 대해 소비자가 잘 모르는 상황이다. 가장 큰 혜택은 미성년 자녀와 노부모 등 부양가족이 모은 현금영수증도 연말정산 때 소득 공제 대상이 된다는 것. 또 신용카드로 결제하기엔 '눈치'보이는 5,000~2만원짜리 소액 결제는 현금영수증을 적극 활용하자.

▲현금영수증 이용법=올해부터는 신용카드(현금영수증 포함) 사용액 소득 공제 기준이 '연봉 10% 초과분'에서 '연봉 15% 초과분'으로 강화돼 소득 공제를 받기 어려워진 만큼 현금영수증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현금영수증제도의 골자는 가맹점에서 5,000원 이상을 현금으로 내면 신용카드처럼 거래내역이 국세청으로 자동 통보되는 것이다. 현금영수증을 받으려면 신용카드, 캐쉬백(적립식)카드, 멤버십카드 등 소비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신분 확인을 위한 카드는 카드번호가 13~19자리여야 하며, 마그네틱선이 있어야 한다. 신용카드 단말기에서 인식할 수 없는 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만일 카드가 없으면 주민등록증이나 휴대전화 번호로도 가능하다. 연말 정산을 위해 소비자가 현금영수증을 모아둘 필요는 없다. 국세청이 가맹점으로부터 통보받은 현금영수증 거래내역을 홈페이지(http://현금영수증.kr)에 저장해두기 때문이다.
▲현금영수증 혜택=현금영수증 사용금액은 신용카드(직불 체크카드 포함) 이용액과 합쳐 소득 공제를 받는다. 소득 공제한도는 총급여액의 15%를 초과하는 부분의 20%(500만원 한도)다. 예컨대 연봉 4,000만원인 근로자의 신용카드 이용액이 1,500만원, 현금영수증 사용액이 500만원이라면 (2,000만원-4,000만원 15%) 20%인 280만원의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소득 공제로 돌려 받을 수 있는 세금은 25만~50만원 수준이다.
신용카드처럼 복권 당첨도 기대할 수 있다. 국세청은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에 19세 이상 사용자 중 추첨을 통해 1등(1명) 1억원, 2등(2명) 1,000만원, 3등(3명) 500만원, 4등(100명) 10만원, 5등(1만명) 1만원 등의 당첨금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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