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강의 준비를 뒷전으로 미루고, 또 써야 할 논문과 심사를 위해 읽어야 할 논문을 외면하고, 사이버대학원 설립 따위 각종 잡다한 일를 모른 척 하고, 첨삭해야 할 학생들의 글을 곁눈질하며, 어제부터 아픈 허리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오늘도 난 이것저것 잡다한 책들을 뒤적이고 있다.

벌써 5월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이젠 한숨도 지겹다. 뭐 하고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고작 3학기를 했을 뿐인데, 강의도 귀찮고 보람이 없다. 강의가 보람이 없는 첫째 이유는, 보수가 적어서다. 강사들의 참담한 처지에 대해서는 신문지면에 가끔 오르내기도 하지만, 동정적인 가십거리 이상의 관심을 얻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난 4월 30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료를 공개했는데, 4년제 대학의 평균 시간당 강사료는 3만6천400원이라고 한다(내가 받는 강사료는 이것보다 '쬐끔' 더 높으니, 평균에는 속한다). 참고로 가장 많은 강사료를 지급하는 대학은 상지대학교로 6만4천300원이고, 가장 낮은 강사료를 지급하는 대학은 신경대학교로 단돈 2만원이다(이걸 주는 심보는 대체 뭔가?).

평균 강사료를 기준으로 3학점 강의를 4개 맡아도 200만원이 안 된다. 이짓을 2, 3년, 아니 5년만 하라고 해도 하겠다. 그러나 이 굴레에서 벗어날려면 평균 10년 이상이 걸린다. 마흔이 될 때까지 월 200만원 이하의 봉급자로 살아야 한다(그나마 방학에도 강의를 맡을 수만 있다면). 강의가 보람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뭐가 있겠는가? 두 번째도 적은 보수다. 세 번째는? 역시 보수가 적어서다. 이건 돈을 밝히는 게 아니다. 대학에서 나대로 학생들을 위해 강의 준비하고 일일이 학생들의 글을 정성껏 첨삭하고 받는 돈이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적다면 강의할 맛이 나겠는가. 일한 만큼 그에 합당한 결과(보수)를 얻지 못하면 당연히 보람도 없고 일할 맛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적은 보수'는 일한 만큼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합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임금을 달라고 정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요구할 때는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려면 강사들끼리 조합을 결성해서 대학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일을 벌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조합이 없는 대표적 조직은 삼성과 프로야구와 대학일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거기도 시간강사의 현실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일본은 시간강사들이 조합을 결성해 부당한 해고와 낮은 임금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학과 투쟁을 벌인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102090122)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 인권, 평등 등의 권리들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투쟁을 통해 얻은 것임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투쟁은 현재의 나 자신보다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한 것임도 깨닫는다. 강사들이 왜 조합을 결성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엔 어떻게든 나만 교수가 된다면 지금까지 고생한 것을 만회할 수 있다는 이기적인 복불복주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바로 이 점이 노동자와 강사의 결정적 차이다. 어느 노동자가 10년만 버티면 연봉 7, 8천만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강사들이 참담한 현실을 각개약진으로 돌파하는 이유는 어떻게든 교수 자리를 차지하면 고액연봉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복권당첨에 대한 천박한 희망 때문이다). 연대의 조건은 '내'가 아니라 '우리'다. 연대의 시간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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