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 내각 출범하자 지지율 회복, 성장주도 정책 도입기대

8개월 만에 막 내린 하토야마 정권
하토아먀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돌아선 민심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난해 8월 중의원 선거 직전 “후텐마 미군기지를 최소한 오키나와현 밖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12월 15일 “내년 5월 말까지 새로운 이전지를 포함해서 결정하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올 4월21일 당수토론에서 총리직까지 걸었다. 그러나 미국의 완강한 반대와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지난달 말 헤노코 이전 안으로 회귀했다.
합의안에 반대한 사민당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소비자담당상을 파면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반발한 사민당이 연립정부에서 이탈하자 여론의 화살은 스스로 발언을 뒤집은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쏠렸다. 당시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에 무게가 없다”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일었고 출범시 80%대를 오가던 내각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당시 하토야마 총리는 민주당 중의원·참의원 합동 총회에서 “국민들이 집권 여당의 말을 전혀 듣지 않게 됐다”고 시인했다.
정치자금 의혹도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해 12월 모친으로부터 정치자금 10억 엔을 받고서도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혐의로 총리 본인이 아닌 당시 비서를 기소했고, 하토야마 총리는 공개 사과까지 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정치자금 의혹도 집권 여당 지도부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결국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의 동반 퇴진이라는 쓸쓸한 결과를 가져왔다.

세습 총리의 한계, 4년 새 4명 총리 ‘중도하차’
이번 하토야마 총리의 사퇴는 일본 정치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역대 3번째 장수총리로 기록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2001~2006년) 총리가 물러난 이후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336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가 365일,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가 358일 만에 하차했다. 그리고 8개월 만에 하차한 하토야마까지 지난 4년 동안 일본의 총리 재임기간이 평균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결과다. 신임 총리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각종 민생·개혁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언을 되풀이하며 결국 모두 1년을 채우지 못한 ‘단명 총리’로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자 국민들의 상실감과 정치 불신은 깊어져 갔다.
6월3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치 전문가들은 이들 총리 4명이 외견상의 공통점뿐만 아니라 신념이 없이 ‘액세서리 감각’으로 총리직을 수행했다는 점도 비슷하다”고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는 자민당 정권의 아베, 후쿠다, 아소 전 총리와 민주당의 하토야마 총리가 모두 조부나 부친이 총리를 지냈고, 한결같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이 도모아키(岩井奉信) 니혼대 교수는 “국민들은 ‘생활에서 곤란을 겪은 적이 없는 세습 정치가가 또 정권을 내던졌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6월3일자 사설을 통해 “하토야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시도했던 의의는 크다”며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8개월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디를 고쳐야 할 것인가를 맹렬히 반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하토야마 전 총리는 사퇴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후텐마 주일 미군기지 이전 문제의 해결 기간으로 약속한 6개월은 너무 짧았다”고 술회했다.

간 나오토 내각 출범, ‘밑바닥’부터 갈고 닦아온 정치인
이런 가운데 지난 6월4일 오전 민주당 양원 의회총회에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부총리가 민주당 대표 겸 제94대 총리로 확정되었다.
간 나오토는 1960년대 학생운동과 시민단체를 거쳐 맨손으로 출발해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1946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공업대학 응용물리학부를 졸업한 후 특허사무소에 들어가 변리사 자격을 땄다. 변리사 활동을 하던 즈음부터 시민운동을 시작했고 그때 알게 된 여성운동가 이치카와 후사에(작고)의 선거사무장을 맡아 참의원에 당선시킨 것이 정치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는 76년 중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결과는 낙선. 1977년과 1979년에 참의원 선거와 중의원 선거에서도 차례로 고배를 마셨다. 그 후 80년 총선에 당선되면서 의회에 입성, 94년 사키가케에 입당해 정조회장을 역임했고 하토야마 류타로 정권 때 여당의 일원으로 후생상에 입각했다. 1996년 후생노동상 시절 혈액 제제에 의한 에이즈 감염이 관청의 실수로 비롯된 사고임을 밝혀낸 뒤 철저한 관료개혁주의자가 됐다. 96년엔 사키가케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와 함께 탈당해 민주당을 결성해 초대 대표를 맡은 간 나오토는 이후 2004년까지 하토야마와 돌아가며 대표를 맡아 민주당을 이끌었다.
간 나오토는 토론을 즐기고 정책에 두루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정치자금 문제에서만큼은 비교적 깨끗하고 강한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이란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이라칸(イラ管·까칠한 간 나오토)’이란 별명이 말해주듯 다혈질 성격 때문에 지명도나 국민적 인기에 비해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미일 동맹강화, 경제 및 재정정책 등 변화 예상
새 정부는 무엇보다 미국 등 기존 우방과의 동맹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간 나오토는 지난 6월3일 기자회견에서 “강한 경제, 강한 재정, 강한 사회 보장을 일체적으로 실현하겠다”고 정책 기조를 밝혔다. 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하토야마 내각의 아시아 중시 외교를 이어받겠다고 다짐한 반면, 미국과의 신뢰회복과 미·일 동맹 강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 6월5일자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간 신임 총리를 “하토야마보다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하토야마 내각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후텐마 기지 문제는 간 신임 총리에게도 난제다.
당분간 덮어둘 가능성이 크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이 문제를 섣불리 건드렸다가 정권 위기를 초래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아가와 나오유키(阿川尙之) 게이오대 교수는 “하토야마 총리의 기본적인 태도는 ‘가능하면 오키나와에 미 해병대는 없는 편이 좋지만 (없애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해봤는데 안됐다’는 것이었다. 간 신임 총리도 이 자세를 되풀이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게 미국과 관계에서 중요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미 하토야마 총리가 미일 합의를 통해 후텐마를 같은 오키나와현내 나고(名護)시 미군 캠프슈워브 연안부로 이전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취임 전부터 “일미동맹이 일본 외교의 기축”이라고 강조한 그는 6월4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후텐마 기지에 관한 미일 합의를 중시하겠다”고 밝혀 미국을 안심시켰다.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 교토대 교수는 “하토야마 내각은 후텐마 문제를 정치적으로 너무 키웠다. 앞으로는 일미(日美) 합의에 기초해서 정권 전체가 오키나와(沖繩) 주민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또 의사 결정 과정이 혼란스러웠던 하토야마 내각의 모습을 반성하고, 정부에 들어가는 정치가나 당 정책조정회의 간부가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 대한 외교도 대미 외교와 모순되지 않는 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이나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하토야마 내각의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정책을 중심으로 경제정책도 변화가 예상된다. 일본의 국가부채 규모는 올 연말께 970조 엔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180%가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진국 최악 수준이다. 간은 재무장관 취임 직후부터 소비세 인상을 주장해왔고, 일본의 국가채무에 대해서도 “부채를 겨루는 올림픽이 있다면 일본은 금메달”이라며 강하게 비판해왔다.
지금까지는 국채를 찍어 예산을 조달했지만 더 이상 국채발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새 정부는 소비세 인상으로 급한 불을 끌 것으로 보인다. 현행 5%인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를 10%선으로 끌어올리면 10조 엔 정도의 세수를 늘릴 수 있다.
복지정책은 미조정하는 선에서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급되고 있는 만큼 철회는 불가능하다. 논란을 빚고 있는 고속도로 무상화는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정권은 자녀수당을 올해는 중학생이하 자녀 1인당 반액인 월 1만 3,000엔을 지급하고 내년엔 전액(월 2만 6,000엔)을 지급한다고 공약했지만 재원 염출이 어려워 내년 전액 지급 여부가 관심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공립고등학교 학비 무상화는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반(反)오자와’ 전면배치… 여론은 ‘환호’, 측근은 ‘우려’
민주당 대표인 간 총리는 당정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간사장과 관방장관에 반(反)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성향의 인물을 포진시켰다.
당 간사장에는 반오자와의 선봉에 서 온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행정쇄신상을, 경제사령탑인 재무상에도 역시 반오자와 성향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 부대신을 발탁했다. 관방장관에는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국가전략상을 내정했다. 센고쿠 장관은 오자와의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계속해 왔다. 국가전략상에 기용된 아라이 사토시(荒井聰) 총리보좌관도 오자와와 가깝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탈 오자와 인사단행에 대해 총리 측근은 “오자와를 이렇게까지 적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를 의식한 듯 당의 요직인 국회대책위원장에는 오자와 그룹이 당 대표 경선에 대항마로 내세웠던 다루도코 신지(樽床伸二) 중의원 환경위원장이, 오자와 그룹의 하라구치 가즈히로(原口一博) 총무상과 고시이시 아즈미(興石東) 참의원 의원회장을 유임시키는 유화책을 폈다. 내각의 안정을 위해 전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임명한 각료 중 11명은 유임시켰다.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오자와 그룹의 지지를 받은 다루도코를 요직인 국회대책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오자와 그룹에 대한 배려이자 이들의 반발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간 총리는 오자와의 영향력에서 독립하고 정권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당 내부에서도 참의원 선거에 ‘간 총리’를 간판으로 내세워야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탈 오자와’는 양날의 칼이다. 산케이신문은 오자와가 이번에는 넘어가는 대신 9월 당 대표 선거 때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오자와계를 배제한 것은 9월에 당 분열이 이뤄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며 “오자와가 탈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진짜 승부는 9월이다”라며 “참의원 선거 후에는 직접 선두에서 진짜 개혁을 이끌겠다”고 당 대표와 총리에 도전할 의사를 내비쳤다.
한편, ‘탈(脫) 오자와’를 내건 간 내각이 출범하면서 집권 민주당 지지율도 V자형으로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 지난 6월4일~5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36.1%로 5월말 실시했던 직전 조사 때의 20.5%에 비해 무려 16%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자민당 지지율은 20.8%로 직전조사 때의 21.9%에 비해 떨어졌다. 지난 6월6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지난 4일~5일 실시한 전국여론조사 결과 간 나오토 신임 총리에게 ‘기대한다’는 응답은 59%로 ‘기대하지 않는다’(33%)를 크게 상회했다. 간 총리에게 기대하는 것으로는 지도력이 32.3%로 가장 높았고, ‘국민에 대한 설명능력’(21.4%), ‘서민감각’(16.3%) ‘성실과 겸허’(12%) 등의 순이었다.

한일 관계 어떤 변화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한일관계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간 총리가 이미 하토야마 내각의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간 총리는 지난 6월4일 중국, 한국 외교를 중시하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거론하며 “내 목표로 삼고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역설했다.
간 총리는 하토야마가 추진해온 한국이 관심을 두고 있는 재일동포 지방선거 투표권 부여와 일본군 위안부, 징용피해자 등에 대한 전후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호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간 총리와 민주당 인사들이 대부분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중시하고 과거사 청산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정책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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