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떼어내 보면 어떨까”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이케아의 혁신

“이케아의 비전과 비즈니스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더 좋은 생활을 만듭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 하나하나에는 집을 보다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습니다.” -홈페이지 내용 중-
70여 년 전 스웨덴 남부, 숲이 우거진 마을에서 작은 아이디어로 그 시작을 알린 이케아(IKEA). 지금도 더욱 울창하게 자라나고 있는 그 아이디어가 바로 지금의 이케아 콘셉트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더 좋은 생활을 만든다’는 비전 아래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멋진 디자인과 기능의 다양한 홈퍼니싱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제품에 녹아있다.

   
 
전 세계 28개국에서 328개의 매장, 총 978개의 공급업체(2015년 8월 31일 기준)를 운영하고 있는 다국적기업 이케아는 저가형 가구, 액세서리, 주방용품 등을 판매한다. 좋은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DIY(Do it yourself) 가구로 유명해진 이케아는 194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 잉그바르 캄프라드에 의해 설립됐다.
1943년 스웨덴 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캄프라드는 좋은 성적을 얻어 아버지에게 받은 상금으로 1인기업인 통신판매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I와 K에 자신이 자란 농장 ‘엘름타리드(Elmtaryd)’와 마을 이름인 ‘아군나리드(Agunnaryd)’의 이니셜 E와 A를 합쳐 IKEA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규모 통신판매업체였던 이케아는 볼펜, 지갑, 액자, 시계, 장신구, 나일론 스타킹 등을 팔다가 1945년 팔걸이가 없는 단순한 의자를 팔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지역신문 광고를 시작했다.
이후 1947년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한 이케아는 1950년대 초반 통신판매업체의 가격 경쟁이 심해지자 통신판매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가구판매에만 집중했으며 1951년에는 이케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첫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이어 1953년에는 알름훌트(Almhult)에 첫 가구 전시장을 열었으며, 1955년부터는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조하기 시작했다. 경쟁업체 압력으로 제조사로부터 물건 공급이 중단되어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기존의 제품들보다 디자인은 더욱 독창적이고 가격은 싼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56년에는 조립식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3년에는 외국 시장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노르웨이에 첫 매장을 연 이케아는 1967년에 덴마크, 1973년 스위스 취리히, 1985년 미국, 1987년 영국에 차례로 매장을 열면서 세계 각지에 이케아의 영역을 표시해나갔다. 현재 이케아는 호주, 독일,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벨기에,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매장을 갖고 있다.
이케아의 전 세계 매장은 대부분 잉카 홀딩(Ingka Holding)의 자회사인 이케아 그룹(IKEA Group)이 운영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프랜차이즈로 운영되고 있다. 잉카 홀딩은 캄프라드 회장과 그의 부인, 변호사 등이 이사진으로 있는 네덜란드의 비영리 법인인 스티칭 잉카 재단(Stiching Ingka Foundation)이 소유하고 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사업권을 잉카 재단에 이양하고, 재산의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했다. 또한 이케아의 상표권과 프랜차이즈 회사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인터 이케아 시스템스(Inter IKEA Systems)가 소유하고 있다.

   
▲ 이케아 매장은 1층 마켓과 2층 쇼룸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으로 된 블루 박스형의 매장은 평균적으로 30만 평방피트(8,5000 평)로 미국과 독일의 대부분 이케아 스토어는 이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쇼룸은 다양한 콘셉트로 인테리어 된 주방, 침실, 거실 등을 둘러보면서 사진이 아닌 실물로 모든 가구를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단순히 전시의 역할을 넘어 소비자들이 직접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 공간 역할을 한다.
이케아의 조립식 가구 판매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1956년 한 직원이 탁자를 포장하려고 보니 부피가 턱없이 커지는 것을 보고 “다리를 떼어내 보면 어떨까?”라고 한 것. 또 한 가지 이유는 운송 도중 파손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리를 떼어내서 따로 포장하니 부피도 작아지고 배송 또한 한결 용이해져 이를 계기로 이케아는 점점 적용 폭을 넓혀나갔다. 조립식 가구 판매를 통해 이케아는 파손율을 줄이게 된 것은 물론 포장, 운송, 창고비용 절감의 효과를 창출해 제품의 가격인하로 이어졌다.
판매방식도 마찬가지다. 스톡홀름에 이케아 매장의 문을 연 첫날, 1,000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물건을 옮겨다 줄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이케아는 창고를 개방해 소비자들이 스스로 물건을 찾아오도록 했고 이는 곧 이케아의 판매 시스템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케아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캄프라드는 자국인 스웨덴 사람들보다 폴란드 사람들이 훨씬 낮은 가격으로 가구를 생산할 수 있다고 판단, 이케아의 기술자들을 파견하고 장비를 폴란드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케아의 인기를 시기한 스웨덴 가구 업체의 보이콧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케아를 상대로 단체 보이콧을 하자 캄프라드는 공장을 아예 폴란드로 옮겨 저가의 고품질 가구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보이콧이라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은 캄프라드의 위기대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캄프라드는 대표적인 ‘구두쇠’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재력가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회장 자리에 있는 동안에도 줄곧 이코노미 좌석만 고집하는 구두쇠로도 유명세를 날린 인물이 바로 캄프라드다.
캄프라드는 출장에서도 절대 일등석 항공편 출장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의 평소 생활 자세이기도 한 반면에 유통업의 특성이기도 했다. 단 1%의 비용 절감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통업의 특성에 그의 구두쇠 정신까지 더해져 직원들은 물론 자신 스스로도 일등석을 거부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형식적인 것도 거부했다. 이케아의 직원들은 정장이나 넥타이 대신 일하기 편한 캐주얼차림으로 출근해도 상관없다. 캄프라드의 이러한 정신은 곧 이케아의 정신으로 이어졌다. 이케아가 추구하는 심플한 디자인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이케아는 스웨덴의 전통가구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재창조했다는 평가받고 있다. 이케아가 추구하는 심플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은 곧 스웨덴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성을 대변한다.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동원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를 내놓아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케아. 이케아의 디자이너들은 ‘단순함이 미덕이다(Simplicity is a Virtue)’라는 디자인 콘셉트로 디자인 한다. 이는 결국 저렴한 가격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케아가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규모에서도 그 비밀을 찾을 수 있다. 이케아는 ‘박리다매’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회사의 히트상품인 LACK 테이블의 경우, 1990년에는 25.7유로의 가격에 24만 2,000개를 팔았지만, 최근에는 9.9유로로 2백만 개를 팔았다. 인기가 있는 상품은 대량 생산해 이듬해에 더욱 더 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 폐쇄적이던 가구업계 틈에서 이케아는 이케아만의 방식으로 창의성을 키워나갔다. 당시 가구조합에 가입한 중고 가구업자들은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려는 이가 생기면 그들끼리 똘똘 뭉쳐 이를 막았다. 그리고는 담합해 가구 가격을 높게 책정해 이익을 챙기는 등 다분히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캄프라드는 소비자를 우롱하며 폭리를 취하는 대신 소비자가 가구를 구입하는 비용을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가구 구입 시에는 가구점을 돌아다니면서 가구를 고르고, 가구를 구입한 뒤 배송, 설치하는 단계를 거치지만 캄프라드는 이 단계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많은 가구에 대한 꼼꼼한 설명과 1년 동안 변하지 않는 가격을 담은 카탈로그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가구점을 들러보면서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을 대폭 줄여 조립과 배송은 소비자에게 직접 맡기되, 그에 따른 가격적인 보상을 해주는 것이 바로 이케아만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절감한 비용은 제품의 가격을 인하해주거나 매장을 혁신적으로 바꾸는데 투자했다.
이케아의 매장은 가족들이 방문했을 시, 부모들은 쇼핑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맡아줄 수 있는 놀이방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에야 많은 곳에서 이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케아의 놀이방 시스템은 혁신적인 것이었다. 입구에서 아이들을 놀이방에 맡긴 소비자들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방문 전 미리 봐두었던 카탈로그를 들고 통로를 따라가면 이케아의 모든 제품을 구경할 수 있다.
이케아 매장은 1층 마켓과 2층 쇼룸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으로 된 블루 박스형의 매장은 평균적으로 30만 평방피트(8,5000 평)로 미국과 독일의 대부분 이케아 스토어는 이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쇼룸은 다양한 콘셉트로 인테리어 된 주방, 침실, 거실 등을 둘러보면서 사진이 아닌 실물로 모든 가구를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단순히 전시의 역할을 넘어 소비자들이 직접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 공간 역할을 한다.
이케아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전시된 가구에 앉거나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읽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가구가 진열된 모습이 일상과 너무 닮아 한 희곡작가는 워싱턴의 이케아 매장에서 연극을 상연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리고 점원들은 이들을 간섭하지 않는다. 소비자 스스로 직접 체험해보면서 자기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케아는 상품 카탈로그에 유독 신경을 쓴다. 이케아 카탈로그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도구이자 가장 효과적인 광고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이케아에서 소비자들에게 배포하는 상품 카탈로그는 연간 1억 6,000만부 이상을 찍어낸다. 유럽에서는 ‘이케아 카탈로그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케아의 카탈로그가 특이한 것은 항상 가을 시즌에 맞춰 나온다는 것이다. 때문에 매년 8월이면 전 세계 사람들이 이케아의 카탈로그를 뒤적이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케아의 카탈로그는 가구들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사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완전한 공간을 보여준다. 이제 막 이사 온 사람이 하얀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고, 거실에서 애완견과 놀고 있는 아이 곁에는 엄마가 앉아 있다. 이처럼 완벽하게 일상생활이 연출된 카탈로그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준다. 하지만 이케아에도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렴한 가격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내구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으며, 싼 노동력을 활용한 생산 방식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
1994년 파키스탄의 어린이들이 노예처럼 이케아의 양탄자를 짜고 있는 장면이 그대로 보도되어 비난을 받자 이케아는 1999년 유니세프와 협력방안을 모색,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 지역에서 진행되는 유니세프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약 2만 4,000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거나 입학 준비를 할 수 있는 학습시설에 다니게 되었다. 이처럼 이케아는 양탄자를 짜는 어린이들을 학교에 보내주어 빈곤과 학교 교육의 부재, 아동노동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이케아의 실용주의 정신은 줄곧 혁신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창립자 캄프라드의 구두쇠 정신은 그를 세계적인 갑부로 만들어준 것과 동시에 소비자의 비용을 줄여주려는 서비스 정신으로 이어졌다. 캄프라드는 이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고문으로서 한 발 떨어져 이케아를 바라보고 있지만 세계를 매혹시킨 이케아만의 혁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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