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row제, 업체와의 타협인가 소비자 외면인가?
지난해 발생해 2,500여명에 이르는 고객의 돈 44억 6,600만원의 피해를 보게 한 ‘하프플라자’ 사기사건을 기억하는가? 이는 비대면 거래방식을 통한 전자상거래의 폐단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난 5월 10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강철규, 이하 공정위)에서는 ‘에스크로(Escrow) 제도’를 담은 법률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로써 전자상거래 이용객들은 소비자 피해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게 되었고, 업체 입장에서는 안전성이 확보되어 고객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최근 공정위에서는 수수료부담이 늘어난 업체 측의 반발을 고려, 전자상거래시 신용카드나 10만원 미만 현금으로 결제할 때에는 ‘에스크로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수정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기관의 정책도 결국 업체논리에 밀려 소비자를 외면하고 만 것인지 의혹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12월 3일 소비자의 날을 맞아 에스크로 제도의 전면을 분석해 보았다.


공정위, 에스크로제 적용 범위 개정 추진해 연내 상정
10%의 현금결제고객만 해당…업계, 수익에 타격 줄어 환영

“물건 주문을 하고 입금까지 시켰는데, 돈만 떼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프플라자 사기사건 이후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낮아 졌다. 전자상거래 특유의 비대면, 무점포, 선결제 후배송시스템으로 인한 사기사건의 규모 정도가 그야말로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가구 중 70%에 보급된 초고속 인터넷은 전자상거래 이용빈도를 극대화하고 있어 소비자 피해 및 관련 범죄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상거래(B2C)시장규모는 6조 9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으나, 이와 비례해 2003년 소비자호보원의 소비자 상담건수 중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상담건수는 전년도보다 87.4% 늘어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사기성 쇼핑몰로 인해 대금을 받은 후 물품을 주지 않는 등의 물품의 미인도․인도지연의 피해사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전체 쇼핑몰의 63%는 청약철회권(불량상품 반품권)을 제대로 표시하고 있지 않는 등 불공정 거래를 일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에스크로제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기거래에 대한 대비책으로 마련됐다. 오프라인 거래는 물품인도와 대금지급의 동시이행(직불)이 원칙이나 전자상거래는 대부분 선불거래방식으로 거래위험을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하고 있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미래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전자상거래’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 소비자 신뢰구축은 아직은 먼나라 이야기 인 듯 하다.

조건부 날인증서, 에스크로
에스크로 서비스는 전자상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매매보호장치 중 하나다.
‘에스크로’는 법률용어로 조건부 날인증서(어떤 조건이 성립될 때까지 제 3자에게 보관해 둠)라는 뜻으로,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 거래가 아무 문제없이 끝날 때까지 제 3자가 보증인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크로제도는 미국의 경우 부동산거래에 있어 사전적 안전장치로 일반화되어 있고, 전자상거래에도 일부 도입돼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이 서비스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의 안정성과 전자결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행 ‘전자상거래등에서의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이하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이라함)’에서는 소비자피해보상보험가입을 권고하고 있으나 이는 사전적으로 소비자가 지급전에 물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후 피해보상보증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에스크로제’는 사전 구제수단으로 보증보험에 비해 보상범위는 좁으나 사기거래를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자상거래시 신용카드나 10만원 미만 현금으로 결제할 때에는 ‘에스크로제(결제대금예치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수정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6월 방송위원회와 5개 홈쇼핑업체가 홈쇼핑업체를 에스크로제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건의한 것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최영근 공정위 서기관은 “현재 에스크로제에 대한 추진안이 완성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동안 제기돼 온 업계와 소비자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부처 간 의견 조율과 각계의 추가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달 중에 개정 초안을 완료하고 규제개혁위원회·법제처 등을 거쳐 오는 11월 말께 최종안을 마련, 연내에 국회에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전자상거래업계는 지난 5월 입법 예고된 에스크로제 적용 대상에 포함됐던 신용카드 결제와 10만원 미만 현금결제가 수정안에서 제외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 등 전자상거래시 10만원 이상의 현금으로 구입 물품 대금을 결제하는 경우에 한해 에스크로제가 의무 적용될 전망이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현재 전체 홈쇼핑 소비자 중 10% 가량이 10만 원 이상의 현금으로 구매하고 있어 에스크로제 면제 대상이 전체 상거래의 90%에 달할 것”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의무 적용대상이 축소되더라도 에스크로 시스템 구축에 따른 비용과 수수료 부담 등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번 수정안에 대한 전자상거래업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중소형몰, 숨통 트이나
"입금을 해도 물건도 못 받고 돈만 떼이는 게 아닐까? 품질에 불만이 있어도 사후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지는 않을까?”
소비자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소형 인터넷쇼핑몰들이 에스크로 제도 도입으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크로 서비스는 인터넷쇼핑몰 고객이 지급한 대금이 판매자에게 전달되기 전에 우선 은행 계좌로 입금된 후 택배업체가 고객의 물건 수령 여부를 은행에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은행이 대금을 쇼핑몰에 지급하는 일종의 후불제도.
가격비교 사이트인 에누리(www.enuri.com)는 하나은행과 제휴해 지난 9월 16일 부터 가맹 인터넷쇼핑몰들이 저렴한 비용에 에스크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결과 해당 쇼핑몰들의 매출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CF몰(www.cfmall.com), 세이브앤조이(www.savenjoy.com) 등 가전ㆍ영상 제품 전문 중형 쇼핑몰은 도입 전과 비교해 많은 날은 500%, 적은 날은 10%까지 매출이 향상됐다.
에스크로제를 통하면 소비자들이 배송 사고나 사기 구매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한 중소형 쇼핑몰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우정사업본부(본부장 구영보)도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상품의 거래에 있어서 결제와 배송을 우체국이 보증하여 누구나 상품을 자유롭게 구매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에스크로시스템을 활용한 우체국장터(escrow.epost.go.kr)를 지난 11월 8일 개장했다.
최주영 에누리 마케팅팀 부장은 "기존 가맹점 가운데 그리고 신규로 입점하는 업체를 합쳐 지금까지 약 150개 중소형 쇼핑몰이 에스크로 서비스를 신청했고 현재도 주당 10~20개 정도 쇼핑몰이 에스크로 서비스를 신청하고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가격비교 사이트 오미(www.omi.co.kr)도 하나은행과 제휴해 에스크로 서비스를 도입, 인기를 끌고 있으며 경쟁 가격비교 사이트들도 에스크로 서비스를 조만간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비교 사이트 관계자는 "에스크로제 도입이 안심 구매 차원에서 온라인 쇼핑의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면서 "쇼핑몰 신뢰도 향상은 곧 매출 향상과 직결되므로 에스크로 서비스를 서둘러 도입하려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비교사이트, 에스크로 효과 톡톡
이처럼 최근의 에스크로제 도입은 특히 가격비교사이트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가격비교사이트의 목적은 각 쇼핑몰 가격을 비교해주는 것. 여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네티즌은 가격이 가장 싼 곳에 들어가 물건을 구입하면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가격비교사이트에 버젓이 등록돼있는 업체건만, 실제로는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중이거나 사기업체인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이 같은 사이트에 돈만 보내고 물건을 못 받는 네티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이 해당 가격비교사이트에 불만을 쏟아내자 비난의 주 인공이 된 가격비교사이트들은 저마다 에스크로제 도입을 서둘렀다. 자사에 등록하는 사이트 중 에스크로제를 도입하는 곳은 ‘안전쇼핑몰’이라는 이름을 달아 따로 소개를 해주겠다는 것. 용산 매장을 기반으로 한 중소형 디카 전문몰 위즈라이프 역시 가격비교사이트 ‘에누리’에 등록하면서 에스크로제를 도입했다.
에스크로제를 도입하면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거래가 완료될 때까지 고객 돈 을 맡아 보관하고 있는 은행에 수수료를 줘야 하기 때문. 위즈라이프가 하나은 행에 내는 수수료는 판매가의 0.3%다. 그만큼의 마진이 줄어드는 셈. 자금회전 도 늦어진다. 고객이 결제하는 순간 바로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은행이 보관하고 있다 거래가 끝난 다음 돈을 주는 것이니 만큼 결제 후 10일 이상 지나야 비로소 돈이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즈라이프가 에스크로제를 도입한 것은 “그 정도 투자를 통해 믿음을 줄 수만 있다면 그 쪽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 이제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됐지만, 그래도 효과는 눈에 띈다. 오정근 위즈라이프 팀장은 “에스크로제를 도입한 이후 에누리를 통해 들어오는 방문객 수가 이전에 비해 30% 가량 늘어났다”고 전했다.



효율적 운용이 관건
이에 반해 TV홈쇼핑 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들은 에스크로 제도가 경기 불황에 첨예한 가격 경쟁으로 어렵사리 경쟁력을 유지해 가고 있는 업계에 부담만을 안겨주게 된다는 것. 그 이유는 우선 에스크로 제도 실행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기존의 카드대금 수수료 외에 결제대금을 예치해 두는 제 3의 금융기관에 수수료를 또 내야 하니 이중 부담이며, 일정기간동안 대금이 묶이는 탓에 돈의 회전율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에스크로 제도가 드러내는 운영상의 허점은 주요 전자상거래 분쟁의 주범이 되고 있다. 에스크로 제도로 인한 분쟁 사례는 대부분 물품 구매자(소비자)가 예치해 놓은 결제대금을 장기간 되돌려 받지 못해 일어나는 것으로, ‘보호장치’가 오히려 ‘속앓이’ 제도로 전락할 것이라는 항간의 지적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원재 전자상거래분쟁조정위 팀장은 “올 들어 전자상거래 분쟁과 관련된 전화상담의 대부분이 에스크로로 인한 사례가 차지하고 있다”며 “에스크로가 의무화될 경우 분쟁의 폭발적인 증가가 예상돼 구조적인 대안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전자상거래분쟁조정위는 올 들어 접수된 C2C 전자상거래 분쟁은 총 191건으로 이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63건이 쇼핑몰 등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실시하는 에스크로를 통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분쟁조정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가량 증가한 수치이며 내년 상반기에는 에스크로로 인한 분쟁이 전체 분쟁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분쟁 중 대부분이 소비자가 결제대금을 전자상거래업체에 예치한 이후 배달받은 물품에 하자를 발견해 반품한 경우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물품 판매자가 반품된 물품을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소비자는 예치한 대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공공연한 불만 요소는 많지만 정작 나서서 토로하는 업체는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 보호’보다 앞설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자신들이 가입해 있는 각종 단체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해 공정위에서는 최근 전자상거래시 신용카드나 10만원 미만 현금으로 결제할 때에는 에스크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수정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크로제를 도입하자던 원래 목적은 소비자 보호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법안이 상정되는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라는 대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남은 건 ‘막대한(?) 비용 부담과 새로운 규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업체들 논리와 이에 수긍한 공정위 뿐이다.
5대 유통채널 가운데 성장하고 있는 채널은 전자상거래밖에 없는 현 시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시장을 더욱 크게 키우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에스크로제 유명무실화를 위해 로비를 세게 해왔다는 대형몰들 행태가 소탐대실이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미니박스
1.에스크로(Escrow)제도란?
에스크로 제도란 전자상거래상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합의 후 상품배송 및 결제과정에서 어느 한쪽의 약속불이행에 대한 거래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거래대금의 입출금을 제 3의 회사가 관리하여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의 거래안전을 도모하는 서비스다.
에스크로는 구매자에 대한 보호뿐만 아니라 판매자도 후불제를 했을 경우 구매자에게 채권추심을 하는 등의 각종 위험과 비용을 절감해 안심하고 거래를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비대면 거래인 전자상거래에서 구매자와 판매자 양측을 전자상거래상의 피해사고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된다.

2.전자상거래 주요 피해사례
하프플라자 사건
하프플라자는 2002년 11월~2003년 2월까지 가전제품 등 정상물품을 시중가의 반값에 판매한다고 광고하는 등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 대금을 먼저 받고 배송 및 환불을 지연했다. 피해규모는 소비자보호원 추정치로 9만6,000면에게 약 310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다다포인트 사건
금년 초 유아용 분유 및 기저귀 등을 시가보다 20~40% 싸게 판매한다며 주부회원을 모집, 대금을 먼저 받은 뒤 이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2만여 소비자에게 12억 원대(소비자보호원 추정치) 규모의 피해를 야기시켰다.
휴대폰 사기사건
금년 초 이동전화의 번호 이동성 제도 시행 후 휴대폰 수요가 증가하자, 대금만 지급받고 휴대폰을 배송하지 않는 사례가 빈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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