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한일 군사정보협정 체결 매국행위”… 철회 농성

지난 11월 23일 한국과 일본이 두 나라 간 군사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했다. 지난 10월 27일 4년 전 중단된 협상재개를 선언한지 27일 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국내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속전속결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는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한일 GSOMIA에 최종 서명, 국내절차를 완료, 발효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협정상 관련 조항에 따라 국내절차가 완료됐음을 외교 경로를 통해 상호 통보했다”며 “이에 따라 금일(23일) 발효됐다”고 전했다.
협정 체결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3일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이 체결된 것과 관련해 "한일 양 정부간에 더 원활하고 신속한 안전보장관련 정보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이날 미야기(宮城) 현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단에게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한일 간 안전보장 분야에서의 협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왼쪽)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에 최종 서명하고 있다.
지난 11월 1일 도쿄에서 가진 1차 실무자 협의와 9일 서울에서 2차 실무자 협의를 거쳐 14일 도쿄에서 다시 3차 실무자 협의에서 협정문에 가서명 했다. 15일 법제처 심사, 17일 차관회의 의결, 22일 국무회의 의결 뒤 박근혜 대통령 재가까지 숨 가쁘게 진행됐다.
한일 GSOMIA는 1989년 한국의 필요에 의해 먼저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보자산이 크게 부족했던 한국은 일본에 계속 요구해왔지만 일본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후 동북아 지역 안보환경에 변화가 생겼고 일본이 한일 GSOMIA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9년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이 거듭된 것이 배경이 됐다.
본격적인 논의는 이명박 시절인 2012년부터 이뤄졌다. 하지만 당시는 위안부 합의, 독도 영유권 문제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안 좋았던 터라 공개적으로 협상에 나서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때문에 비밀리에 협상을 추진했고 2012년 4월 23일 국무회의 비공개 안건으로 한일 GSOMIA를 처리하려다가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며 협정 체결 1시간 전에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4년 4월 국방부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일 3국 간의 정보공유 필요성을 인식하고 정보공유 양해각서(MOU) 체결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약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5월 30일 한일 양국 국방장관 회담이 재개 되었고 당시 양국 장관은 군사협력 교류를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제48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일 정부는 SCM 뒤 8일 만인 지난 10월 27일 중단됐던 일본과의 GSOMIA를 위한 논의를 재개한다고 발표했고 11월 1일 실무자 협의를 시작으로 최종 체결한 23일까지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GSOMIA는 특정 국가들끼리 군사 기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맺는 협정이다.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데에 따른 전달 수단·비밀표시·복제·파기·훼손 등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협정에는 정보의 교환방법과 교환된 정보의 보호방법 등의 내용이 담기게 된다.
모두 21개 조항에 걸쳐 교환할 비밀정보의 등급과 제공 방법, 보호 원칙, 파기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 2급 비밀은 일본의 ‘극비·특정비밀’로 분류된 비밀과, 한국의 군사 3급 비밀은 일본의 '비(秘)'로 분류된 비밀과 교환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만 1급 비밀에 대한 교환은 이번 협정에서 빠졌다. 한국은 미국·호주·영국·프랑스 등 6개국과는 협정을 통해 1급 비밀을 주고받고 있다.
이 협정의 유효 기한은 1년이며,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90일 이전에 협정 종료 의사를 서면 통보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1년씩 연장된다.
일본과 GOMIA를 체결하게 되면 미국 등을 거치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2014년에 체결된 한·미·일 3국 정보공유 약정을 기반으로 서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간접적인 교류만을 하고 있다.
23일 도쿄신문, 교도통신,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양국이 GSOMIA 체결을 통해 북한 등에 관한 군사 정보를 직접 교환하고 신속히 공유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교환하는 정보의 내용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뿐만 아니라 군사 전반에 걸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특히 일본의 정찰위성 등을 통해 북한의 잠수함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관련 위협에 대한 대응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닛케이는 이번 협정이 발효된다고 해도 양국이 보유한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자위대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다르다. (일본은) 북한의 정보 이외에는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한국은 이미 32개 국가와 협정을 맺거나 약정을 통해 군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또 중국 등 11개 국가와 협정을 추진 중이다.
반면 한·일간 GSOMIA 체결이 큰 틀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안으로 편입되는 과정의 일부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미·일의 ‘3각체제’를 원하는 미국의 압력도 적잖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 정세가 향후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자위대 재무장 선언을 하고 독도를 두고 영토 분쟁 소지까지 있는 일본군이 사실상 한반도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편 북한은 22일 한일 군사협정에 대해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더욱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으며, 이번 체결 이후 더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은 분석했다.

   
▲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1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관련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11월 22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일제히 반발하며 협정 체결 중단과 협정안 폐기를 요구했다.
윤호중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순실 등 범죄자들과 공모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고 검찰에 의해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현직 대통령이 과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같은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추진할 자격과 권한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박 대통령을 비난했다.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현안브리핑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굴욕적 매국협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의 탄핵, 퇴진을 앞두고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와 전혀 협의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사 뿐 아니라 독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버리지 않는 일본 자위대를 동해·서해·남해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자체로 탄핵 대상”이라며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폐기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대선주자로 떠오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갖는 의미는 일본군이 한반도에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성남시장은 “모든 국민이 반대하는데 정부가 협정했다”며 “일본은 과거 침략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반성이나 사과하지 않았는데도 협정을 체결한 것은 잘못됐다”고 성토했다.

   
▲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11월 22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일제히 반발하며 협정 체결 중단과 협정안 폐기를 요구했다.
정부가 GSOMIA를 강행함에 따라 시민사회단체와 대학가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협상재개 27일 만에 GSOMIA를 체결했다는 점에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시민단체는 “백해무익인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은 무효”라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사드전지 전국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1월 22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남한에 대한 재상륙과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협정은 한국이 미일 MD(미사일 방어) 하위 파트너로 편입된다는 것을 공식화하는 것이자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근간부터 뒤흔드는 조처가 될 것”이라며 “최근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재무장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본에게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구실을 만들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단순히 군사교류에 머무는 협정이 아니라 대북 적대적 성격의 협정이다. 사드 한국 배치와 함께 주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 미사일방어망과 동맹 구축의 일환인 것”이라며 “검찰 수사에서 범죄 혐의가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협정 관련 모든 절차를 중단하고 즉각 퇴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면 이와 짝을 이루는 한일 물품용역상호제공협정 체결이 가시화될 것”이라며 “이는 전쟁 수행의 핵심 분야에서 한일 간의 군사협력을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통일협회도 “국가의 안위를 좌우할 수 있는 안보 현안을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 없이 의결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정세에 대한 세밀한 파악과 분석이 중요하고 국익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23일 반대 여론에도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강행한 것과 관련, “추진과정에서 나름대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해와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라며 “앞으로도 (국민 설득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협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노력들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순실 사태’로 정국의 혼란스러운 지금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의식해서인지 “국방부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은 정치적 고려 없이 국내 정치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중단 없이 추진해왔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여론수렴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과의 협정을 강행한 데 책임을 물어 해임건의안을 발의키로 합의했다.[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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