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 현대와 고전이 교차된 '서정적 창조'
작가의 고독 속 잠재된 편안한 안식처를 투영하다


나무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면 시린, 혹은 고독한 온기가 갈색으로 떠오르는 잔상들 같기도 하고, 자연이란 어미의 너른 품 같기도 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안식처가 되는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 탁경순은 자신의 그림을 ‘마음의 서정’이라고 표현한다.
탁경순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그에 투영되는 인간의 음지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서양화가 나타내는 구체적인 현실을 이해하고 그 상관관계를 형상화하는 데 노력해온 탁경순의 작품에는 동양의 문인화에서 ‘선’이 나타내는 직관과 통찰 못지않은 고도의 휴머니즘이 펼쳐진다. 지난달 인사동 하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서양화가 탁경순의 ‘가을 풍경전’은 이러한 작가주의를 그대로 반영했다. 입체적이나 형태를 무너뜨린, 사실적인 색채를 바탕으로 하나 인간의 어두운 감성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인간 속에 감춰진 고독한 내면을 깨우고 있다.
특히 그녀가 그리는 자연은 사실적인 형태를 넘어선 그녀와 내면에 잠재된 고독을 전하고, 그것은 암울함 보다는 편안한 휴식처처럼 느껴진다.


자연이 아우르는 세계 속 소우주 담아내
“나무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포용하면서 때 되면 제 잎을 떨구듯 제 할 도리를 한다. 이러한 면면은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하기에 자연은 항상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실제로 탁경순의 작품에는 나무와 강, 새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때로는 어둡게, 때로는 외롭게 작품 속에서 표현되곤 한다. 사실적이기 보단 어딘가 형체가 무너진 듯한 반추상적 작품에 대해 탁경순은 표면적인 완성도에만 집착하기 보단 자연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내면을 재구성하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전한다. 감성과 가슴, 손이 일치가 되어 현실을 재창조해 그림에서 작가의 감성을 공감할 수 있는 것만이 작품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따라서 탁경순의 ‘작품’이 완성되는 기간은 첫 붓을 들 때의 감성이 마지막 한 획까지 그대로 표현될 때까지 언제까지고 지속된다. 일련의 작업기간을 마친 작품에는 일반인도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작가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이 투영되고, 그러한 그림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휴식을 제공한다.
“예술은 타락해져야 완성된다” 내면적 고통을 맛본 이만이 진정한 예술혼을 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탁경순은 강촌에 위치한 화실에서 20여년 화업의 절정을 토해낸다.
앞에는 강, 뒤쪽으로는 산이 둘러싸인 자연의 공간에서 인간의 수수하고 우아한 내면의 모습을, 기쁨보다는 아픔과 지침, 지친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쉼터를 그려내고 있다. 그곳에서 서양화라는 표면적인 한계에 안주하지 않고 동양과 서양,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탁경순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고자 한다. 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의 숨은 상처를 공감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알게 해 준다.
“대중성이라는 일반적인 공감대 보다는 내면의 숨은 그늘을 알게 해 주고, 이를 억지로 감추는 것이 아닌 드러내 치유해 주는 작품으로 남고 싶다”고 말하는 탁경순의 화업은 이번 ‘가을풍경전’을 통해 한차례 매듭지어진다.
인간 내면의 절정을 자연 속에서 담아내는 탁경순은 회색과 흰색이 아우러진 또 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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