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2 ‘한국방문의해’ 기획]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하라


# 국토의 90%가 바위이며, 해적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던 모나코. 남프랑스의 코트다쥐르(Cote d’Azur) 지역에 있는 작은 나라 모나코는 세계에서 둘째로 작은 영토를 갖고 있다. 이 보잘 것 없고, 조그만 나라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된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몬테카를로의 카지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경주 등 특화된 관광상품과 자국의 존재를 알리려는 끊임 없는 노력이 바탕이 됐지만 그보다 지금의 모나코를 세계적인 관광국가로 만든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였다.

(좌)모나코의 몬테카를로 항구 (우)모나코의 레니에 공과 결혼, 국모의 삶을 살다 간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 <사진=연합뉴스>

그레이스 켈리는 1956년 모나코 레니에 3세 왕자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왕과 결혼함으로써 그녀의 배우 경력 내내 지켜왔던 우아함과 고고함의 정점을 만들어냈다. 이런 그녀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모나코 왕가의 유명한 스캔들은 ‘모나코’라는 작은 나라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혼 후에도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언행과 패션, 사생활은 그 자체만으로 큰 유행을 창조하면서 세계적인 마케팅 파워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왕비가 카롤린 공주를 임신했을 때 배를 가리며 유명해진 에르메스 가방은 모나코 왕실의 허락을 받아 ‘켈리백’이라는 정식 이름을 붙여 전 세계에 팔려나갔다.

그레이스 켈리를 위시한 모나코 왕족의 사생활은 지금까지도 ‘가보고 싶은 나라 모나코’를 전 세계에 꾸준히 각인시키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나라는 현재 바다를 메워 새로운 미래형 관광지구를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이다.

왕족의 스캔들이 관광자원인 나라, 모나코의 사례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단순히 상품의 차원을 넘어 한 나라의 관광산업을 떠받치는 훌륭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가 관광산업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미래학자 롤프 예센은 ‘정보화 시대가 지나면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하는 것이 차별화의 핵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미래에는 이야기와 꿈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과거 스토리는 상업화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더욱 감성적이고 우수한 스토리텔링의 확보가 관광산업을 더 빛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야기를 알고 나면 지갑이 열린다

일본 지바현의 ‘마더 목장’. 수도권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이 목장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는 체험 관광 목장이다. 이 목장의 이름에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창업자인 마에다 히사요시는 어린 시절 궁핍한 농가에서 자라면서 ‘집에 소 한마리만 있었으면’하는 바람을 늘 마음속에 간직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바람이 지금의 목장 설립의 기초가 됐다.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이곳에 ‘마더목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더목장’에선 소젖 짜보기, 양털 깎기 등의 체험을 제공해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마더목장’ 홈페이지 motherfarm.co.jp>
이런 목장의 스토리를 되새기며 목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소젖 짜보기, 양털 깍기 및 양치기 개의 양몰이 쇼, 꼬마돼지 경주, 양들의 대행진, 현지 재료로 치즈 및 초콜릿 등 음식 만들어 보기 등의 각종 체험코스를 경험하게 된다. 목장의 설립 동기와 각종 체험이 철저하게 목장의 스토리텔링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더목장’이 표방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방문객과 매출액 수치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이 목장의 방문자 수는 89만여 명, 1년 매출은 31억 엔, 한화로 치면 약 403억 원에 이른다. 현지인들뿐만 한국과 대만, 중국에서 매년 3천여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이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를 접목하면 관광 스토리텔링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스토리텔링의 힘을 실감케 해준 사례가 있었다. 지난 6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강원도 영월 장릉의 ‘단종애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한국을 방문한 유네스코 현지 실사단이 ‘장릉’에 얽힌 단종의 애절하고 슬픈 이야기를 들은 후 감동했고, 비로소 조선왕릉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혜실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죽임을 당해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충신 엄흥도가 수습하여 묻은 장소에 봉분이 만들어진 애절한 이야기가 영월이라는 외진 장소, 봉분의 궁벽함, 소박함 등 모든 단점들과 연결돼 전설의 애틋함을 더욱 부각시켰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문화유산과 스토리텔링의 만남은 새로운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가면서 어딘가 어렵고 딱딱하다고 느껴진 문화유산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다양한 콘텐츠로 지적·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토리텔링 마케팅’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정영선 씨는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을 때 하나의 물건도 애착이 가고 사랑하게 된다”며, “일회적인 볼거리 중심의 관광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상품을 만들려면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기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광한국에 이야기 입힌다

정부에서도 최근 스토리텔링를 결합한 관광상품 활성화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특히 문화재청은 조선왕릉의 사례에 주목, 문화재에 스토리텔링을 입히는 작업에 돌입한 상태이다. 일명 ‘스토리텔링 전도사’라 불리는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공무원과 관광통역안내원 등 관광분야 종사원을 대상으로 직접 스토리텔링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광황문광장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 동상 바로 밑 지하전시관에선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각 지자체별로도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러를 육성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8월 문을 연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설치하면서, 자칫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 동상에 스토리를 입히는 전략을 택했다. 시는 이를 위해 세종문화회관 앞 지하보도를 활용해 세종대왕을 기념하는 전시관을 마련하고, ‘세종대왕과 한글창제 이야기’라는 컨셉을 집어넣었다. 세종대왕 동상과 지하 전시관의 동선을 연결해 이야기를 잔뜩 품고 시민들을 기다리는 왕의 형상을 더욱 부각시킨 것.

경기도의 경우,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역사·문화적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분단·대립·냉전의 이미지로 각인돼왔던 임진강 지역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스토리텔링 기법을 채택했다. 임진강변에 관련된 고구려 유적을 비롯해 임진강 유역을 빛낸 역사적인 위인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역사와 문화자원들을 발굴하고 이를 재미와 감동이 담긴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것. 특히 임진강변에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묘역이 있다는 점을 감안, 스토리텔링 작업을 강화해 이곳을 문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복안이다.

경상북도의 경우 ‘문화가 흐르는 낙동강’ 사업을 통해 녹색성장을 견인해간다는 계획이다. 조문국, 사벌국, 감문국 등 낙동강 연안 13개 고대국가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해 전통 있고 풍성한 녹색관광을 실현해가겠다는 것. 더불어 신라 불교문화, 북부권 유교문화, 고령·성주 가야문화 등 우리 민족의 3대 역사문화를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전남 여수시 진남관에서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 출정식이 재현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남 여수에서는 지난 11일부터 닷새간 ‘2009 문화유산과 관광이 만나는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이 열릭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와 전라좌수사를 겸임했던 지역인 만큼 행사의 주제도 ‘이순신과 거북선 이야기’라고 정했다. 여수는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진남관을 비롯해 이순신과 거북선, 전라좌수영 민초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해 관광자원화 한다는 전략이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세계 최고의 문화 콘텐츠를 가지고도 포장(스토리텔링)을 못해 관광 강대국에 끼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까웠다”며, "코리아가 있다고 그냥 관광객이 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입혀야 관광객이 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관광이 발전하기 위해선 ‘떨림·끌림·어울림·울림·몸부림’이 있어야 한다”며, “떨림과 흥분을 줄 수 있는 강한 매력을 가진 한국적 콘텐츠를 발굴한 뒤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상대방과 얘기를 나누고 어울려야 한국이라는 관광지가 제대로 감동의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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