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간 극심한 학력 격차, 튜터(Tutor) 지도로 해소

▲ 탁월한 공적을 인정받아 공립고에서 초빙된 고명원 교장
집집마다 하나둘씩 불이 꺼지며 잠이 들기 시작하는 깊은 밤. 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키면 보은고등학교(http://www.boeun.hs.kr /고명원 교장/이하 보은고) 교문 앞에는 개인택시 24대가 줄을 지어 늘어선다. 이윽고 밤의 적막을 깨뜨리며 왁자지껄 교문을 빠져 나오는 학생들. 삼삼오오 택시에 몸을 싣고 학생들은 그렇게 어둠을 뚫고 집으로 향한다.
매일 밤 보은고 앞에서 볼 수는 풍경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할 차량이 마땅치 않은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매일 이렇게 택시를 이용해 학생들의 귀가를 돕고 있다. 만만찮은 그 경비를 지금은 지자체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풍요롭지 못한 보은군 살림에 이마저도 좌불안석인 가운데 보은고가 기숙형 고교로 선정되어 그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신명나는 교육현장 만들어 주는 것이 학교장 책무
보은고는 지난 2007년, 2008년 2년 연속 농산어촌 우수학교로 선정되어 각각 1억 4,000만 원과 1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이 예산으로 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실내·외 학교시설 정비 뿐 아니라 교재 개발, 심화학습, 튜터(Tutor) 지도 등을 진행하며 학력 신장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저명인사 초청특강, 극기 훈련 등 인성교육 프로그램, 수학·물리 전임강사, 국어과 기간제 교사 초빙, 방과후 교육활동 보충수업비 지원 등 학력제고 프로그램에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사립고의 경우에는 교사들의 이동이 많지 않아 자칫 침체되기 쉽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보은고는 이런 사립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충북에서는 처음으로 다양한 경험을 체득해 학교 경영에 탁월한 공적을 쌓은 공립고의 교장을 초빙했다. 그렇게 보은고로 자리를 옮긴 주인공이 바로 고명원 교장. 경북 점촌고를 명문고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경북도영주교육청 교육장까지 역임한 경험의 고 교장은 경북과 충북 교육의 장점만을 접목해 새로운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어 학교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튜터(Tutor) 지도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모르고 있는 단원이나 문제를 선생님께 질문해 궁금증을 해소해나갈 수 있다.
보은고의 학생 중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이마저도 도시의 학생들처럼 선행학습을 하거나 학력을 보충하기 위함이 아닌 부족한 기초학력을 보충하기 위한 발걸음일 뿐이다. 또 시골에 위치하고 있기에 고등학교의 수학Ⅱ를 원만히 가르쳐 내는 학원 강사가 별로 없는 현실이다 보니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교사들이 신명나게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학교장의 책무라고 고 교장은 말한다. 또한 시골학교의 경우에는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도 극심한데, 이는 보은고도 마찬가지다. 전국 모의고사에서 수학, 영어 1등급을 받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때문에 수학과 영어는 수준별로 나누어 수업을 하지 않으면 우수학생, 부진학생, 그리고 교사까지 이로울 게 없다.
이에 보은고가 도입한 방법이 바로 튜터(Tutor), 즉 일대일 대면지도다. 학생들은 자신이 모르고 있는 단원이나 문제를 선생님께 질문해 궁금증을 해소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교사에게 하루 24시간은 수업과 교재연구로도 여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질문카드. 학생들이 모르는 문항을 질문카드에 적어 교무실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카드함에 꽂아 놓으면 이를 확인한 담당 교사가 학생을 불러 지도해준다. 방학 기간에는 졸업생들이 이 역할을 대신해준다. 명문대에 진학한 졸업생들이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 친근하게 일대일 개인지도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스스로’, ‘쉬지 않고’ 하는 것
“교육이론이 무수히 바뀌고 학교 정책은 3년이 멀다하고 바뀌어 왔지만,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는 고 교장은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 ‘스스로 하는 것’, ‘쉬지 않고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육현장은 반드시 학교여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있는 곳에는 교사가 있어야 하고 교사가 있는 곳에는 학교장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에서 교육의 주체는 교사들이다. 사교육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고,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자율학습 대신 가정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교사들의 지도 아래 스스로 공부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 보은고는 저명인사 초청특강, 극기 훈련 등 인성교육 프로그램, 수학·물리 전임강사, 국어과 기간제 교사 초빙, 방과후 교육활동 보충수업비 지원 등 학력제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르다. 언젠가부터 교사들의 역할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문제는 교사들의 역할 축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공교육의 침체, 학생들의 학력 부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 수업, 보충수업, 학원 수업, 인터넷 강의 등 배울 것은 너무 많지만 이렇게 배운 것을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꼬집는 고 교장. 그는 “과거 서당식 교육에서 오늘 배운 것을 완전히 암기해 다음날 훈장님 앞에서 줄줄 외웠듯, 기초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학습 진도에 가속도가 붙는다”고 설명한다.
어느 학교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고 교장은 유독 학생들의 ‘인성’에 관심을 갖는다. “고등학생들은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났거나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다. 이들에게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공부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고 그 누구보다 학생의 시점에서 학교를 바라봐야 한다”는 고 교장은 학생의 마음에서, 인성을 중시하는 학교를 경영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이 한순간 호기심으로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는 굉장히 너그럽다. 하지만 인성교육에서는 무서운 호랑이 선생으로의 탈바꿈을 자처한다. 그는 예의에 벗어난 행동, 염치없는 행동은 용서하지 않는다. “호랑이 선생님이 없는 것, 이것도 오늘날 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하는 그는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초래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고 교장은 근본이 바로 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학력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보은고는 지난 10월30일 저녁,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재학 중인 70명의 학생들과 7명의 교수진을 초청해 학교 강당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수능을 코앞에 둔 학생들의 긴장감을 덜어주고 고득점을 기원하기 위한 행사였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는 11월 중순에는 대학로에서 한창 공연 중인 연극 <우동 한 그릇>을 학교 강당에 올릴 계획이다. 고 교장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시골에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공연과 유명인사 초청 강연 등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마련해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는 교육을 ‘공을 벽에 치는 것’에 비유한다. “공을 세게 치면 세게 튀어나오고 가볍게 치면 가볍게 튀어나오는 것처럼 내가 학생들에게 열정을 들인 만큼 그 결과는 반드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고 교장은 오늘도 ‘교사들은 신명나게 가르치고, 학생들은 즐겁게 공부하고, 학부모들은 학교를 믿고 안심하며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보은고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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