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로 인한 학습 환경 침해 심각, 자율적·합리적인 방안으로 해결해야

최근 울산시를 비롯해 경남도, 서울시가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소지를 금지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휴대전화 및 전자기기 소지 금지’를 두고 찬반논란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내용인 즉, 초등학생의 경우는 휴대전화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며, 중·고생의 경우 등교 후 휴대전화를 모두 수거해 담당교사가 보관하도록 하고 학교가 끝난 후 반환을 한다는 것이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등교 후 휴대전화를 걷는 사례는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안이지만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아예 금지시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교육위원회 ‘휴대전화 및 휴대기기가 면학 분위기 저해’

▲ 최근 울산시를 비롯한 경남도, 서울시가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소지를 금지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휴대전화 및 전자기기 소지 금지’를 둘러싼 찬반논란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29일 울산시교육위원회가 ‘울산시 학교내 학생 휴대전화 및 휴대전자기기 관리에 관한 조례안’ 수정안에 대해 교육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찬성해 가결됨으로써 이른 시일 내 조례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날 울산시교육위원회는 학생의 건강과 바람직한 학습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학교내 휴대전화는 물론 MP3와 디지털 카메라 등 휴대전자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을 통해 휴대전화나 게임, 동영상, 인터넷 등이 가능한 휴대용 전자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교내 학습 환경이 크게 침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교사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도 휴대전화 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 상당수가 심리적 불안감 등을 이유로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이들 중 많게는 절반가량이 하루 한차례 이상 휴대전화 통화로 인해 수업방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참교육학부모회 울산 지부는 지난 9월17일 ‘휴대전화 및 휴대전자기기 소지 금지 조례안 반대’라는 성명을 내걸고 교육위원회의 독단적인 행동을 규탄했다. 이들은 “자녀의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학부모의 우려가 크고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지며, 강제로 압수하는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이 생긴다는 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교육위원회의 뜻에 공감한다”고 밝히면서도 “오히려 교사와 학생 간의 자율적인 약속을 권장하는 게 실제 사용 규제의 효율성도 높다고 판단한다”며 조례안 철회를 촉구했다.
한편 지난 7월8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 휴대전화 관리 조례안’ 제정을 추진했던 경남지역은 경남교육위원회의 교육위원 9명 전원이 찬성하며 교육위원회의 심의를 통과시켰으나, 경남도의회가 최종심의 끝에 심의 보류 결정을 내려 무산됐다. 이에 경남교육위원회 노재길(66)의장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노 의장은 “도의회가 도교육위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분개했고, 이에 경남도의회는 “의원들 사이에 찬반 의견이 분명하고 조례 시행 시기도 내년 3월이기 때문에 일단 심의를 보류한 것 뿐”이라며 “향후 한두 달 정도 의견수렴을 통해 재상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경남교육위원회 노재길 의장이 ‘학생 휴대전화 관리 조례안’ 심의 보류 결정과 관련해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에 지난 10월6일 도교육위원회에서는 노재길 의장 사임건에 대한 임시회를 개최해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찬성 7표, 반대 1표로 가결 처리됐다.
학생들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 존중해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조례안 입법예고에 대해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이는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헌법과 상위법을 위반한 위법”이라며 조례안 폐기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휴대폰은 생활의 필수품이며, 휴대폰 사용에 따른 역기능뿐만 아니라 순기능도 상당하므로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휴대폰 소지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자기의사결정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행위이다. 휴대폰 소지 자체를 금지시키기 보다는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의 방향으로 휴대폰 관련 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교육위원회의 의견을 비난했다. 아울러 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도 성명서를 통해 “휴대전화 소지 금지는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교육위원회의 강제 조례안을 부정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휴대전화 등의 소지 및 사용 제한·관리가 학교장 권한으로 시행된다는 점에서도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울산광역시의 조례안 내용 중에는 학교에서 인정하는 사유로 3일 이상 휴대전화 소지가 필요하고, 보호자의 요청으로 학교가 그 기간을 정하여 승인한 경우, 또는 보호자와 학생 간의 연락이 필요한 기간이 2일 이내로 사전에 보호자가 담임교사에게 요청하여 그 소지를 일시적으로 승인한 경우엔 휴대전화 및 휴대 기기 소지를 허용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측은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 제한 판단 기준이 다분히 주관적이지 않느냐며 반론을 제기했고 이에 교육위원회는 아무런 대답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학생·학부모 70%이상 ‘휴대전화 소지 금지 이해 안 돼’
▲ ‘휴대전자기기 소지 금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전자사전의 경우 책으로 된 사전을 기억매체에 담아 전자화한 사전으로 방대한 정보를 담을 수 있고 신속하게 검색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져 학생들의 학습 향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영어사전·일본어사전 등 10∼30개의 사전을 담고 있으며, MP3 플레이어, 동영상플레이어, 라디오, DMB, 문서뷰어 등 부가기능에 휴대폰과 조합된 제품까지 생산돼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이번 논란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7월24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초등학교 5∼6학년생 19만 5,794명, 학부모 18만 835명, 초등교사 2만 306명을 대상으로 ‘초등학생 휴대전화 소지 등교 금지’에 대한 의견조사 결과, 초등생 69.8%가 교내 휴대전화 소지 금지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초등학생 10명 중 7명이 학교내 휴대전화 소지 금지 방안에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교육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십만 개씩 휴대전화 사용금지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휴대전화 소지 금지의 반대 이유로는 위급사항 시 가정과의 비상연락이 6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어 ‘표현 및 자유 제한’이 24%, ‘학부모의 요구’가 7.9% 순 등이었다. 반면 학부모의 경우 찬성이 53.2%, 반대가 46.8%로 대체적으로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하지만 학부모의 40.6%는 교내 휴대전화 소지는 물론 ‘등교 후 보관’이나 ‘수업 중 사용 제한조치’ 등에도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히며 소지 금지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 놓았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 대부분이 휴대전화가 아이들의 면학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휴대전화가 아이들과의 유일한 연락수단이기 때문에 소지 금지 자체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9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는 청소년의회교실이 열렸다. 이번 의회에는 마산 봉덕초등학교와 의령 남산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참가해 교내 휴대전화 사용금지 조례안에 대한 찬반논쟁을 펼치는 시간을 가졌다. 의회에 참가한 학생들 상당수가 저마다 다양한 이유들을 제시하며 교내 휴대전화 사용금지 자율화에 찬성했다. 학생들은 휴대전화가 통화 기능 뿐 아니라 사전, 계산기, 타이머 등 각종 편의 기능을 설비하고 있어 오히려 학업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며 또한 납치·유괴 등 강력 범죄가 설치는 요즘 위급한 일이 있을 때 구조요청은 물론, 위치추적 서비스까지 제공 돼 안전성 강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강제로 금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휴대전화 소지 단속보다는 학생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휴대전화 사용 예방 교육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등 학생의 생활지도를 위한 편의주의식 규제를 비판했다.
특히 이번 의회에서는 학생들이 일방적인 어른들의 의사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며, 조례안의 주인인 자신들에게도 결정권을 부여해 달라는 목소리를 높였다.

합리적인 조례안 개설이 가장 중요
▲ 지난 9월9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는 청소년의회교실이 열려 화제가 됐다. 이번 의회에는 마산 봉덕초등학교와 의령 남산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참가해 교내 휴대전화 사용금지 조례안에 대한 찬반논쟁을 펼치는 시간을 가졌다.
울산대 교육대학원 이제봉 교수는 “오사카와 후쿠오카, 뉴욕 등 일본과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학생들의 수업 지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며 “학생이 비상 연락을 필요로 할 때는 학교장 재량으로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학교 내 휴대전화 소지에 대한 준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일례로 프랑스는 휴대전화 등 통신기기 전자파로 인해 학생들의 건강에 위험을 야기한다고 판단, 이를 막기 위해 14세 이하의 학생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함은 물론, 14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휴대전화 광고도 금지하고 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시켰으며 이 법안은 하원으로 넘겨져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또한 이웃나라 일본도 초등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아예 소지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휴대전화를 활용한 학생간의 집단 따돌림이나 욕설·비방 등을 차단하고 음란·폭력 등 유해 사이트에 대한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프랑스나 일본은 조례안 개설에 있어 무엇보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최우선시 여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법안 통과가 매우 수월한 편이다.
반면 대한민국 교육계는 여전히 밀어붙이기식의 교육 정책을 강요하고 있어 학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분노를 사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뒷전인 채 무작정 금지 조항을 개설해 일방적 강요를 요구하기보다는 이제라도 휴대전화 및 휴대전자기기들이 어떠한 이유로 학습 환경을 저해하는지 충분히 검증해야 하며, 또한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설득해 공감대를 얻는 일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지금과 같이 ‘하고 보자’라는 식의 모습이 학생들의 반발심을 키울뿐더러 오히려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학습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 교육계는 아이들 스스로가 수업시간 휴대용 전자기기 사용을 금할 수 있는 조절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며, 아이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지금 시행하려는 휴대전화 및 휴대전자기기 소지 금지 개정안에 대해 학생들에게 강요만을 요구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탈피해,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렴하되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최종 목표로 삼고 조례안을 개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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