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불교, 주는 불교’ 대중불교 실천
누군가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연신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 숨을 헐떡이며 만난 지현스님 역시 몇 안 되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어떤 죄악도 다 용서할 것만 같은 온화함과 입가를 떠나지 않는 편안한 미소가 더욱 그랬다.

농촌포교 앞장서는 차세대 종교지도자
‘농촌포교의 새 지평 열어’
조계종 ‘포교대상’수상하기도
1971년 법종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지현스님은 서울에서 돈암포교원을 개원하고 초대원장을 지냈다. 그러던 중 은사스님의 건강이 나빠지자 지난 86년 청량사로 내려왔다. 당시 청량사는 산골 오지에 비가 새는 본당 한 채만 덩그러니 있는 폐사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도로에서 4시간이나 떨어져 있고 경사가 심한 탓에 청량사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 곳에서 1년 6개월을 혼자 수행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문득 은사이셨던 소천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열반하시기 전 소천스님께서 가끔 저보고 ‘오늘은 머리를 만져보았느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그때는 무심결에 ‘예’하고 대답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이 ‘처음 출가할 때의 마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때부터 지현스님을 ‘찾아가는 불교’를 기치로 법회를 시작했다. 이른바 ‘출장법회’였다. 먼저 절에서 가장 가까운 사하촌을 찾았다.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절에서 내려간 지현스님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고추도 심고 밭도 갈았다. 또 반상회가 있는 날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꼭 참석했다. 출장법회를 열자 신도들도 늘어났다. 사하촌을 시작으로 주변의 재산면, 명호면 등으로 법회구역을 넓혀 나갔다. 밤9시가 넘는 시간이면 마을회관에는 법회를 보기위해 몰려드는 경운기의 털털거리는 소리로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 지현스님 역시 마을 주민들로부터 경운기 운전을 배웠다.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먼 거리의 마을 주민이나 어린이들을 태워오기 위해서였다. 지현스님이 ‘경운기 스님’ ‘마을로 내려온 스님’으로 불리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도들이 산에 올라오기 힘들면 스님들이 마을로 내려가면 됩니다. 스님들이 자기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성실하게 활동하고 인정을 받으면 포교는 저절로 이루어 집니다.” 청량사에는 특공대가 있다. 아랫마을 사하촌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출장법회를 통해 인연을 맺은 그들은 청량사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다. 가파른 산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연탄, 나무, 시멘트, 기와 등을 나르며 다 쓰러져 가던 청량사의 불사에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그래서 지현 스님은 이들을 ‘청량사특공대’라고 부른다. 얼마전 지현스님은 이들을 위한 특별법회를 열어 법명을 지어 주기도 했다. 기다리는 불교에서 찾아가는 불교로, 산중불교에서 대중불교로 전환하며 포교의 새 지평을 열었던 지현스님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1년 종단의 최고 영예인 ‘조계종 포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애인복지관 운영의 성공적 모델로 평가
‘폐교를 불교문화센터로 만들 터’
지현스님은 지난 2001년부터 조계종 영주, 풍기, 봉화 사암연합회에서 공동으로 위탁받은 영주시 장애인복지관의 관장직을 맡아 운영해 오고 있다. 초창기 후원금에 대한 부담과 노하우의 절대부족으로 운영을 망설였지만 ‘복지란 한 발 앞선 불교 포교’라는 생각으로 운영을 맡았다. “영주시에만 5천여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집안에서만 생활한 장애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지현스님은 5천여명이 모두 물리, 언어, 심리, 재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복지사들로 하여금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도록 했다. 장애인들의 참여를 위해 탁구교실과 풍물교실, 합창단도 만들었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공연하는 소리학당 합창단은 정기적인 공연을 통해 영주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다른 복지관은 자원봉사자가 부족해 아우성인데 반해 영주 장애인복지관은 후원 뿐만아니라 자원봉사인원만 5백여명에 달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복지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통받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산 속의 화려한 절보다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작은 복지관 하나를 운영하는 것이 포교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지현스님은 이젠 불교도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으로 만든 것이 바로 ‘산사음악회’였다. 지난 2001년부터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매년 가을 밤에 열리는 ‘청량사의 산사음악회’는 이미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어 해마다 5천여명이 넘게 몰려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를 초청해 ‘하나되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열린 산사음악회는 7천여명이 몰릴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청량사의 ‘산사음악회’에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따로 없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청량산이 하나의 거대한 무대이며 그 무대 속에 청량사는 다시 작은 무대가 되고 객석이 된다. 또한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의 봉우리들이 조명과 어울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절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또한 지현스님은 얼마전 청량산에 살며 틈틈이 적은 글들을 모아 수필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을 내기도 했다. 이 책은 청량산에서 느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의 변화가 담겨져 있다. 지현스님은 여기서 별, 바람, 구름, 달과 같은 자연과 이러한 사계의 변화를 통해 겨울은 꽁꽁 얼어붙은 혹독한 계절이 아니라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 듯 지금은 힘들고 척박한 세상이지만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희망을 이야기 한다. 최근 지현스님은 불교문화센터와 가족수련원을 만들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곧 폐교가 되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어요. 그 곳을 인수해 지역주민들의 사랑방과 문화공간을 마련해주고 외지에서 찾아오는 가족들에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마당까지 나와 합장하는 지현스님. 방금 마신 녹차의 은은한 향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듯 지현스님의 싱그러운 미소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청량사 지현스님은...
지현 스님은 출장법회를 통해 농촌포교의 새로운 획을 그은 장본인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1년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지현스님은 백제불교연합학생회를 창립했으며 오늘날 불교레크레이션법회의 주춧돌이 된 돈암포교원의 어린이법회교사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중앙회 포교분과 위원장으로 있는 지현스님은 기독교나 카톨릭과 같은 다른 종교에 비해 어린이 노래가 절대 부족한 현실을 인식하고 「좋은 벗 풍경 소리」를 만들어 어린이 찬불가를 제작, 보급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7백여곡의 찬불가가 이 곳에서 만들어 졌으며 현재에는 영어 찬불가를 준비 중이다. 또한 정부와 기업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기관에게 수여하는 ‘밑빠진 독상’으로 유명한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공동대표를 맡아 시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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