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화’ 위해 불교계 각성 필요

   
▲ 16년 전 조성된 삼존불을 이번에 처음 개금불사하면서 기존의 개금방식에서 탈피, 금분을 입히고 채색을 더해 삼존 부처님이 더욱 화려하고 무게감이 느껴진다.

부처님이 교화활동을 편 지 오래지 않아 제자가 60여 명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부처님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인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이제 그대들은 전도를 떠나라. 모든 사람들의 안락과 이익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고 따로따로 가라. 사람들을 만나거든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설법을 하라. 나도 우루벨라 병장 촌으로 가리라.
잡아함 39권 1096경 「승삭경(繩索經)」에 기록된 이 말은 부처님의 전도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던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예로부터 ‘불교의 전도 선언’으로 불려왔다. 부처님은 이 말씀에서 불교도의 종교적 책무가 바로 전법과 교화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설법하라’는 부처님의 결연한 모습과 금강 정사 청해 상범 주지스님의 ‘자비보살행’의 포교활동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한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한국 불교’ 대중교화 위해 힘써야
흔히 절은 산 속 깊은 곳에 있거나 저 쪽 아래 지방 쪽에 있다는 생각이 깊숙이 박혀있어서 찾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지만 이는 이조 500년의 불교탄압이 자아낸 부산물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성리학과 이를 신봉하는 유생들에 의하여 500년 동안 계속된 불교 탄압과 그에 따른 수난은 인류 역사에서 종교 탄압과 인간 차별의 증거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사찰 출입을 금지한 법률, 불교를 근원적으로 말살시키기 위한 승려제도 폐지 등 서슬퍼런 행해졌던 불교탄압을 보면 참으로 슬픈 수난사이며 사찰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수난시대에도 사찰이 종교적 위엄을 더하고 그 숫자가 증가해 갔지만 부처님의 전도 의지를 현재 한국 불교가 등한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불교는 부처님의 전도명령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다. 한국 불교가 대중 교화를 등한시 한 것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전도명령을 외면하고 교화에 소홀해온 출가자(出家者)들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사람들이 법문을 듣고 싶어도 설법해줄 법사가 없어 돌아서는 일이 다반사며 재가신자들이 하는 신앙생활이란 불공하고 복 비는 것이 거의 전부다. 이렇게까지 한국 불교가 부처님이 강조한 교화 활동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쇠퇴한 것은 아마도 ‘깨달음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욱이 개신교가 부산을 기독교의 발전의 초석으로 만들기 위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준비하는 상황에서 불자의 한 수행자로서 불교계의 여러 스님들이 각성을 하고 대중 포교에 전심을 다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행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깨달아진 진리가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것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들도 부처님의 삶을 답습해야 하고 산 속에서 깨달음만을 추구하지 말고 대중교화를 위해 또 다른 수행에 나서서 불교 도약의 초석을 다시금 다져야 할 것이다.

   
▲ 온화한 모습으로 점안 법회식을 올리고 있는 청해 상범 주지스님.
‘자비(慈悲)’ 실천하는 것이 중요
불자들에게 있어서 ‘자비(慈悲)’란 불교의 요체이다. 경전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자(慈)이고, 고통을 덜어주고 근본적으로 근심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말씀하셨다. 즉, ‘자(慈)’는 최고의 우정을 의미하며, 특정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우정을 갖는 것이며 ‘비(悲)’의 원래 의미는 ‘탄식 한다’는 뜻으로 중생의 괴로움에 대한 깊은 이해·동정·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실제 생활 속에서 표면적인 자비의 행동은 많이 볼 수 있으나 진정한 자비(慈悲) 곧, 그 사람이 ‘왜 괴로워하는가?’‘왜 슬퍼하는가?’를 알고 돕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한 생각이 청정하면 온 세상이 청정하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자비(慈悲)’다. 즉 어느 무엇도 분별하지 않고 차별 없이 베푸는 대자비의 실천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자비! 자비 행! 말로 외치는 것은 쉬워도 몸소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오늘날 같이 사회가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때 진정한 ‘자비(慈悲)’를 행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설법으로만 ‘자비’ ‘자비행’을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겉으로만 따르는 것이 된다. 흔히 사람들은 “형편이 좋아지면 그때 가서 도와주겠다”라고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형편이 좋아진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각성해야 될 것은 바로 자신의 형편이 좋을 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도 그때그때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나누며 행하는 것이 참 ‘자비(慈悲)’가 아닐까 생각한다.

올바른 사회의 밑거름은 ‘화합(和合)’을 통해서
불교의 요체가 ‘자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가르침은 바로 ‘화합(和合)’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상은 점점 다변화 되고 세분화되어 핵가족화로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물질문명에 물들어 가는 세상인심은 점차 메말라 가고 남보다는 나만을 먼저 생각하는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가족 간의 유대관계가 허물어져만 가는 삭막한 세상으로 변하는 원인은 아마도 ‘화합(和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의 말씀에 눈을 뜨고 마음으로 읽어 맑고 영롱한 불성(佛性)을 가진다면 ‘화합(和合)’을 이룩하여 동체대비(同體大悲)와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범 주지스님

 부산·경남 불교지도자 협의회 사무총장 / 부산광역시 사하경찰서 경승 / 차·상위 계층을 위한 후원회 ‘금강’총재

 대한불교 조계종 금강 정사는 지난 2006년 12월에는 차·상위 계층을 위한 선·서화 전시회 개최를 비롯하여 부산지역의 극빈한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쌀과 밑반찬 등 기본 식료품과 후원금 등을 직접 전달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출범도 준비 중에 있다. 특히, 금강 정사는 최근 직장인 불자들을 위한 늦은 오후의 신행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설했다. 매월 음력 초하루부터 3일까지 자비도량참법, 8일에는 약사기도, 보름부터 17일까지는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 18일에는 지장기도, 24일에는 관음기도, 29일에는 신중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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