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재생·서민경제 살리기, 재정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 첩첩산중

지난 8월30일 집권 자민당의 54년 일당 지배체제가 막을 내렸다. 민주당은 총 480석 가운데 308석을 얻어 각각 119석과 21석에 그친 자민당과 공명당에 압승을 거둠으로써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로써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일본 정치사는 1955년 보수연합으로 창당한 자민당에 의한 장기 집권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게 됐다.

민주당 압승, 정권교체를 선택한 일본 국민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을 누르고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기 경제 악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민당 장기 지배로 인해 빈부격차와 도시, 농촌 등 지역 간의 격차가 심해지고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민심이 자연스레 민주당으로 쏠린 것이다. 자민당에 대한 국민 혐오가 분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장 현찰을 손에 쥐어주겠다는 거부할 수 없는 공략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개혁 정책이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 등 구조적인 문제를 증폭시킨 데다 후임자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잇따른 중도 사퇴, 아소 다로 총리의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 등이 이번 총선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 외국어대학교 외교학과 손기섭 교수는 정권이 바뀌게 된 까닭에 대해 “일본국민은 1955년도부터 54년 간 지속되어 온 기존의 자민당정권으로는 더 이상 일본 미래 국가전략의 청사진을 그릴 수 없고 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 한 것이다”라며 “그동안 일본정치 하면 관 주도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일본 유권자들이 관료주도형 자민당 정치에 염증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이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일본은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지목되어 왔으나 사실상 자민당 1당의 보수 독점체제가 이어져 왔기에 민주주의 공고화 측면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집권정치세력의 교체를 가져온 일본에서도 소수정치세력이 다수정치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그는 누구인가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정치명문가 중의 명문가 출신으로 자민당 창당 주역인 그의 증조부는 중의원 의장을 지낸 하토야마 가즈오(鳩山和夫)이며, 1954년에 총리를 지낸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가 조부이다. 아버지 하토야마 이이치로(鳩山威一郞)는 외상을,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도 아소 다로 총리 내각에서 총무상을 지냈다. 세계 1위 자동차 타이어회사인 브리지스톤 창업자 이시바시 쇼지로가 외할아버지다.
하토야마는 도쿄대학교 공대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센슈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로 지내다 1986년 39살의 나이에 자민당 공천으로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출마, 중의원에 등원했고, 이후 2005년 총선까지 7선을 기록했다. 그는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1996년 옛 민주당을 창당해 1999년 대표에 취임했다가 2002년 사임했으며 지난 5월 오자와 대표의 사임으로 대표에 재취임했다.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는 비교적 유연한 사고와 정책을 지녔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의 별명이 ‘외계인’일 정도로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하토야마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충분치 못하다는 견해도 있다. 유력한 정치 가문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재력까지 겸비한 ‘완벽남’임에도 정치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 정치계에서 친한파로 분류된다. 한일의원연맹의 일본 측 고문과 민주당 내 일한교류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일본 내 한국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지한파인 반면 미국에 대해선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에서는 과거 식민지 침략을 미화하는 풍조가 있다”며 “민주당은 민족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간 갈등을 고려해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기도 하다.
하토야마 신임 총리의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鳩山幸·66) 여사는 영화배우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데다 일본의 ‘마사 스튜어트’로 불릴 정도로 요리, 의상, 실내디자인 등에 능하다. 둘은 하토야마 신임 총리가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중에 만나 1975년 결혼했다.
미유키 여사는 이번 선거 유세 내내 유권자들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남편을 부탁합니다”라는 인사를 해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새 내각 출범, 하토야마 내각 어떻게 꾸며지나
지난 9월15일 하토야마 대표는 15일 민주당 간부회의와 중·참의원 총회를 열어 민주당내 최대계파 수장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을 새 간사장에 정식 임명한 뒤 당 간부 및 국회 주요 인사를 확정했다. 신설되는 국가전략국 담당 장관 겸 부총리에는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이 이미 내정됐다. 간 대표대행은 정책 수립을 총괄하는 정책조사회장도 겸할 것으로 보인다. 외무장관에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이, 총리를 보좌하며 각 부처 정책을 조정하는 관방장관에는 하토야마 대표의 측근인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당 대표 비서실장이 임명됐으며 외무대신에는 오카다 가쓰오 간사장이 내정됐다.
재무성 장관에는 호소카와 정권 때 대장성 장관을 지낸 후지이 히로히사(藤井裕久) 최고고문이, 경제산업성 장관에는 나오시마 마사유키(直嶋正行) 정조회장이 유력하다. 국토교통성 장관에는 마에하라 세지(前原誠司) 부대표, 행정쇄신회의 담당 장관에는 나가쓰마 아키라(長妻昭) 정조회장 대리가 거론된다.
민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해 입각하는 사민당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당수는 저출산대책과 소비자 담당 장관이, 국민신당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대표는 우정(郵政)·금융담당 장관이 유력하다.

하토야마 정권 초반 3개월 승부가 관건…‘기대반 우려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의 순항 여부는 내년 7월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의 결과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에 대한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경우에 맞게 되는 역풍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 장기 경제 악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으로 미루어 보아 역시 당면 과제는 경제재생과 서민경제 살리기이다. 민주당은 자민당과 기존의 관료들이 짠 예산에서 낭비를 최소화하여 적자재정을 과감히 개선하고자 하고 있다. 이에 하토야마 대표는 총리 직속의 국가전략국을 설치해 예산안 편성을 총괄키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정권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경제 현안은 디플레이션 차단이다. 일본은 실업률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물가는 떨어지고, 성장률은 마이너스 상황이다.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일본의 7월 실업률은 5.7%로 관련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53년 4월 이후 최악이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때보다 심각하다.
선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생활 지원’ 공약 실천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선거공약의 합리성이나 실현가능 여부를 떠나 자녀수당 월 2만 6,000엔, 사립고교생 세대 연 12만 엔, 출산일시금 인상, 고속도로 무료화, 농어가소득보상제 등 민주당의 현찰 공세로 유권자의 민심을 얻은 만큼 이 공약을 무리 없이 실천한다면 순탄히 정권을 유지해 갈 수 있겠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일본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달할 정도로 재정이 심각한 적자 상태여서다. 공약을 모두 지키려면 2013년까지 16조 8,000억 엔(약 220조 원)이 필요하다. 올해 일본 정부 예산(207조 엔)의 8%를 넘는 규모다. 민주당은 이 돈을 낭비 예산 절감(9조 1,000억 엔),국유자산 매각(5조 엔),조세 감면 축소(2조 7,000억 엔) 등으로 조달하겠다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공약 이행 자금 확보를 위해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올릴 계획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예산의 국채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일본은 예산 가운데 10%가 넘는 23조 엔을 국채 상환이나 이자를 갚는데 썼으며 내년에도 22조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정이 한계상황이기 때문에 증가하는 복지예산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금 인상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복지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나라빚을 늘리거나 향후 4년 내에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공약한 하토야마 정권에 있어 이 같은 전망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54년의 여당 경험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면서 각종 정보를 독점해 온 자민당의 반격도 넘어야 할 벽이다. 하토야마 대표가 자민당을 부패정치의 전형이라고 몰아붙이면서 1993년 탈당하고 현재의 위치까지 오른 만큼 자신의 정치자금 문제가 전면으로 떠오르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게 되면 막다른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초반 이런 과제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경우엔 선거 과정, 그리고 집권 초반 자신의 든든한 후원세력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 계파가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한·일 관계 갈등 요소 대폭 감소, 순조로운 출발 예상
민주당은 보수적 색채를 지닌 인물부터 칸 나오토 전후생상이나 요코미치 전 홋카이도지사 등의 일본 사회당계열의 진보 성향의 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이 포진한 정당이다. 자민당과도 정책노선에서 상당히 차별되며, 전반적으로 보면 국내·외 정책에서 자민당보다는 진보적이다.
우선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 정치계에서 친한파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한반도 정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우선 한·일관계는 하토야마 대표 등 지도부의 면면을 볼 때 자민당 정권에 비해서는 양국 간 갈등 요소가 대폭 감소하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토야마 대표는 양국 간 최대 갈등 요인이었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 건립 방침을 제시하고, 역사 문제 등이 쟁점화되는 것을 피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대표가 지난해 5월 민주당 대표에 취임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하토야마 정권’에서의 한일관계에 대한 양국 관계자들의 기대를 불러왔다.
하토야마 대표는 재일교포 등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일본 내 영주 외국인 참정권 운동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그가 주창하고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서도 한국은 중국과 함께 핵심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극우파들이 내년 참의원 선거 등을 겨냥, 이 문제를 쟁점화할 경우 국내 정치와 한·일 관계, 중·일 관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일본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하토야마 대표가 한국과의 관계구축을 중시하고 있지만, 실제 민주당 내에서 한국을 제대로 아는 인사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대북정책에서도 변화 가능성이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북한의 핵, 미사일 등의 문제에 대한 대책과 관련, “미국과 중국, 한국,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한·일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핵문제나 미사일 개발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북일 관계가 진전되길 기대하긴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자립적인 외교로 대등한 미·일 동맹 관계 지향
민주당은 자민당의 보수주의·성장 중시·친미 외교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는 그동안 구축돼 온 동맹 관계의 강화보다는 새로운 관계 구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하토야마 대표는 미국이 이끄는 시장근본주의를 비난하며 일본과 일본 국민을 세계화로부터 지켜낼 것이라고 말해왔다.
우선 민주당은 미국 외교의 기본을 ‘긴밀하고 대등한 미일동맹 관계’로 정했다. 하토야마 대표도 “대미 의존이 아니고 보다 자립적인 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미·일 관계는 우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신뢰관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지위협정 개정 문제 제기 자체도 자민당 정권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민주당은 자민당 정권에서 미·일 간 합의한 주일미군 재편 문제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沖繩)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에 대해서도 기존 합의와 달리 오키나와현 이외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 정부간 핵을 적재한 미국 함선이나 항공기의 일본 기항시 사전에 협의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밀약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가 부족한 민주당으로서는 정권 출범 이후 하토야마 차기 총리가 실제 외교 무대에 데뷔하면 현실론으로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54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역사적인 이변을 맞은 만큼 안팎으로 일본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국내·외에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서 그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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