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ulacre(241804)_diameter 191cm_Mixed media on Canvas_2018_200호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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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문수만 작가의 씨줄과 날줄... 작가 문수만의 집중력과 스케일을한번에 오롯이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가 10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테헤란로의 랜드마크인 GS타워 더스트릿갤러리에서 45일간 열린다.

문수만 작가는 부모님의 반대로 미술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졸업 후 미술의 원리와 일맥상통한 발명으로 독특한 제품을 만들기도 했으나 IMF 시절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암 투병을 시작하게 되면서 어릴 적 소망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을 찾아 떠난 대전, 한남대학원에서 미술학을 전공했다. 필연적으로 미술세계로 돌아오게 된 문수만의 씨줄에 육신에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통증을 잊기 위해 더욱 몰입하게 되는 그의 작품들이 날줄로 엮여 문수만의 작품세계를 이루고 있다.

“나의 여러 시리즈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몰입을 통해 자유롭고 싶은 의지의 표출’이다. 몰입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캔버스를 지배하게 만든다. 젊은 시절 머릿속 가득한 공학적 수치들로 지쳐가던 내게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것은 어릴 적 그토록 소원했던 화가의 꿈이었다. 그 꿈은 이제 현실로 이루어졌다. 예전의 치밀한 공학적 기질은 예술에 대한 끈질긴 집중으로 바뀌었고, 그 몰입의 결과 오롯이 작품이 되었다.

화면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부품처럼 가득 차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체 보다 여백의 공간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질서 속에 반드시 자유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규칙은 존재함을 의미한다. 질서와 규칙, 공간과 자유에 대한 표현은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다.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항상 변화에 능동적인 작가로 남고 싶다. 초창기 작품과 지금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짐작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간 과정을 들여다보면 마치 낱말 꼬리물기와 같이 변화돼 왔음을 알 수 있다. 작품들의 저변부에 깔려 있는 인간들의 얽혀진 관계와 우리의 역사가 녹아 든 네러티브는 작품의 모태가 되어 변화무쌍한 외형적 탈바꿈에도 바뀌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맥락을 같이한다.“ (문수만 2020. 11. 2)

FRACTAL(261804)_diameter 191cm_Mixed media on Canvas_2018_200호변형
FRACTAL(261804)_diameter 191cm_Mixed media on Canvas_2018_200호변형

문수만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박물관의 나비를 생태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세밀한 묘사가 반영된 초기의 작품, 박제된 나비가 스스로 핀을 뽑고 언젠가는 날아가야만 한다는 역설적으로 강렬한 자유의지의 상징으로 시작, 근래에는 역사와 시간을 넘나드는 매개체 역할로 또 한번 바뀌었다. 해외 전시를 진행하면서 한국적인 배경을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나비가 들어갈 자리가 비좁아지면서 서서히 나비를 떨쳐 보내야 했다.

2018년 '고구려 판타지' 개인전부터 쌀을 소재로 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생명의 순환적 구조에 대한 내용의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다. 최근 〈Cloud〉 연작은 쌀알을 동심원의 형식으로 화면 안에 무수히 증식, 배열한 추상 회화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인 ‘나비나 새 형태의 꽃 그림’을 위치시키기 위한 청자 등 한국적 배경에 대한 여러 조형 실험의 결과로부터 기인했던 유물 이미지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즉 청자, 토기 등 한국적 유물의 3차원 형상을 2차원으로 평면화하는 〈Simulacre〉 연작으로부터 유물의 질감을 탐구하는 〈Fractal〉 연작으로 전개되고 이 연작들이 표방하는 원형(圓形)의 이미지를 작은 쌀알 이미지로 집적하는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Cloud〉 연작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변화무쌍한 것처럼 보이는 작가의 작품세계의 변화들에는 몰입을 통해 자유의지를 표출하며 예술로 승화된 일관된 조형 의식과 그 미학이 흐르고 있다.

Cloud-21040_130x194cm_Mixed media on canvas_2021_120호
Cloud-21040_130x194cm_Mixed media on canvas_2021_120호

미술평론가 김성호는 “작가 문수만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선택과 그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해서 오늘도 운명애를 가슴에 안고 창작에 나선다. 그것은 예술 안에서 몰입을 통해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작가 문수만의 작업관과 맞물린다.“고 말한다.

평면 위에 입체를 눕히기 - 시뮬라크르 연작

일반적인 조형적 시뮬라크르가 ‘투시 원근법을 통해 평면 위에 입체를 세우는 일’인 반면에 문수만의 〈Simulacre〉 연작은 ‘탈투시 원근법을 통해 평면 위에 입체를 눕히는 일’이 된다.

3차원으로부터 2차원으로 변형된 그의 〈Simulacre〉 연작은 마치 둥그런 방패 위에 문양이 그려진 작품처럼 인식된다. 여기서 도자기 문양은 평면 위에 납작하게 드러누운 채 서로의 거리를 잃고 동일한 크기로 편재화된다. 작품 〈F1-4-2 Simulacre(241804)〉을 보자. 중심축을 기점으로 한 몇 개의 동심원도 그러하지만, 그 안에서 방사형으로 포진된 다양한 문양들은 그의 시뮬라크르 연작이 다만 중심축을 지닐 뿐, 어떠한 주인공도 없이 그저 패턴화된 문양처럼 편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어떠한 문양도 어떠한 이미지도 어느 것 하나 주(主)가 되거나 종(終)이 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재편한 새로운 지표로 등극한 셈이다.

질료의 자기 유사성 - 프랙탈 연작

작가 문수만의 또 다른 작품인 〈Fractal〉 연작은 〈Simulacre〉 연작이 지닌 문양의 반복적 패턴과 같은 이미지를 계승하면서도 물질감을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Simulacre〉 연작에서 발견되는 ‘납작한 원형의 평면화’가 지닌 시뮬라크르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일정 부분 저부조의 마티에르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저부조의 마티에르는 미디엄이 안료와 만나 이룬 물질감이라는 물리적 속성뿐 아니라 다양한 문양이 반복 생산되는 흐릿하거나 또렷한 패턴 이미지들의 시각적 속성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Fractal〉 연작은 〈Simulacre〉 연작의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문수만의 〈Fractal〉 연작에는 이러한 두 속성과 유형이 한데 겹쳐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복, 증식이라는 특징의 프랙탈 도형이나 당초문(唐草紋)과 같은 유기적이지만 대칭적인 식물 문양이 함께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대칭적으로 보이는 저부조의 마티에르가 동심원의 ‘밖/안’을 향해 방사형으로 ‘확산/환원’하면서 전체적으로 대칭적인 프랙탈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그의 〈Fractal〉 연작은 ‘이미지의 자기 유사성’에 국한되는 프랙탈의 한정적 의미를 비틀어 ‘질료의 자기 유사성’ 그리고 ‘자연의 무작위성과 복잡성’의 개념을 덧붙여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경계를 순환하는 모듈의 민주적 편재 - 클라우드 연작

문수만의 회화, 특히 〈Cloud〉 연작은 회화 안에서 ‘쌀알 이미지’인 작은 모듈의 무수한 집적이 이룬 화면을 통해서 어른거리는 환영을 제공하고 그것이 가상의 움직임을 창출하면서 시간성을 견인한다. 하지만 옵티컬 효과를 통해 시간성을 품는 것은 그의 연작에서 본질이 아니다. 그는 쌀알을 모듈로 해서 더디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창작 과정과 그 결과물인 멀티플 이미지가 품는 순환의 시간성 개념에 더욱 골몰한다. 그는 ‘작은 쌀알’이라는 모듈의 집적을 마치 ‘클라우드의 폴더에서 모듈을 꺼내어 부분으로부터 전체로 구축해 가는 과정’을 수행하듯이, 천천히 이어지는 창작의 시간성에 몸을 싣고 고된 노동을 묵언 수행하듯이 진행해 나간다.

작가는 〈Simulacre〉 연작과 〈Fractal〉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고구려와 역사와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쌀’이란 소재를 발견하고 그것의 조형적 언어와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3차원 유물의 입체 문양을 2차원 평면으로 변환하는 골몰했던 당시의 작업에서 문양 대신 쌀알 이미지로 치환하는 새로운 〈Cloud〉 연작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생존을 이끌어온 오랜 양식이자 한민족의 주식인 쌀! 길쭉한 비대칭 타원형에, 한쪽에 유사한 형상의 작은 쌀눈을 품은 오묘한 형상! 문수만의 〈Cloud〉 연작에서 모듈로 사용된 이러한 쌀알의 형상 자체는, 대칭의 프랙탈 도형이나 비대칭의 당초문과 같은 식물 문양을 함께 등장시켰던 그의 〈Fractal〉 연작을 조형적으로 계승한다.

일견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그의 〈Cloud〉 연작에서, 모듈로 사용된 ‘쌀알 이미지’는, 작은 캔버스에 그리거나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거나, 나아가 3폭의 제단화처럼 이어진 멀티플 대형 캔버스에 그리거나, 언제나 쌀의 실물과 유사한 크기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동심원의 중심으로부터 외부로 확장해 나가면서도 쌀알의 크기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경계를 순환하는 모듈의 민주적 편재’를 지속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조형의 형식이 낳은 ‘공정, 평등, 모두’와 같은 민주적 소통의 메시지라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쌀의 한자인 ‘미(米)’의 형상이 지닌 사통팔달(四通八達) 구조와 더불어 그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쌀이 지닌 내적/외적 본성을 왜곡 없이 드러내려고 작가의 조형 실험이 낳은 심층의 메시지로, 이제 ‘순환’의 세계관으로 나아간다.

몰입이 표출하는 자유 의지

작가 문수만의 〈Cloud〉 연작이 지향하는 ‘순환의 세계관’이란 그가 직접 말하듯이 니체(F. W. Nietzsche)의 철학적 메타포인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세계관과 만난다. 이 세계관은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이다.

니체가 영원회귀론을 통해서 운명애를 요청했듯이, 작가 문수만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선택과 그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해서 오늘도 운명애를 가슴에 안고 창작에 나선다. 그것은 예술 안에서 몰입을 통해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작가 문수만의 작업관과 맞물린다. (김성호의 미술평론 중에서 발췌)

Gate of Time(011708)_diameter 180cm_Mixed media on canvas_2017_150호변형
Gate of Time(011708)_diameter 180cm_Mixed media on canvas_2017_150호변형

문수만 (文水萬) Moon Sooman

한남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졸업

개인전 : 2021. 9.10~10.14 문수만초대전 (GS타워 더스트릿갤러리, 서울/한국)외 30회그룹전 : 2021.08 FOCUS LONDON (Saatchi Gallery, FOLD Gallery, 런던/영국)외 200여 회

레지던시 : 가나아뜰리에 입주작가 (2020~현재)

작품소장 : 대한민국 국회의장실, UAE 한국대사관, 독일 STULZ가문, 국립현대미술관외 다수

수상 : 2020 살롱·블랑미술협회장상 (일불현대국제미술전, 일본도쿄 국립신미술관)외 다수

현재 : 한국미술협회, 파주아트벙커, 씨올회, 공통분모-한중교류전, ICA-국제현대미술협회 회원

이번 전시는 선별된 작가의 과거 주요 작품과 최근 작품 25점이 더스트릿갤러리의 중후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전시장 또한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어 갤러리들을 만족시킬 예정이다.

하명남 기자 hmn201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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