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는 지금 정책 경쟁바람이 뜨겁다
남북관계·노사관계·국회운영·경제 등 여야 정책대결’후끈’
여야 정치권에 정책 경쟁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정치개혁을 내걸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확보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정책 경쟁을 가속화할 주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7대 국회에서는 남북관계와 노사관계 국회운영 경제 등 국정 전반에 걸친 제도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싸고 정책대결이 뜨겁게 펼쳐질 전망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국회입성을 그동안 소외됐던 노동자들 문제중 각종 개혁 및 민생 관련 입법 가운데 사회 경제적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쟁점을 4개분야로 나눠 점검했다.




국회개혁 입법
정쟁(政爭)의 도구나 비리의원 보호 수단으로 악용돼 온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정치권 스스로도 국회 개혁의 대표적인 사안 중 하나로 꼽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들 장치를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정부 감시·견제 기능을 수행토록 하기 위해 필요한 측면도 있다는 논거에서다.
면책특권의 한계 설정 논란=2003년 10월 17일 국회 본회의장.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유시민(柳時敏) 의원이 2002년 대선 직전 주중 북한대사관을 수차례 방문했다”는’폭탄발언’을 했다.
그러나 유 의원이 신상발언에 나서“중국 영토에 발 한번 디뎌본 적 없다”고 반박하자 김 의원은 발언 2시간 만에 사과성명을 냈다. 이렇듯 국회의원들이 확인도 하지 않고 무차별 폭로전을 벌일 수 있는 것은 면책특권이라는 방패가 있기 때문이다. 16대 국회에서만 해도 ‘사설펀드에 K, K, K 의원 가입’ ‘야당 대선후보의 기양건설 비자금 수수’ ‘동원그룹 50억원 정치자금 여권 유입’주장 등 폭로가 난무했다. 거짓으로 판명이 나거나 근거를 대지 못한 이런 폭로가 결국 정치 불신을 심화시켰다. 17대 국회에서는 무책임한 폭로를 면책특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불체포 특권=지난해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장.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 등 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줄줄이 부결됐다. 16대 국회에 제출된 15건의 체포동의안 중 통과된 것은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다. 불체포특권(헌법 44조1항)을 적극 활용한 동료의원들의 ‘제식구 감싸기’덕분이었다.
불체포특권은 ‘연중국회’를 만들기도 했다. 16대 국회는 거의 매달 국회를 열었다. 이 가운데는 본회의가 한번도 열리지 않은 채 회기가 끝난 임시국회가 5차례나 됐다. 결국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동료의원이 쇠고랑을 차는 것을 막기 위한 ‘방탄용’국회가 적지 않았던 셈이다.
미국은 연방헌법에서 ‘내란죄, 중죄 및 치안위반죄’에 대해서는 불체포특권을 제한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불체포특권은 인정하고 있지만 검찰의 ‘체포허락청구’를 1∼3일 내에 가결함으로써 특권을 남용하지 않는 전통을 의회 스스로 확립했다.
국민소환제 도입론=대통령 탄핵처럼 국회의원의 비리 실정(失政) 국민세금낭비 등에 대해 유권자들이 투표로 해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국민소환제다.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가 잇따라 관련조례를 통과시켰고, 서울 YMCA는 입법을 위한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소환제가 남발될 경우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행정 공백과 지역구민의 분열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민생관련 법안

“국민은 지금 못살겠다는 것이고, 경기가 나빠 죽겠다는 것이고, 경제를 살려 달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은 최근 당내 행사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민생 우선주의’를 강조했다. 지난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3.1%. 일자리는 지난 한 해 동안 3만개나 줄었다. “경기가 나빠 죽겠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같은 절박한 경제 사정을 반영하듯 여야는 민생법안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경기를 살리기 위한 경제 관련 법안에 대해서는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민생법안에는 한목소리=국회가 열리자마자 논의될 민생 관련 법안 중 하나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꼽힌다.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생계 능력이 없는 빈곤층에 매달 생계보조금을 지급하고 의료비도 지원해 주고 있다. 문제는 현행법상 부양의무자 범위가 넓어 실제 생계를 책임지며 부양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많다는 점.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은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고 한나라당도 여기에 동의한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이렇게 되면 수급자가 138만명에서 148만명으로 10만명이 늘어난다. 예산도 2,800억원이 더 들어가게 된다. 138만명 기준으로 책정된 올해 국민기초생활 보장 예산은 3조 6,432억원. 재래시장장육성방안도 여야가 관심을 두고 있는 민생 현안.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재래시장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30.6% 감소했다. 28만명에 이르는 재래시장 상인들은 경기 침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열린우리당은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래시장육성특별법 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고, 한나라당도 앞으로 5년간 1조원을 투입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재래시장 현대화 계획을 내놓았다.
경제법안 놓고 대립하는 여야=서민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재정, 즉 ‘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기활성화 기업순익 및 개인소득 증가 세수 증가 서민지원 확대’라는 선(善)순환구조가 작동돼야 한다. 정부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17대 국회가 열리는 대로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48건의 경제법안 제정 또는 개정안을 한꺼번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 중에는 16대 국회 때부터 여야가 뚜렷한 시각차를 보이던 법안이 여럿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법안으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 부활과 출자총액제한(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 공무원노조 허용(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다.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은 16대 국회 때 공정위가 부활을 추진했으나 여야간 이견으로 무산되면서 2월에 만료됐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한 출자총액제한에 대해서도 열린우리당은’유지’를, 한나라당은’폐지’를 주장한다.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여부도 논란거리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주식시장에 안정적인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연기금 운용의 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덜 받도록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퇴직금을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하도록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여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국가질서를 유지하고 간첩과 좌익세력의 활동을 억제하는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모호한 법조문과 지나친 법집행으로 사상범을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그 존폐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국보법의 뿌리와 실태=국보법은 1948년 12월 여순사건의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제정된 뒤 11차례 개정됐다. 자유당 정권 하에선 국가기밀을 군사정보뿐 아니라 사회·문화정보까지 확대해석해’막걸리 국보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4·19 직후 민주당은 인심혹란죄를 없애는 등 법을 대폭 완화했으나, 5·16으로 집권한 군부는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 등을 신설하는 등 국보법 보다 강화된 반공법을 제정했다.
이어 1980년 신군부는 반공법을 폐지하고 통합 국보법을 마련했으나 찬양고무죄 등은 존속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국보법 개폐 논의가 무성했지만 1991년 일부 조항을 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골격이 유지됐다.
폐지운동 및 근거=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최근 국보법 폐지를 위한 일종의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키로 결의했다. 민변은 참여연대와 인권운동사랑방 등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 17대 국회와 정부가 국보법 폐지에 적극 나서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민변의 백승헌(白承憲) 변호사는“국가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의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국보법이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국보법의 폐지는 정상적인 상황으로의 복귀”라고 말했다.
일부조항 개정론=대한변호사협회 등은 전면 폐지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 반국가단체 규정과 찬양고무죄 불고지죄 등 문제조항은 개정하되 나머지 부분은 일단 존치시키면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변협 김갑배(金甲培) 법제이사는 “불고지죄는 너무 비인도적이고 찬양고무죄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며 “이들 조항은 손질해야 하지만 국민정서상 완전폐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입법론=강금실(康錦實) 법무부장관은 지난해 4월 “시대가 변한 만큼 인식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며 국보법의 대체법안 검토의견을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강 장관의 사견으로, 법무부의 공식입장은 아니었다.
대체입법론의 근거는 시대와 상황의 변화. 특히 국보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남북교류협력법은 북한을 교류협력 대상에 포함하고 있는 법체계의 혼선을 정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 역시 일부 문제조항을 폐지하고 나머지 부분을 새 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어서 개정론과 큰 차이는 없다.
존치론=일부 보수적인 법조단체와 재향군인회 등은 현재 만연하고 있는 간첩과 좌익세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행 국보법도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부회장인 임광규 변호사는 “독일도 통일 전에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었던 법을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다”며 “국보법을 개정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991년 국보법을 일부 개정한 이후 북한을 교묘하게 찬양하는 것을 처벌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법무부 및 검찰의 입장=법무부 관계자는“앞으로 이어질 여러 논란에 대비해 법률 및 이론적 검토를 하고는 있지만 국보법 개폐 문제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는 없다”며 “정치권에서의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 또한 “법 집행기관인 검찰로서는 국보법 개폐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신중한 법집행=법원은 개폐론을 고려해 국보법 적용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0월 초등학생용 통일교재 ‘나는야 통일1세대’를 제작 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이장희(李長熙) 한국외국어대 교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것. 그러나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재독학자 송두율씨에게 반국가단체 규정을 적용하는 등 국보법 적용에 아직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편이다.
검찰과 경찰의 국보법 적용도 갈수록 신중해지고 있다. 지난해 법무부가 발표한’국보법 위반사범 입건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1999년 506명에 달했던 위반사범이 지난해 상반기(1∼6월)에는 48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비정규직 논란
‘비정규직 근로자’문제가 올해 노사관계를 좌우할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2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퇴직근로자의 분신자살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정규직 위주의 노동운동을 해 온 노동계의 움직임도 달라졌다.’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올 임금단체협상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건 노동계는 목표 관철을 위해 6월을 집중투쟁 기간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반면 고용시장의 유연화를 중시하는 재계도 물러설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관련법안의 연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도 노사 양측의 틈새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주소=비정규직은 1주일∼2년 단위로 재계약하거나 하청업체 신분으로 원청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뜻한다. 정부는 비정규직 규모를 전체근로자(1,430만명)의 32.6%인 460만명으로 집계하는 반면 노동계는 784만명(55.4%)이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0~ 60% 수준. 학자금 수당 휴가 같은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현장에선 식당 샤워장 버스 이용까지 차별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 전체근로자 124만 9,200명 중 23만 4,300명(18.8%)이 비정규직이다. 집배원 환경미화원 등이 다수를 차지하며 역시 정규직과의 차별이 심하다.
쟁점=올해 임단협에서 10.5~ 10.7%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민노총은 비정규직의 임금도 정규직의 85%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 그러나 이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기업이 20조 6,000억(한국경제연구원)∼26조 7,000억원(한국금융연구원)의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논거에서다.
양대 노총은 “재계가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 임해준다면 정규직의 양보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개별 사업장에서 정규직이 실제로 기득권을 양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상당수를 정규직화하고 하반기에 ‘파견제 근로자보호법’개정과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보호법’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가 파견업종을 늘리는 데 반발하고 있고, 재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민간 부문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다. 예산 확보와 고용시장의 유연성 악화를 걱정하는 경제부처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해법=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에 ‘스페인식 노사모델’을 권고했다. 스페인식 해법은 정규직이 퇴직금 일부를 비정규직에 돌리는 등 정규직의 양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기업에는 벌칙을, 정규직 채용을 많이 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특징. 노사정위원회 이호근 박사는“대기업노조가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재계는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할 경우 이를 비정규직을 위해 사용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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