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반세기 한, 땅속에서 울고 있다
6.25 참전용사 유해발굴사업 활성화로 애국심 고취해야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젊은 영혼 10만 3,000여명은 아직도 땅속에서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1960~70년대에는 ‘먹고 살기 바빠서’라며 이 문제를 비껴갔고, 1980.90년대에는 ‘너무 오래 돼서 유해가 남아 있겠느냐’며 유해발굴 사업을 외면했다. 200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 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이란 명목아래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시작했으나 4년간 935구의 유해만을 발굴했을 뿐이다. 미국, 일본이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90년대부터 집요하게 참전군 발굴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국민 개개인에 대한 국가적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참여정부 출범 2기를 맞아 다시 재조명해 본다.



금년 2월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열고 닫는 장면 속에서 1,1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의 머리 속에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는가’란 문제의식과 함께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란 생소한 개념을 각인시켰다.
한국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된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관련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육군 유해발굴팀에 의해 2000년부터 2003년 11월까지 진행된 사업이다.
4년의 작업기간동안 전쟁사/증언자 증언, 발굴사례등을 기초로 발굴가능지역을 선정하여 유해 935구, 유품3만 1,904점을 발굴하는데 성공했으나 아직도 전국 곳곳에는 10만 3,000여명의 한국전쟁 전사자들이 잠들어 있다.
금년에도 3월부터 10월까지 경기 연천, 강원홍천 등 9개 지역을 중심으로 유해발굴사업을 계획, 지금 이 시간에도 과거 치열했던 격전지를 중심으로 유해를 찾고 있다.
유해발굴반은 장교 1명, 부사관 2명, 병사 16명으로 구성되는데, 전담 병사들은 삽과 탐침봉, 곡괭이 붓, 낫 등을 들고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발굴작업을 벌인다.
영화에 나왔듯 발굴현장에서 랜(LAN)을 사용하고, 노트북으로 참전자 데이터베이스를 바로 검색하는 등의 첨단 장비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들은 부족한 장비를 ‘내 조상묘를 찾는다’는 사명감으로 메우고 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의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아보자.
한국에 앞서 미국은150년 전 미국 남북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전사한 미군 유해를 찾고 신원을 확인하는 조직을 갖추고 유해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육군 인사사령부 예하에는 실하이(CILHI-U.S Army Central Identification Laboratory in Hawaii, 미육군 중앙유해감식소)란 조직이 있는데, 주목할 점은 이 부대의 구호인 ‘당신을 잊지 않는다’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세계 어디라도 달려가서 미군 유해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찾을 수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
핵문제로 대치하고 있는 미국과 북한은 이미 1996년부터 북한 지역에서 한국전쟁 때 숨진 미군유해를 공동 발굴하고 있다. 2002년 10월 이후 불거진 북핵 문제로 인해 일시 중단된 미군 유해발굴사업은 금년 들어 다시 시작됐는데, 두 나라는 4월부터 11월까지 다섯 차례 미군 유해를 합동 발굴할 계획이다.
북한에서의 유해발굴작업은 1973년 설립된 세계 유일무이한 유해감식기관인 실하이 전담팀에 의해 이뤄진다.
이 기관은 다음의 4개 부서로 이루어져 있다.
(1) 지휘/지원부서(Command & Support) : 대령을 최고 지위로 갖는 미육군 부서로서의 실하이 명령체계와 지원을 담당한다.
(2) 수색/발굴부서(Search & Recovery Operations) : 직접 현장에 나가 유해발굴을 펼치는 팀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18개 발굴팀이 있다. 발굴팀은 모두 10~14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팀당 팀의 리더로서 대위(captain), 시신 담당 전문가로서 경위(Sergeant), 폭발물 해체 전문가, 통역관, 사진/발굴기록 담당관, 의사, 무전담당 등이 있다.
(3) 사망자료분석부서(Casualty Data Analysis) : 전쟁일지, 전범자료, 사학자들의 연구자료 등을 토대로 전쟁이 일어났던 지역과 사망자의 규모, 신원 등을 미리 뽑아 분석한다. 이부서의 연구를 근거로 수색/발굴부서의 발굴 일정이 짜여진다.
(4) 연구부서(Laboratory) : 발굴한 유해를 검사하여 신원을 밝혀내는 작업을 한다. 30여명의 법의학/문화인류학자와 4명의 법치의학자로 이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장에 투입되어 발굴팀원과 함께 고고학 발굴작업을 담당하기도 하며, 송환된 유해를 연구실에서 검식하는 임무도 맡는다.
미국은 2차 대전으로 7만 8,000여명, 한국전으로 8,100명, 동서냉전으로 120여명 그리고 월남전으로 1,900여명의 미군이 실종되었다고 전한다.
이 가운데 한국전으로 실종된 8,100명 중 5,100명은 북한에, 1,850명은 남한에, 300명은 추락한 비행기 사고로 바다에, 또 860명은 신원확인 없이 펀지보울 국립묘지에 각각 묻혀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북한과의 한국전 전사자 발굴작업은 북한이 실하이의 입국과 발굴을 허락한 1996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00여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해가 발굴되었으며, 이중 13명의 미군 신원이 최종 확인되어 가족에게 돌아갔다.
실하이는 세계 2차 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병사들의 유해발굴, 감식 그리고 송환을 목적으로 하며, 1973년부터 2002년까지 모두 738명의 유해신원을 밝혀 가족의 품에 안기게 했다.
말 그대로 미국은 자국민은 지구 어디에 있든 집요하게 찾아내 명예를 지켜준다는 것이다.

유해발굴사업은 국가 독점사업

미국이 이처럼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사학 전문가는 “전사자 유해발굴은 국가 독점사업이다”라고 설명한다.
국가는 나라를 위해 희생된 자는 시기에 관계없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무한책임약속을 지켜야 하며, 현실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사업이므로 전부가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실하이와 같은 전문 감식기관이 없는 데다 전쟁에서 산화한 군인을 50년간 방치해 두었다는 사실은 유가족들에게 두 번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하고 있다.
국가가 체계적으로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나선 것은 전쟁 후 반세기가 지난 2000년 4월이었다. 당초 한국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3년까지 시한부로 시작됐다. 발굴반은 전국 58곳을 다니며 전사자 유해 935구를 찾았다죂표1죃. 이중 15명은 DNA감식 등으로 신원을 확인한 뒤 유가족들에게 인도했다.
한편 국방부에서는 유해발굴 작업 중 군은 지난 2002년 11월 경북 영천시 청통면과 2003년 5월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에서 있었던 국민 방위군 유해발굴작업①을 통해 한국전쟁 전사자 희생자 범위를 참전군인 뿐 아니라 비참전 군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박선주 충북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 935구를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발굴유해는 어금니의 솟은 정도와 마모, 머리뼈 이음새의 붙은 정도 등을 종합해 5살 단위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결과 20~24살 범위가 57%였으며, 15~19살 범위에 드는 유해도 24% 정도였으며, 이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된 나이층이 20대 초반임을 알 수 있다.
15~19살 층은 대부분 학도병과 의용병의 신분으로 참전했기 때문이며, 이들의 유해는 주로 낙동강 방어선을 따라 나왔다. 낙동강을 두고 밀고 밀리는 공방전에 청소년까지 대거 동원된 것이다. 전사자 유해의 키를 보면, 37%가 160~165cm였고, 33%가량이 165~170cm였다. 한편 150cm이하도 20%가량 나타났는데, 이들은 학도병이나 의용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심층조사 위해 국가기관 필요
발굴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발굴된 유품으로 개인 신원확인과 유품의 사회. 경제적 의미에 관한 심층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전문인력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 국가기관 설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행히 지난해 육군은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시한부 사업에서 영구추진사업으로 승격했다. 육군은 1단계(2004~2009)에서는 남한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마치고, 2단계(2010~ 2015)는 비무장지대에서, 3단계(2015~2020)는 북한지역 발굴을 계획하고 있다.
금년국방비 총액은 총 19조 1,288억원이다.
이중 금년 재개된 유해발굴사업 비용으로 약 4억 1,000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주요 전투지역에서 한국전 전사자 유해를 발굴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지난 2001년 50여억 원의 비용을 들여 180여 구의 미군추정 유해를 찾은 것과 비교하면 투입 비중이 상당히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의 경우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비용을 민간기업이 지원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전사한 유해발굴작업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군단 이상의 인력이 하나의 섬 전체를 샅샅이 조사한 사례는 일본의 자국민에 대한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후 이념대립 등의 문제로 전쟁 전사자를 오랜 시간 방치해 두어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으나 늦게나마 시작한 만큼 차가운 땅 속에서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과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일본, 미국 등의 유해발굴태도를 본보기 삼아 유해발굴 사업에 좀더 적극성을 띄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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