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절묘한 선택, 16년 만에 여소야대 형국 이끌다

이번 20대 총선은 ‘뚜껑을 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진부한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국민들은 최악의 19대 국회를 준엄하게 심판했고, 그 결과 16년만의 여소야대, 20년만에 제3당을 탄생시켰다. 그리 길지 않은 정치생활동안 참으로 고단한 시간을 보냈던 안철수에게 국민들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것이다.

   
 

1번과 2번 싸우는 동안 3번이 안착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거대 양당 체제가 깨지면서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의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새누리당도, 더민주도 단독 과반을 넘기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 것. 국민의당의 행보에 따라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정치권에서 ‘철수’할 줄 알았던 안철수의 입만 쳐다보는 신세가 된 것이다.

벼랑 끝에서 당당히 부활한 안철수. 그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며 당당히 38석을 꿰차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였던 우유부단한 모습이 아닌 야권의 단일화 요구를 거부한 채 강력하게 상황을 극복해 나갔다. 이것이 기존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야권 총선 참패론이 대두되면서 수도권만이라도 연대하자는 더민주의 제안도 철저히 거부한 채 정면 돌파했다. 안 대표가 내세웠던 ‘양당 기득권 체제 청산’과 ‘3당 체제 확립’의 필요성에 공감한 유권자들이 창당한지 3달도 안 된 국민의당을 믿어준 것이다.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책임을 져야한다고 안 대표를 몰아붙인 더민주 보란 듯 그의 양당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 1번과 2번이 싸우는 동안 3번이 제대로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안 대표는 야권분열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정치권에서 더 멀어질 뻔했다. 향후 국민의당이 어떤 정치력을 보일지 남은 과제는 많지만, 안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민들은 1번 아니면 2번이라는 좁은 선택의 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양당체제 깨고 신생정당 태어나다

그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토크정치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그가, 학생과 국민의 환호가 하늘을 찌르던 때가 있었던 그가, 2013년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후부터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창당 준비를 하다 갑자기 새정치민주연합과 합당하고, 야당은 선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고, 리더십이나 정치력의 부재는 끊임없이 회자되고…그러면서 지난해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했다.

계속된 ‘철수 정치’를 하다 이제 지쳤나보다고 생각할 즈음에 그는 ‘국민의당’ 대표로 돌아왔다. 시작만 해도 조금은 식상했다. 역시 정치판은 뻘이라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고 안철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국민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 눈빛도 비장했다. 목소리도 높았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으로 안철수를 바꿔놓았다. 시작은 그랬다. 하지만 안 대표가 유세 기간 내내 부르짖은 ‘양당 기득권 체제 청산’과 ‘3당 체제 확립’에 민심이 흔들렸다. 26.7%라는 놀라운 정당득표율을 얻으며, 더민주당(25.5%)을 누르고 당당히 2위에 입성한 것이다. 국민은 듣고 있었다. 그가 과연 자신이 말한 공략을 지켜갈지는 나중 일이다. 국민은 일단 양당체제를 깨고 38석을 신생정당에 밀어준 것으로 몫을 다했다. 국민은 투표로 말했으니 결과를 내는 것은 안 대표와 국민의당에서 해야 한다.  
 

녹색바람 일으킨 국민의당, 내홍 시작
이번 선거에 ‘녹색바람’이 분 것은 국민의당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아직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으니 그나마 기대를 갖는 것이다. 이미 거대 양당은 수년, 수십 년 동안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버림받은 것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그들을 취하고 버릴 권리가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국민의당도 잘 못하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국민의당이 내분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안철수’가 부활하면서 위태롭던 그에게 대권주자로서의 반전의 기회가 온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오는 8월 초까지 정당대회를 해야 하는 국민의당 입장으로서는 안 대표가 당권을 잡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심각하데 와 닿는다.

이번 총선의 승리는 단연 안철수 대표의 공이었다. 안 대표가 당권을 잡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당 당헌-당규 상, 4개월짜리 시한부 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안철수 대표 측의 고민에 호남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안철수 대표가 대권을 물론 당권마저 가져가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저는 원래 ‘당권·대권 분리론자’로 안철수 대표도 이를 따라야 한다”며 “당권 도전 의사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천정배 대표도 “4개월짜리 대표를 뽑아 사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처음부터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는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당 대표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정동영, 박주선, 주승용 등 호남 중진 의원들도 사실상 안철수 대표의 연임 문제를 탐탁히 여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물이 아니라 숙제, 국민 삶 바꾸는 정치하겠다”
당내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안 대표는 “원칙대로만 하면 된다”라며 자신의 대표직 연임 가능성에 대해 “아무 고민 안 하고 있다”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이런 침착한 말과는 달리 안 대표는 국회와 당내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 대표는 “조만간 우리 경제의 문제들이 태풍처럼 닥칠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 여야, 국회의 대화와 합의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내년이면 대선 국면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올해 남은 8개월은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지금 국민의 모든 이목은 ‘경제’에 쏠리고 있다. 서민들을 좀 편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지도자를 원한다. 그리고 안 대표가 그 반열에 올랐다.

총선 이후 각 지역을 다니며 지역민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낙선자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있는 안 대표. 그는 “이번 선거결과를 선물이 아니라 숙제를 받은 것이라 생각하고, 국민의 삶을 바꾸는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주옥같은 말이다. 이 말에 진정성이 있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은 안 대표에게 다시 한 번 시선을 줄 것이다.
이번 총선은 국민이 정치권에 보낸 소리 없는 경고였다면, 다가 올 대선은 이 엄중한 경고에 대한 쐬기를 박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총선에 국민이 던진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만이 대권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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