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정치 논객들의 예언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새누리당은 참패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환호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20대 총선의 최고 승리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캐스팅보터로서 향후 정국의 주도권마저 거머쥐었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 앞에 청와대는 침묵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정국 운영에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20대 총선의 이모저모를 짚어본다.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 20대 총선의 점수표다. 모든 이들의 예상을 파격한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이다. 과반수 이상까지도 바라봤던 새누리당의 오만은 처참하게 깨졌다. 당선인은 물론이거니와 개표결과를 지켜보던 유권자들도 놀랐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 심판은 올발랐고, 지역주의의 견고한 아성에는 작은 물꼬도 틔웠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어느 누구도 승기를 잡기 못한 정국은 자칫 군웅할거의 혼란 속으로 침몰할 수 있고, 정국주도권을 놓고 일명 ‘그들만의 리그’에 빠질 수도 있다.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가야 하는 정부·여당의 골몰 속에 문재인과 김종인의 자리싸움, 캐스팅보터로 거듭난 국민의당의 집안싸움까지 향후 정국의 불안요소들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하룻밤의 마술 같은 축제는 끝이 나고, 이권을 향한 4년간의 레이스는 막을 올렸다. 전통적인 양당 체제를 벗어난 3당 체제의 20대 국회가 어떻게 굴러갈지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가 혼재한다.

 

 

집권여당의 참패, 책임 공방 불가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집권여당의 참패는 벌써부터 책임공방에 대한 잡음이 시끄럽다. 김무성 전(前) 대표는 4월 14일 모든 책임을 진다는 말과 함께 대표직을 사퇴했고, 공천을 진두지휘했던 이한구 의원은 다음날인 15일 새누리당의 전국위원회 의장직에 대한 사의를 표명했다. 이 의원이 장(장을 맡았던 전국위는 당 지도부가 해체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지금,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을 임명해야 하는 의결기구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인 당의 운명을 또 한 번 좌지우지할 자리였던 셈이다. 어찌됐든 이번 참패의 1차 책임자로 거론되는 이 의원으로서는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이 부적절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이 의원은 어디까지나 1차적 책임자다. 이혜훈 서울 서초갑 새누리당 당선자는 총선이 끝난 다음날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무대 위 배우는 감독의 지시대로 하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이 답변은 “(새누리당 총선 참패) 책임이 이한구 위원장한테 있나, 박근혜 대통령한테 있나”라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대한 것으로, 이 의원을 ‘무대 위 배우’로, 박 대통령을 ‘감독’으로 비유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 개입에 대한 빼도박도 못할 증거다. 곧 이번 총선 참패의 원인을 무사안일한 공천에서 찾는다면 그 궁극적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도 된다. 아울러 친박을 자처하는 일부 당 지도부도 책임 공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원유철 원내대표의 비상대책위원장 추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이유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YTN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새누리당은 구제불능이라고 한다”며 “(총선 참패를) 수습하려면 먼저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자들은 책임을 지고, 또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새 길을 제시하면서 그에 맞는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 권력자 눈치 보느라고 국민을 무시한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막지 못한 저 같은 사람들이나 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 계파갈등에 어부지리 얻은 ‘더민주’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이 협박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는 올해 총선의 주요 이슈가 되지 못했다. 경제 약화가 유권자 표심을 좌우했다”고 분석했고, 뉴욕타임스(NYT)는 “선거 때 보통 북한과의 갈등이 보수 정당을 도왔다. 최근에도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가 헤드라인을 지배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 앞서 내분에 빠진 여당을 차가운 눈초리로 지켜봤다”며 “박 대통령에게 실망한 보수층의 표를 야당들이 잘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새누리당의 공천 잡음은 시끄러웠고, 계파 갈등은 도를 넘었다. 특히 새누리당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의 민심은 분노했다. 30여 년의 세월동안 오로지 여당의 텃밭을 자처하며 탄탄한 자양분을 공급해왔으나 실상 대구의 지역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인물이 아닌 계파 이익을 우선으로 한 공천은 그야말로 대구 민심을 뿔나게 했다. 지원유세를 위해 대구에 집결했던 당 지도부나 친박세력들을 향한 대구의 민심은 싸늘했고, 계속되는 읍소유세도 흔들리는 대구의 민심을 붙잡지 못했다.

   
 

대구 수성갑에서 31년 만에 야당의원으로 깃발을 꽂은 김부겸 당선인은 “상대편이 교만했고, 큰 실수 때문에 우리가 어부지리로 얻었다고 보는 게 정직하지 않겠느냐”며 “제 개인적으로는 큰 기쁨이지만 대구 시민들이 ‘할 말이 많았는데, 참았다가 한 번 터뜨려버렸다’는 생각이다”라는 말로 당선의 변을 갈음했다.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승리에 취해 섣부른 축배를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누리당에 뿔난 민심이 잠시 더민주당에 머문 것뿐이지 온전한 자의로 더민주를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마음으로 민생을 돌보지 않는다면 이 여세를 몰아 꿈꿀지도 모를 정권교체의 꿈은 그저 미몽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문재인 전(前) 대표는 총선 전 호남에서 한 약속을 돌이키는 동시에 돌아선 호남의 민심을 되돌려야 할 것이며,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당 대표 추대와 관련해 높아지는 당내 잡음도 조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야권 내 대권 후보자리를 놓고 벌일 경선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철수 안 한 ‘안철수’, 대권주자 눈도장 ‘꽉’
20대 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역시 안철수다. 야권분열의 원흉에서 하루아침에 대권주자로 우뚝 섰다. 20대 총선이 예상과 같이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면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뚝심의 안철수는 끝끝내 철수하지 않았고, 결국 당과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다. 문재인을 압박하는 야권의 당당한 대권주자로 눈도장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도 얻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는 국민의당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지역분열의 주범이자 호남정당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공동창단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윤여준 전(前) 환경부 장관은 CBS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당은) 의석이 호남에 완전히 편중돼 있다. 현실적으로 제1야당이라고 하기 어렵다”라며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윤 전 장관은 “의석수로만 보면 일단은 성공했다”라고 하면서도 “(안 대표가) 뚝심은 생겼지만 그게 새정치의 알맹이하고는 관계가 없다. 이제는 국민 앞에 ‘제가 말하는 새정치가 이런 겁니다’를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서일까, 총선 이후 안 공동대표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국회 내 공약점검특위 구성을 제안하며 ‘일하는 국회’를 천명했다.

   
 

“일 안 하는 국회도 반성해야 한다. 국민은 1당, 2당 자리를 바꿨지만 어느 한쪽에도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고,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국회는 더 이상 안 된다며 투표로 질타한 것이다”라며 “일을 안 하고 세비를 받는 부끄러운 출발은 하지 말자. 당리당략을 앞세우지 않으면 합의할 수 있다. 국민의당이 제안한 공략점검특위를 설치해 합의할 수 있는 공약은 20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하나씩 입법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회가 최소한의 밥값을 하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안 대표는 4·13 총선의 민심은 반성하라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박근혜 대통령부터 독단과 독주 대신 대화와 협력으로 근본적인 국정방향을 바꿔야 한다. 민심은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이제는 좀 다르게 하라는 것”이라며 “국회 탓은 그만하고 이제 국회를 존중하고 대화와 설득에 직접 나서야 한다. 설득하지 못하면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남은 임기 동안에 국민을 위해 최소한의 도리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안 대표는 차기 전당대회까지 임기가 완료되는 당 대표직의 재추대에 대해서는 “아무 고민을 안 하고 있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현재 당헌당규에 명시됐듯 (대권경선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대선 1년 전엔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덧붙인 안 대표는 “그 정신을 그대로 지켜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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