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농번기 준비하는 농한기 시절”

36년 만 당대회, ‘김정은시대’ 출범 신호탄
경색일변도 대북 관계, 이해당사국들과 괴리
中, 대북 정책 기조 ‘羈縻不節’ 안 벗어나


북한이 조용하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서 개성공단 폐쇄, 남한의 총선과 북한의 노동당대회로 이어지는 숨 가빴던 긴장의 시간이 지나간다. 언제나 그렇듯 이제는 잠정적 평화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지난달 초 미국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제스처를 취했고, 이에 앞서 미국도 주한 미국대사의 입을 통해 대화의 여지를 주지한 바 있다. 차가운 북풍(北風)이 물러간 자리에 봄바람이 살랑거릴지, 아니면 우리 정치권의 유행어처럼 ‘춘래불사춘’의 힘겨움이 어른거릴지 향후 남북관계의 기상도를 점쳐본다 멕시코를 공식 방문한 지난달 2일(현지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멕시코에서의 첫 공식일정을 동포만찬간담회로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고립과 자멸의 길을 갈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정착되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박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개발과 도발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철저한 고립과 자멸의 길을 재촉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같은 달 5일 중국은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의 구체적 이행조치로 북한과의 수출입 금지품목 25종을 발표했고, 한‧미‧일은 일제히 환호했다. 중국 국제관계 전문가인 스인훙(時殷弘) 인민대 교수는 6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 중국어판에서 이번 “목록 공표는 중국이 대북제재와 관련해 전례없는 진지한 태도와 엄격히 준수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해 준다”라며 중국에 상당히 비우호적인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반감 표출이라고 분석했다.

계속해서 “북한의 행보가 매우 어긋나고 중국의 근본적인 이익과 존엄을 훼손할 때 중국 정부는 다른 선택이 없고 북한 정권에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스 교수는 덧붙였다. 언 뜻 한국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조를 받는 듯하다. 그러나 7일 중국 관영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사설에서 중국은 이미 2013년부터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상무부 등 4개 부서 공동명의로 수출 금지품 목록을 공개한 전력이 있다고 밝히며 굳이 이번 행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신문은 이어 이번 공고문에 ‘민생’과 ‘인도주의 목적’ 등 예외적인 상황을 명시한 것은 중국의 대북제재가 북한 핵실험을 겨냥한 것이지 민생이나 전반적인 경제에 피해를 주려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며, 한·미·일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핵개발 의지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마저 '질식'시키려 한다면 이런 시도는 현실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고 중국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신문은 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이 북한에게 전통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다며 북한의 핵 보유를 반대하는 것과 북‧중 우호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함께 이뤄지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안정을 지지하는 것은 중국의 중요한 대북정책 기조이고 북한 핵 포기를 둘러싼 중국과 국제사회의 공조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역시 필요한 조치다. 어느 누구도 이 두 가지를 대립시킬 수 없고 어떤 외부세력의 간섭에도 중국의 정책 중심은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 중국 관영 언론은 전한다.

한마디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은 제재하되 북한의 정권까지 압박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제재는 어디까지나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부만은 강력한 제재를 촉구하며 국제사회의 동참을 끌어낸다는 명분으로 개성공단까지 폐쇄했다. 일정부분 총선을 겨냥한 북풍(北風)몰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 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중 한 사람이 정세현 전(前) 통일부 장관이다. 이하는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먼저, 북한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도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_ 도발이라는 말 자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도발이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상대방이 불쑥 주먹을 들이미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북한이 도발한다는 말 속에는 우리 쪽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뜻이 내포해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어디서부터 인과관계를 끊는가에 따라 책임 소재도 달라진다. 물론 정치는 본래부터 내 잘못은 빼고 상대방의 잘못만 부각시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게 생리다. 하지만 정책을 다룰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알고 분석해야 하며, 분석이 정확해야 대책도 제대로 나온다. 그런데 대북 정책을 다룰 때는 이것이 어렵다. 객관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면 ‘종북’이 된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첫째는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라고 볼 수 있고, 둘째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방어적 차원도 있다. 북한으로서는 한미연합훈련에 겁이 조금 날 것이다. 정밀타격훈련이니 참수작전이니 하면서 최대 규모로 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런 고성능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으름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셋째는 7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대내외적으로 보여주기식도 있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36년 만에 당대회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_ 이번 7차 당대회는 김정은시대가 본격적으로 출범한다는 신호탄이다. 밖에서 어리다고 우습게 보니까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면 북한 체제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북한 주민에게도 최고 권력자로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당대회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체재결집력을 높이고 새로운 시대가 출범한다는 메시지도 보내는 의미가 있다.

 
그럼 이번에도 당대회를 축하하는 축포를 쏘아 올려야 하지 않나.
_ 아마 5차 핵실험에 대해서는 득실을 꼼꼼히 따질 것이다. 핵실험을 해서 확실히 핵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면서 괜히 중국만 진짜 화나게 했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는 시늉만 한다고 나는 본다. 1,300㎞가 넘는 국경선에는 숱하게 구멍이 많다. 걸어서 강을 건너는 보따리장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5차 핵실험을 해서 중국이 이 모든 것까지 완전히 틀어막아버리면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야 한다. 1995~98년까지 했던 처음 고난의 행군은 멋모르고 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하루하루 버티다보니 해결이 됐다. 그리고 그 뒤 형편이 좋아졌다. 사람이라는 게 망했다 다시 일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힘든 일을 못한다. 북한도 말로는 풀뿌리를 먹더라도 고난의 행군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일종의 허세다. 이걸 뒤집어 얘기하면 두려워한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득실을 따질 것이다. 대대적으로 당대회를 하는데, 하루에 두 끼밖에 못 먹는다든가, 입을 게 없어서 누더기를 걸치고 나와 꽃을 흔든다면 당연히 불만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득실관계에도 불구하고 이쪽(한국 정부)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핵실험을 해버릴 수도 있다. 한미가 적당한 선에서 퇴로를 열어주면 핵실험은 안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이 지난달 초 협상을 언급하며 평화의 제스처를 취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 평화모드로 진행되면 강경일변도였던 우리 정부는 어떻게 되나.
_ 속된 말로 ‘닭 쫓던 개’다. 김영삼 정부 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내보내고 하면서 미국을 압박해 비공개 핵협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대사관을 오가며 핵협상을 할 동안 우리는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브리핑을 받아 적어야 했다. 이처럼 국제상황이 복잡해지면 미국과 북한은 얼마든지 비밀리에 협상할 수 있다. 이게 외교다. 더 나아가 중국이 유엔 제재 결의안에 대한 충실한 이행을 약속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통적으로 중국의 대북 정책 기조는 ‘기미부절(羈縻不節)’이다. 고삐를 느슨하게 묶어놓고 일정 범위 안에서는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다가 범위를 넘어서려 하면 고삐를 바짝 당겨 범위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그런 정책이다. 때문에 일일이 간섭하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국이 북한을 들어올리는 지렛대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또 중국은 어쭙잖게 북한을 길들이겠다고 나섰다가 북한이 미국 쪽으로 붙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북한은 과거 중‧소 분쟁 당시 썼던 ‘양다리외교’를 미‧중 간에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미워도 이른바 ‘순망치한’이라 해서 버릴 수 없다. 북한은 또 이걸 알기에 중국에게 얻을 거 다 얻으면서 큰소리치고, 또 필요하면 중국 몰래 미국이랑 협상도 한다. 때문에 중국은 항상 유엔 제재는 북한을 대화와 협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그게 중국의 주제가다.

 

결국 국제정치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그럼 당연히 미‧중 간에도 강대국의 논리가 작용하지 않겠나.
_ 당연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자기들끼리 거래하는 선이 있다. 가령 사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중국을 덜 괴롭게 하는 조건으로, 남중국해 문제에서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반대급부를 받아낼 수도 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대북정책이나 대중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도 중국이 계속 북한 비핵화와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나오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비확산’ 선에서 중국과 타협할 수 있다. 또 북한과도 비확산 약속받고 평화협정 해주면 끝난다. 정작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 해버리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 같은 좋은 무기시장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타협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는 더 이익인 것이다.

 

이쯤해서 개성공단 얘기로 넘어가보자. 최근 개성공단 관련해 인민경제와 군수경제의 분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_ 개성공단을 통해 흘러들어간 대북지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자금으로 쓰였다는 얘기가 올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북한의 정무원 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공산주의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렇게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경제구조는 인민경제와 군수경제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북한의 인민경제를 책임지는 정무원에는 경제부처가 절대적으로 많은데, 인민무력부는 편재조차 되어있지 않다. 국방부 직속으로 되어있어서 서로 달라고 하지도 않고, 달란다고 주지도 않는다. 이 모델은 과거 소련에서 왔는데, 냉전시대 미국과 군비경쟁을 벌이며 우주선까지 쏘아올린 소련이 정작 엘리베이터 기술은 형편없었다는 얘기다. 군수경제에서 나오는 수익은 오로지 군수경제에만 재투자되었지 인민경제와는 전혀 연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소련이 무너지긴 했지만. 북한도 나름 무기나 기술력을 해외로 수출해 수익을 창출하는 나라다. 일례로 미국의 부시 행정부 당시 북한이 하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니까 미국이 미사일 발사 실험도 그만 하라고 했다. 그때 북한이 ‘그럼 우리가 이 기술로 해마다 10억 달러 정도 버니까 이걸 줘라’ 했다.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게 실제 미국에서 ‘1년에 10억 달러는 너무 했고 3년에 10억 달러치 식량을 줄 테니 미사일 발사 실험 중지해라’라고 했고, 북한이 중지했다. 당시 미국 정보기관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개성공단에 들어간 총 금액이 5억 4천만 달러다. 이것이 핵개발에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인데, 군수경제 1년 수익의 반도 안 되는 금액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_ 재개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때는 어렵다고 본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북한과 다시 협상해서 2013년 4월과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고, 국제정세도 바뀌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아닌 클린턴 행정부나 힐러리 국무장관이 했던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힐러리 국무장관은 북핵 폐기와 수교를 묶어서 하려 했다. 평화협정을 하려면 수교를 해야 하고, 수교를 하려면 평화협정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표리(表裏)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무조건 비핵화가 먼저라며 압박만 한다. 압박으로는 남북문제를 풀 수 없다. 개성공단 같은 것이 많이 생기면 경제적 수익에 대한 욕심 때문에라도 북한은 장난을 칠 수 없게 된다. 개성공단 만들 때도 이 점은 입증됐다. 당시 다른 어디도 아닌 신동아에 ‘개성공단 개발로 휴전선 사실상 북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군사 긴장 완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경제협력이다. 개성공단 같은 것을 많이 만들면 북한의 최전방 군사지역을 경제지역으로 바꿀 수 있고, 거기서 오는 이익은 공단개발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안보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전직 통일부 장관으로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_ 바이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겨울이 왔으니 봄이 머지않으리.’ 지금 남북관계는 겨울이다. 다음 정부가 어떤 정부가 들어설지는 모르지만 설사 보수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진보적인 참모진의 의견을 정책으로 수용할 수 있는 대통령만 들어선다면 상관없다. 꼭 진보적인 대통령이 들어설 필요는 없다. 그때가 되면 남북관계에도 봄이 올 것이다. 농사로 비유하면 지금은 농한기다. 진정한 농부는 농한기를 그냥 보내지 않고 농번기를 준비하는 귀한 시간으로 보낸다. 농기구를 수리하고,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짠다. 곧 올 농번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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