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물납제 도입세미나(사진제공_한국화랑협회)

[시사매거진] 문화예술계가 지난 3일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 도입 무산에 반발하며 조속한 제도화를 촉구했다. 

지난 2021년 7월 20일, 기획재정부는 2021년 세법개정안 사전 브리핑을 통해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발표하였다. 오는 2023년 1월 2일 이후 상속분부터 미술품 물납이 허용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해당 제도가 ‘부자 감세’라는 논란을 의식하여 비공개 당정협의과정에서 반대가 발생,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세법개정안 상세브리핑을 통해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철회하였음을 밝혔다. 이어 26일 양경숙 의원은 「국유재산법 일부개정법률안」·「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대표발의를 통해 물납제 전반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 물납 대상으로 부동산과 유가증권만을 언급함으로 미술품 물납은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이로써 문화예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 여부는 다시금 불투명해졌다.

이로 인해 ‘이번에야말로’라는 심정으로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을 손꼽아 기다리던 문화예술계에서는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미술품 물납제는 ‘탁월한’ 가치를 지닌 문화자산을 공공자산화함으로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문화선진국이 갖춰야 할 핵심적인 취지를 담고 있는 제도라는 주장이다.

일례로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션은 1968년 상속세는 물론 증여세, 부유세도 문화재·미술품 물납이 가능하도록 법을 제정한 결과이며, 1985년 개관한 파리 피카소미술관도 물납제도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이번 기재부가 발표한 ‘2021 세법 개정안’ 의 브리핑에 물납제의 도입이 추가된 것은 비단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국민의 입장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국내에서도 선진사례를 기반으로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던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나 미술품 물납제를 ‘부자 감세’라 보는 시각들로 인해, 제도의 필요성은 공감하되 국민적 정서에 맞지않는다는 측면에서 이제껏 고사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간송문화재단의 문화재 매각과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등을 통해 탁월한 가치를 지닌 미술품의 공공자산화에 대한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발맞추어 문화예술계도 보다 적극적으로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지난 3월에는 한국예총과 민예총, 한국미술협회와 박물관협회등 미술계 주요 단체의 전현직 대표를 비롯하여 문화체육관광부 전직 장관 총 9명이 한목소리로 대국민건의문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조속한 제도화와 적극적 참여를 호소합니다’를 발표하였다. 이같은 주요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해당 ‘대국민건의문’을 통해 “문화재와 미술품은 한 국가의 과거를 조명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현재의 시대상을 함축한다”며 “간송의 뒤를 이어 오늘날에도 많은 분들이 재산과 열정을 바쳐 수집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전체 국가지정문화재 4900여 건의 50% 이상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시·도지정문화재 9300건 중에도 개인소유가 상당하리라 추정되는 등 개인이 가치가 높은 문화재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나 상당수는 재산 상속 과정에서 급히 처분되거나 해외 수집가에게 흘러들어가고, 여기저기 흩어지는 실정이라고 설명하였다. 글의 마지막으로는 “우리 문화예술계는 이와 같이 물납이 가능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관련 세법을 조속히 개정해 주실 것을 바라며,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정부에서도 적극 후속 조치에 나서주시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술품이라는 문화자산은 타 자산을 보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우수 문화 자산’의 확보라는 문화적이며 경제적인 양쪽 측면에서 바라봐야할 문제이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만점 시대를 열었다고 자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은 양과 질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한해 동안 소장품 구입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48억원, 이번에 기증된 이중섭의 소 그림 단 한 점도 구입하기 어려운 예산이다. 국가가 소유한 문화자산은 곧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라지만, 이번과 같은 자발적인 기증을 매번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렇다고 국가의 예산으로만 충당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미술품 물납제의 장점은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영국의 경우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상속세액은 2억 3천5백만 파운드(약 3,630억원)인 반면, 물납제도를 통해 국가가 소유하게 된 물납 유물의 가치가 3억 7천 8백만 파운드(약 5,840억 원)에 달하는 등 국가재정적인 측면에서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과 같이, 미술품의 경우 시대의 흐름에 따란 자산가치가 오르고 있는 추세이며, 예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가치를 인정받은 미술품의 가격은 일반적인 물가상승률을 넘는 가치상승률을 보인다. 이는 곧 국가의 자산이 불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 앞서 언급된 프랑스의 경우, 물납제도가 일찍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컬렉션을 소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경제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미술품 물납제가 단순히 ‘부자감세’로 치부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애초에 미술품을 통한 세금 납부는 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 작가의 유족등 상속세 담세능력이 부족한 문화재 및 미술품 소유자들을 위한 것이다. 뿐만아니라 국내 제도상 물납으로 인정받아온 부동산 및 유가증권과 같이, 미술품 역시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재산의 항목으로 과세가 진행되어왔다. 미술품에 한해 과세는 하되 물납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논조는 형평성에 어긋나며, 가치를 인정받은 미술품으로 납세하는 것은 전체 납부세액에 차이가 없으므로 이를 조세회피나 감세로 볼 수 없다. 

지난해 간송문화재단의 문화재 매각 및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등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는 미술품 물납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생성되었고, 이를 통해 미술품에 대한 편견은 점차 개선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미술시장 및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대되고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현 시점은, 물납의 범위를 미술품까지 확대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시기적절하다고 보여진다. 때문에 이번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이 좌초된 것에 대해 문화예술계의 우려가 더욱 크다. 물납제의 도입이 지체될수록, 확보할 수 있는 주요 문화자산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시기적인 문제에 대한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번 미술품 물납제의 철회와 관련한 홍남기 부총리 발언에 의하면 정부는 추후 의원입법을 통한 미술품 물납제의 재논의와 검토의 여지를 열어둔 상황이다. 한국예총과 민예총, 한국미술협회및 한국조각가협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한국화랑협회, 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과 한국미디어아트협회등 장르와 성격을 불문한 주요 문화예술계 협단체에서는 공동성명으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발송하며 이번에야말로 문화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안착되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8개 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에서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 여부는 다시금 불투명해졌다"라며 "문화예술계에서는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술품 물납제로 인해 발생하는 공익적, 경제적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라며 "미술품 물납제가 단순히 '부자 감세'로 치부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술품 물납제의 실수혜자는 담세능력이 부족한 소장자이며, 가치를 인정받은 미술품으로 납세하는 것을 조세회피나 감세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2021년 세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상속세 미술품 물납을 허용하기로 했으나 당정 협의 후 관련 내용을 제외하고 최종안을 발표했다. 미술품 물납 허용이 부유층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가 된다. 정부는 추후 의원 입법으로 개정안이 제출되면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재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처리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한편 이날 성명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한국미술협회, 한국조각가협회, 한국화랑협회, 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한국미디어아트협회가 참여했다.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이범헌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이청산
(사)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이광수
(사)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 김정희
(사)한국화랑협회 회장 황달성
(사)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회장 이순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김진엽
한국미디어아트협회 회장 김창겸

오형석 기자 yonsei68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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