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의 기억, 슬픔, 그리고 고독

세계 곳곳의 풍경을 내면의 눈으로 담아낸 여행 산문집

저자 김기홍 | 출판사 행복우물

[시사매거진] 팬데믹은 평범하던 출근길부터 특별했던 여행길까지 모두 변화시켰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제약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세계 각지를 순례하며 곱씹은 생각을 담아낸 에세이를 소개한다.

신간은 저자가 5년 동안 자신을 홀린 세 사람, 니코스 카잔차키스, 칼 융, 그리고 조셉 킴벨의 흔적들을 따라다니며 유럽 각 나라와 남미 지역을 돌아다닌 경험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과 오랜 시간 교감해 오고 있는 저자는 여행을 통해 사고의 폭을 더 넓혀왔다. 그런 이유로 그는 여행 중에서도 특히 고생스러운 크루즈 여행을 선호한다. 크루즈 여행만이 갖는 독특한 경험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독일 유대인 학살 추모관에서는 독일 민족을 그렇게 광기로 몰아넣은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며, 한 유대인의 편지를 보고, 그에게 관연 돌아갈 고향은 있는가를 묻는다. 

체코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는 ‘과연 프라하에는 봄이 왔는가?’라고 물으며,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의 추모관에서는 약소민족의 백성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울음을 터트리고, 크레타 섬에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추모하며 그의 묘비명을 다시 들여다본다. 

또한, 저자는 핀란드 헬싱키를 방문하면서는 75년도 아닌 자그마치 7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식민지로 남았던 핀란드 사람들의 고통을 떠올린다. 그런 아픔을 극복하고 젊음이 넘치는 헬싱키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저자는 인생에서 ‘좋은 때’는 언제인지를 반문한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물랑루즈의 무용수들을 보며 그들의 철저한 직업정신을 헤아려 보고, 그들의 춤은 단순히 몸으로 추는 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정해진 체중에서 단 1kg이라도 초과할 경우 다른 직업을 알아보아야 하는 그런 무용세계의 냉혹한 현실을 어찌 눈으로만 즐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서울대학교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공부했던 저자의 깊이 있는 지식을 엿볼 수 있다. 책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를 넘어, 세계 각지를 순례하며 곱씹은 철학책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풍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 있다.

역사를 공부하고, 현지에 방문해 그곳의 문화를 실제로 느껴보기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사회학, 심리학, 역사 평론까지 담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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