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연 작가, 인간의 양면성과 닮은 '얼개', 치유와 희망의 메세지 던져

"솔직하고 거짓 없는 작가가 되고 싶다"

전지연 작가의 작품 '얼개' (사진_웅갤러리)

[시사매거진]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여유 조차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사회에서 인간의 모습과 닮은 ‘얼개’를 매개체로 한 미술작품으로 치유의 시간을 선사하는 작가가 있어 주목되고 있다.

자격지심이나 계산 없이 그냥 주고 싶고, 그냥 받아도 기분 좋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색면추상 화가인 전지연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전지연 작가는 일찍부터 '얼개'라는 테마를 자신 회화의 모티브로 삼았다. '얼개'란 어떤 사물이나 조직의 전체를 이루는 짜임새나 구조를 일컫는다. 작가는 이 구조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색채와 형태에 실어 회화의 완성을 일관성 있게 추구해왔다. 

초기 그녀의 작품은 이 '얼개'라는 형상에 아주 충실한 듯 기본적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표현형식이 그녀가 생각하는 회화의 보편적인 질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적어도 작가는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피에트 몬드리안의 예술적 이념에 전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시각에서 회화를 바라보는 전지연의 이해와 시각은 매우 보수적이다.

그가 보여준 '얼개'는 보편적으로 일정한 틀과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그 형태에 예속돼 있지 않으며 다분히 구조적이고 기하학적인 표현에 연결돼 있다. 아마도 그 '얼개'속에 작가 자신이 담으려는 그 언어, 즉 메시지가 곧 회화의 등가물로 인식 된 것이다.

최근 그녀의 작품에 보여지는 '얼개'는 매우 아름답고 더욱 조형적이다.

이러한 시각은 작가가 구태여 '얼개' 개념과 형태에 구속되지 않겠다는 자유의지, 혹은 변화로 평가된다. 어디에도 '얼개'에 관한 한 고집스런 형태도, 연연함도, 닫힘도 없다.

안과 밖의 구분도, 무게도 없다. 따라서 이는 무엇과도 만날 수 있고, 어떤 것도 버릴 수 있다는 가장 자유로운 경지에 작가가 정착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그녀는 동양의 철학자 노자가 가졌던 도의 개념을 생각한 것은 아닐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 했다. “‘도’라고 하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선과 면, 평면과 입체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관심은 면 분할을 통하여 색띠를 그리고, 다양한 도형의 형태에 색을 더하면서 자신의 조형적 어법을 구축했다.

 때로는 날카롭게 각진 도형으로, 완만한 선과 부드러운 면을 잘라내며 경쾌한 색면으로 전지연식 스타일을 완성한 것이다. 균형과 고집스런 규칙으로 짜여진 화면속에 대조적인 형태들은 지적이고 우아한 색채와 교감하며 평면이 보여줄 극적인 조화의 경지를 대담하게 보여준다.

그 형상들은 때로는 ‘위에서 내려다 본 세상’ 같기도 하지만 ‘옆에서 본 세상’, ‘내면의 은밀한 이야기’처럼 그 자신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지적인 예술가의 스토리가 농축돼 있다.

작업 중인 전지연 작가 작가는 이런 형태의 예술창작과 작업 과정을 ‘치유와 위안을 주는 행위’로 정의한 바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그러한 인상을 주고 있는 이 예술가의 작업 속에는 분명 작가의 메시지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전히 전지연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기도하는 행위’와 동일한 의미와 가치를 가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전지연의 이번 쉐마 미술관에 이은 웅갤러리의 작품들은 그간의 고뇌에 대한 하나의 초월적인 기도의 응답이다.

그 응답에서 그녀는 '얼개'에서 진일보한 승화 된 색면과 구성의 엘도라도(El Dorado)에 무사히 안착했음을 알리는 증표가 되는 셈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녀가 펼쳐 보이는 색면과 구성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주목해 볼 일이다. 이제 문제는 궁극적으로 이 작업들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더욱이 그녀의 메시지가 추상적일 때 그 해석은 더 난해할 수도, 불가능 할 수도 있다.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가 추상미술은 감정이입의 중요한 전달 형식으로 본것처럼 전지연의 모든 예술은 근본적으로는 어떤 내적 충동과 관계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가족과 일상의 관계에서부터 자연, 나아가 절대자, 그리고 나와의 내적 관계’까지 그녀의 회화가  아우르고 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 관계들을 작품 속에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등장 시키지 않는 것이 전지연 회화의 특질이자 매력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회화는 내면의 의식을 색과 형태로 담아내는 메타포적 언어의 예술이 아닐까 해석된다.

예를 들면 그 생활 속의 흔적들이 화면 속에 때로는 차가운 형상으로, 우아한 색채로, 작은 띠로, 비정형의 얼개로 합체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달한 그 비밀스런 색채와 형태들의 조화가 우리들에게 변하지 않는 시각적 즐거움의 풍부함으로 그의 회화적 메시지는 이지적이고 종교적 숭고함이 묻어난다. 

그녀가 '얼개' 를 버리지 않고 그것에서 혁신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색채와 형태의 비약적인 표현에 크게 주목한다. 왜냐하면 얼개가 추상적 형태로 단순화 되면서 그녀는 색면의 분할과 구성을 연출하는 능력이 거침없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말레비치처럼 지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형태에 목말라 했듯이 원, 사각형, 삼각형 등에 색채를 이끌고 기하학적 바다로 끊임없이 항해할 것이다. 

전지연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전히 회화의 근본적인 조형 요소인 선과 색으로 세르쥬 폴리아코프(Serge Poliakoff)가 이룩한 탁월한 구성의 질서 있는 작품성에 다다를 것이다.

자연의 기본적 형태에 대한 몬드리안의 지적인 탐색이 예술 세계에 새로운 통로를 제시해 준 것처럼, 그의 <얼개>가 회화가 가지는 최고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또다른 입체작품의 가능성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하여 추상으로 화면을 더욱 질서있게 분할하고, 감정을 형태화함으로서 작가의 사명인 메시지의 본질에 다다를 것이다. 

이런 전지연의 시각적 표현의 메타포가 가능한 이유는 작가가 그다지 미술의 트렌드를 따르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온전하게 기하학적인 형태와 색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끊임없이 회화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전지연 작가

이렇게 캔버스에 자신의 메시지만으로 언제나 화면을 가득 채운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 외로운 순례 길에 그가 관심을 보였던 입체작업으로의 표현 영역을 확장해 보는 것도 그녀에겐 엘도라도 이상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다.

그것은 진부한 평면회화의 일탈로 보이지만 극복이며 이것으로 표현의 다양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지연 작가는 기본적으로 속성상 자신이 인지한 내면의 풍경을 어느 때는 모호하게 드러내고 다소 불균형적인 구조와 형태로 담아낸다. 그래서 '얼개'의 연작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자유를 주며, 강요하지 않아서 자유롭고 지적인 교양이 있다.

때로는 공간이 주는 시각적 비례에 우리를 호흡하게 하고, 색채의 아우라에 침묵하게 하며, 편안한 형태의 펼침으로 존재의 흔적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소중한 내면의 풍경과 관계를 팽개친 채, 아름다운 순간들을 상실한 채 현실에 파묻혀 생활한다.

전지연의 회화는 그런 인간 삶의 내밀한 풍경에서 관계의 존재방식을 끊임없이 캐물어 가며 치열하게 시각화 한다. 이것이 무엇보다 회화로서 치명적인 매력이다.

우리가 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그러한 생명의 즐거움과 지적 성찰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미술의 힘이며 생명력이다.

□ 작가노트

얼개, 바람에 색을 입히다.

인간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바람(wish)이 바람(wind)을 타고 현실화되는 것, 그것이 얼개의 마음이고 얼개의 속성이다. 

바람(wish)은 선한 아름다움의 동력을 품고 있다. 얼개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 왔던 나에게 바람은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을 의미한다. 그 이상은 물질세계만을 추구하여 욕심이라는 절벽을 만들지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인내심을 난발하지도 않으며, 집착을 열정이라는 당위성으로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바람는 위로, 화해, 사랑, 나눔……이라는 희망의 색을 품고 있다. 나는 얼개를 통해 어디든 흘러가는 바람에 고운색 살포시 입혀 본다.

□ 경력

M.F.A. College of Fine Arts, SUNY New Paltz, New York

M.F.A.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대학원 졸업

B.F.A.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개인전 31회

성곡미술관, 쉐마미술관, 서호미술관, 남송미술관, 갤러리 비선재, 갤러리 초이, EM 아트 갤러리, 갤러리 JJ, 인사아트센터, 서울아산병원, 팔레드 서울, 예술의 전당, 국립고양스튜디오 등

오형석 기자  yonsei68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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