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의 공간개발’
“남아있는 지하공간이 있는 한 대현실업(주)은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K씨는 대전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뒤 엘리베이터로 지하 100m를 내려갔다. 그리고는 전철로 갈아타고 서울 근교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했다. 사무실은 지하 200m 지점에 있고, 그 지상은 숲이 우거진 공원이다. 사무실은 태양광 집광 시스템에 의해 자연광이 비치고 있어 항상 섭씨18도와 습도 40%를 유지하고 있어 지상 못지 않게 쾌적하다. 퇴근길 즐비하게 늘어선 지하상가는 여느 유명 백화점이나 공연장에 손색없는 문화공간이 된다. 쇼핑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보여 지는 문화행사가 눈길을 끈다. 지상은 이미 교통난으로 복잡하고 공해로 숨이 막힌다. K씨의 일상은 이제 지하화 된 공간에서 자유롭다. 이것이 바로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미래 지하도시의 한 장면은 아닐까? 도시의 성장에 따라 인구의 밀집과 아울러 국민의 소득수준 향상에 비례한 차량의 증가, 제한된 국토의 효율적 활용을 위하여 곳곳에 지하도로가 생겨나고 복합적 지하 공간 개발이 시도되어 온 역사 이래 지하화의 선봉에 기치를 높여 선구적인 공간개발에 전념해 온 기업이 있다. 1976년 평화방산지하상가(주)로 출범한 이래 90년대 지하상가 개발 전문업체로 입지를 굳건히 다진 대현실업(주)가 바로 그곳. 그들이 그토록 지하공간에 전념하며 남아있는 지하공간이 있는 한 개척의 열을 식히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데에는 인간중심이라는 범인류적 개발철학이 있다는데...



21세기의 새로운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하공간은 그 특성과 개발 잠재력으로 인해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추위와 맹수를 피해 동굴이라는 일종의 지하공간에서 생활했던 인류는 산업화와 거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땅의 효율적인 활용과 환경 문제, 에너지 절약 등의 이유로 다시 지하공간으로 선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에 들어 건설재원과 지가의 수지타산이라는 경제적인 이유로 도심부의 지하상가 건설이 이른바 「붐」을 이룸과 동시에 일반건축물에도 지하실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민방공시설 정비차원으로 국가시책을 권장하면서 민간자본에 의해 지하공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0년대 지하철건설공사로 연계된 지하차도가 상업공간으로 발전, 총면적 2,060평의 대규모 소공지하상가가 지하상가 시대의 도래를 선창하면서 이어 강남지하도 1,2공구가 활발한 지하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당시 도시공간의 한계가 도래하리라는 예견아래 그 난제의 해결에 앞장서고자 했던 최초의 민간자본 형태의 지하개발 기업이 바로 대현실업(주)이다. 1976년 당시 연말 대화재로 잿더미로 된 채 방치되었던 성중지하상가를 완벽하게 복구하면서 세간에 화제가 된 이후 대도시 중심부에 잠자고 있던 지하공간을 새로운 미래 산업의 중심부도 탄생시켰던 주역이기도 한 대현실업(주)이 이제 선진외국에 못지 않은 지하복합도시를 구상하면서 교통과 물류시설, 업무와 유통시설 그리고 정보와 문화 시설을 집중 수용하여 네트워크화 한 24시간 깨어있는 생활공간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창조자적 개척정신으로 굳건한 기반을 다진 선구자들이 이제는 ‘인간중심의 공간개발’이라는 범인류적인 공익을 선포하면서 개발에만 급급해 본연의 취지를 잃어 가는 후발업체에 난제의 핵심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난제란 과연 무엇이며 진정한 미래의 지하세계는 어떤 것인지 대현실업(주)의 손준석 대표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부친의 뜻은 선구자적 사명감이었고 성공의 열쇠는 지칠 줄 모르는 집념의 공격적인 결단성이었다.
대현실업(주)는 1976년 12월에 창립, 올해로 28년째 되는 단연 지하상가 개발의 선두업체이다. 1976년 당시, 서울에 1기 지하철이 완공, 지하철과 연계해 사거리나 교통이 혼잡한 지역, 국가 시책인 민방공 대피시설을 서울시 중요지역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지하상가를 개발하겠다고 하여 귀추가 주목되었던 기업이 바로 대현실업(주)이다. 조금은 독특하고 효용성에 의구심이 드는 대현의 생산품은 다름 아닌 ‘지하상가’였고 그들의 개발품은 독창적이고 대범한 기업정신에서 기인된 결과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도 손대기를 주저하던 지하상가 개발의 미래를 전망하고 첫발을 내디딘 선구자적 예지는 하나의 모험이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았던 지칠 줄 모르는 집념과 의지로 공격적인 결단성을 성공으로 이끈 손현수 회장의 기업정신의 성과물이었다. 73년 화재로 방치되어 있던 신당동 중앙시장 지하상가는 지하 공간 개발의 회의성을 면치 못해 누구도 뛰어들지 않는 사장된 공간이었다. 이후 손 회장은 서울시가 처음으로 시도한 민자유치 지하상가 개발에 처음으로 참여, 서울 방산지하상가를 개발함으로서 현재 대현실업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당시 지하 공간 개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화재로 인한 지하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등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미래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리란 예견 아래 단행된 지하상가 개발참여는 지금까지도 ‘선구자적 개척정신’이라는 대현정신으로 남아있다.
“사장된 지하공간을 개발하여 도심교통난 해소는 물론 건전한 유통산업공간을 확보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전국의 요지에 지하 공간 개발사업을 시작한지 어언 25년을 회상하면 누가 시키지도 않은 부친의 선구자적 사명감에 한 기업인으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뼈를 깎는 의지와 집념을 흔들리지 않는 결단성으로 창조하는 선구자가 있기에 인류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부친의 뜻은 그러한 사명감이었고 지금의 대현실업은 당신의 결단성의 소산입니다.” 손준석 대표는 부친의 업을 단지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인으로써의 자긍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상가관리주체로 기업의 역할을 증대시킨 임대방식을 채택하여 대현실업(주)의 전신인 평화방산지하상가(주)를 설립한 이 후 1978년 2월 27일 대현실업주식회사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70년대 말 부산 대현지하상가 개발을 추진할 때 만해도 부산서면은 동서를 연계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는 했지만 상권형성에 있어서는 광복동, 남포동으로 대변되던 중심상권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미흡한 실정이 아닐 수 없었지요. 또한 혼란하던 시국상황으로 개발인가가 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는데 부친께서는 서울과 부산을 무려 185번이나 오르내리셨습니다. 대현은 끈질긴 집념과 의지의 산물입니다. 대현지하상가 개발이후 서면은 일일 유동인구 30만을 자랑하는 부산의 중심상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대현지하상가의 개발은 부산지하철 1호선의 착공을 1년 앞당기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1981년 12월 22일 1공구의 준공개장을 시작으로 82년 12월 22일 마침내 완전 개장하였다. 꾸준한 대현의 성장은 1987년에 이르러 오늘날 중부권 개발의 핵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청주시로 이어져 대현지하상가 충청북도 최초의 지하상가로 지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발된 청주대현지하상가는 그 설비나 인테리어 부문에 있어서 당대 최고를 목표로 하여 진행되었는데 폭 6m의 공공 보도, 8평에 이르는 넓은 점포면적 등은 국내지하상가 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혁신적인 설계였다고. “부친께서는 지하상가라면 청주의 것을 보지 않고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투지를 불태우셨습니다. 건설공사 착공에 앞서 시민들과 하신 약속처럼 청주대현지하상가는 최신 설비, 인테리어로 지하상가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준 작품이었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저와 대현이 후발업체의 아성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최고를 지키는 근본은 모두 28년 쌓아온 부친의 땀과 의지의 대가가 아닐 수 없죠.” 다소 상기된 손 대표의 가슴 뿌듯한 회상에 대현의 걸어온 길이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인간중심의 지하 공간 창조, 지하에서의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미래
1993년 준공 개장한 마산 합성 지하상가는 중부경남의 중심도시인 마산, 인근의 창원시, 넓게는 진해시까지 포괄하는 동일 경제권에 속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다. 총면적 5,065평 규모의 대단위 지하상가로 개발된 합성 지하상가는 국내 처음으로 상가전용주차장을 완비하였을 뿐 아니라 설비 및 내장 자재의 고급화, 천장의 돔형 설계, 오픈 매장 인테리어 등 현대적 감각의 지하 공간 구성으로 향후 개발될 지하상가의 전형을 보여 주는 원형이 되었다. 또한 만남의 광장, 음악분수대 등 휴게 문화 공간 창출은 단순한 상품판매의 공간이 아닌 문화 예술 공간으로 승화시켰다는 의의를 지닌 공간이다. 합성지하상가의 개장으로 대현실업(주)은 단일규모 상가개발 1만평개발 돌파라는 기록을 남기며 단연 업계 선두를 확고히 하였다. “인간중심의 지하 공간 창조”라는 대현실업(주)의 목표실현은 이후 지하상가개발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라 불려지고 있는 대현프리몰 대구 및 지하주차장 건설사업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대구는 제 고향입니다. 고등학교까지 나고 자란 고향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일 자체가 보람이었죠. 지상에서의 시선은 자유로운 만큼 다양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지만 지하에서는 그 폭이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이지요. 화려한 상가조명아래 진열된 수많은 상품으로 시선은 제한되고 낮은 천장고와 줄줄이 이어지는 행렬에서 다양한 행위와 가능성은 억눌려 즉흥적인 소비를 일으키는 것이 초창기 지하상가의 면모였다면 이제는 보다 인간적인 차원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지하공간은 각박한 도심 속의 건강한 구멍이자 숨통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해서 누구나 머물 수 있고,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그래서 열린 장소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일상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을 담고 싶습니다.” 대현실업(주)은 지하공간에 투자해서 관리, 운영을 하는 회사로 76년 창업 당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개발과 임대, 관리를 넓혀나갔지만 이제는 개발 못지 않게 장기적인 관리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화하였다는 손 대표의 말이다. 대구의 대현프리몰을 고감도 패션성이 강한 이미지를 연출, 현대적인 디자인과 깨끗하고 세련된 감각과 휴머니즘을 가미한 인간중심의 공간이라 자부하고 있는 점이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하상가라는 한계성이 통행인을 대상하여 본연의 의도는 통행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상업적인 행위가 행해져야 하지만 이제 지하공간은 단지 통행로로써의 단순 의미가 아니라 문화공간으로써 소비자들의 보다 많은 니즈(needs)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현실업의 생산품인 지하상가를 개발하여 임대 이윤을 통해 기업을 유지하지만 단순 생산의 의미로써는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것. 이것이 후발업체의 단순 개발과 비교할 수 없는 선봉자의 사명감이라고. “우선은 입점하는 경영주가 장사가 잘되도록 관리해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건설업체가 직접 투자, 분양하면 관리는 상인들의 몫이지만 이러한 경우 자체관리는 상인들 간의 경쟁심리로 인해 전체 상가의 발전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기초상거래의 질서도 무너지고 따라서 강매행위나 공공시설 사용에 따른 소비자의 불만이 늘어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마음 고객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하상가로는 유례 없이 객장의 오픈 시간에 고객님들께 인사를 할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라는 일시적인 고객이 아니라 지하상가 전체가 하나의 객장이 되어 업주들은 서로를 인간적으로 신뢰하여 친절을 베풂으로 해서 객장 자체에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입점하시는 분들께서 처음엔 잘 이해를 못하시지만 점점 좋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한때 서울시에서는 지하상가의 불공정 행위에 불만을 토로하는 많은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지하상가 개발을 억제하는 편이었고 당시의 기술로는 지하의 환경적인 부분을 해결하기에 역부족이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상의 한계성은 인류의 마지막 개발 공간이 지하공간에 다시 눈을 돌렸고 행정당국과 대기업에서 기술적인 문제로 환경측면을 개선하였다고. 손 대표는 “소비자와 친근한 상가, 믿고 다시 찾을 수 있는 상가, 쾌적한 환경과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가는데 중점을 두고 관리, 운영이 개발 이후 지하상가 부흥을 위한 최대의 난제라고 말한다.
현재 부산, 청주, 마산, 대구의 중심부 4개소의 지하상가를 관리하고 있는 대현실업 주식회사. “28년 조심스레 올려진 대현의 깃발이 한층 더 줄기차게 나부끼는 것은 부친의 선구자적인 사명감과 집념이 응집된 결과입니다. 이제 이를 이은 대현은 도심의 문화와 생활정보 센터로서의 구심점 역할을 확고히 해낼 것입니다. 저희 대현이 다져놓은 험난하고 길기만 했던 그 길에 수많은 기업들이 무임승차로 동승하고 있지만 저희 대현은 기업들에게 정겨운 악수를 청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늦었지만 지하공간이 시민생활권의 연장으로 인식해 실상 지금껏 방치되어온 우리 국토의 일부분을 되찾았다는 기쁨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엄숙히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인간중심의 공간임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개발과 투자, 관리는 시민을 위한 일이며 상점주를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선봉장이 되어 외길만 걸어왔던 집념으로 남은 생도 저는 이 개발에 제 자신을 투자할 것입니다.” 손 대표가 후발업체들에게 전하는 이 메시지는 대현만의 자부심의 표출이자 기업인으로의 진정한 사명감이었다.
현재 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하상가의 업무로 지칠 대로 지친 손 대표. “그 전에는 지방단체의 허가를 받아 개발을 한 반면 이번 대구의 경우는 노후화 된 지하상가의 재개발의 위해 민간자본을 투자한 경우입니다. 제 고향, 저의 삶이 뿌리내린 대구지역에 남달리 애착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어떤 프로젝트보다 많은 보람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당면 과제입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말단에서부터 회사 일을 배웠기에 누구보다도 회사의 실정을 잘 아는 손 대표는 “회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직원 모두입니다. 누구나 주인의식으로 일의 주인이 될 때 좋은 결실을 얻을 것입니다. 실천할 수 있는 생각만이 빛을 발할 수 있기에 신중한 판단과 과감한 결정, 집념 있는 행동력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상가의 주인은 상가인 만이 아닙니다. 통행인이며 시민전체입니다. 이러한 주인의식으로 부친의 지하공간에 대한 믿음을 뿌리 내려갈 것입니다.” 개발의 전선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끈질긴 집념과 의지로 30여 년의 삶을 투쟁해온 손준석 대표는 이제 개혁과 변혁보다는 안정된 인간애에 눈을 돌린 듯 자신의 부친인 손현수 회장의 고향인 안동에 벌써 8여년간 서암 문화장학재단을 만들어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산업화와 기술개발은 더 나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손준석 대표의 마지막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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