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며 마주치는 산과 들판, 바다, 하늘,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은 내 친구



[시사매거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그저 감기처럼 잠깐 스쳐 지나갈 것이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코로나바이러스는 어쩌면 감기처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다시 재발할 수 있는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첫 감염자가 나왔던 지난 201912월 이후 14개월여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코로나 시대를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국가들이 국가 및 도시봉쇄에 나서는가하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제한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며, 장기간 고립된 생활에 지친 각 나라의 국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는 등산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코로나사태가 터지기 전 산에 가보면 주로 40~60대의 중장년층이 등산객의 주를 이뤘지만 요즘 20~30대의 젊은 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풍경만 보아도 확연히 달라진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또한 산과 더불어 코로나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으니 바로 제주 올레길이다.

주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한창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동안 주춤했던 그 뜨거웠던 열기가 코로나시대를 맞아 다시 재 점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래서 본지에서는 지난 2019년 태국 한 달 살기에서 500km를 걸으며 체험담을 전했던 본지 정용일 기자를 통해 제주올레길의 유명 코스들을 걸으며 느낀 생생한 체험담을 독자들에게 전하려하며, 이를 통해 보다 유익한 올레길 걷기에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편집자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사진_정용일 기자)

먼저 이번 트레킹의 주 무대인 제주 올레길에 대한 기본 정보는 간단한 검색만으로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올레길에 대한 지루한 정의는 따로 하지 않으려한다. 또한 각 코스에 대해 포털에 검색만 하면 비슷한 내용의 수많은 설명과 사진들이 넘쳐나기에 그에 대한 부연설명 및 구체적인 소개 역시 따로 하지 않기로 하겠다. 지난 태국 한 달 살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제주 올레길 트레킹의 전 과정에서 되도록 택시를 타지 않겠다는 다짐을 시작으로 보름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지난 318일 목요일, 4호선 이수역에서 동작역을 거쳐 김포공항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도착한 공항에는 생각보다 제주도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북적거리는 김포공항의 모습에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간단한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 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16개월 만에 타보는 비행기라서 그런지 약간의 두근거림과 올레길 트레킹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1시간 남짓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제주국제공항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서귀포로 가는 버스노선을 확인했다. 공항에서 서귀포중심지역인 서귀포등기소 앞까지는 대략 1시간 30분쯤 소요됐다. 등기소 앞에서 호텔까지 택시로 10분 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걷는 거 하나는 자신 있는지라 티맵 지도를 보면서 30여 분을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걸어갔다. 호텔 체크인 후 금세 날이 어둑어둑해져 저녁을 해결하러 걸어서 10분 거리인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방문했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사진_정용일 기자)

평일 저녁이라 시장이 비교적 한산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이번에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올레시장에 주로 맛집이라 불리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메인 스트리트가 있으며 그 라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뭐 하나 먹어볼라치면 줄을 서야 했고 대기 시간은 기본 30분이 소요됐다. 그래도 이런저런 음식과, 사람들, 시장풍경을 구경하는 재미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호텔에서 먹기 위해 서너 가지 포장을 해왔으며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음 날 빡빡한 트레킹 첫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설렘 가득한 첫 출발점 남원포구

드디어 제주 올레길 트레킹이 시작되는 첫 날 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부지런히 씻고 배낭을 메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첫 스타트는 5번 코스였으며 출발지점인 남원포구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해당 버스의 운행 노선이 올레길과 겹칠 경우 해당 코스 번호와 어디에서 하차해야 할지 안내방송이 나오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각 출발지점을 찾아갈 수 있다.

남원포구에 도착하니 올레길안내센터가 보였다. 그 곳에서 올레수첩 및 다양한 와펜을 구입해서 배낭에 붙였다. 안내센터 앞 간세에서 5코스 출발 스탬프를 힘껏 찍고 한껏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힘차게 출발했다.

트레킹 시작(사진_정용일 기자)

하늘에 먹구름이 낀 비교적 흐린 하늘이었지만 살살 부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고 공기도 쾌청해서 걷기에 매우 좋은 날씨였다.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휴대폰 볼륨을 한 껏 높여 가슴 포켓에 넣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시원스레 펼쳐진 해안도로를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1시간쯤 걸었을까..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걷고 해안가 옆 숲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더워져 땀방울이 흘렀다. 결국 바람막이와 후드티를 모두 벗어 배낭에 넣고 반팔 티 하나만 입고 걸었으나 오전임에도 전혀 춥지 않았다. 또 그렇게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새 그토록 나의 흥을 돋우던 음악도 서서히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흘러나오던 노래를 따라 부르던 그 넘쳐흐르던 흥도 사라졌다. 서서히 침묵이 흐르던 그 시점이 바로 남원포구에서 출발한지 3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길가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있다. 그 중 한 곳을 선택해 아침 겸 점심으로 해물라면에 밥을 한공기 말아 먹고 다시 5코스의 종착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9시에 출발한 지 5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5코스의 종착지이자 6코스의 시작점을 알리는 간세가 보였고 스탬프를 찍은 후 잠시 고민 끝에 6코스를 이어 걷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6코스의 종착지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지나 호텔이 있는 서귀포 시내였다. 따라서 호텔로의 복귀를 위해 따로 버스를 탈 필요가 없어 6코스까지 이어서 걷기로 했다.

(사진_정용일 기자)
(사진_정용일 기자)
(사진_정용일 기자)

하루 종일 정말 질리도록 걸었다. 여려 유명 관광지를 지나기도 했고 바닷길을 걷고 숲길을 걷고 돌길을 걷고 아기자기한 마을길을 걷고 논길과 밭길을 걷다 보니 서귀포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한 트레킹은 두 개의 올레코스를 모두 걸으니 오후 6시쯤 호텔에 도착했다. 보통 올레꾼들이 하루에 한 코스를 걷는 걸 감안하면 하루 두 개의 코스를 걸었던 내 자신에게 후한 점수와 맛있는 저녁을 선물하고 싶은 그런 날이자 뿌듯했던 제주에서의 첫 날 트레킹 이었다.
 

제주 강풍에 처참히 무너져버린 하루

올레코스는 보통 한 코스의 길이가 15km정도이며, 짧은 코스는 10km에서 6km의 매우 짧은 코스도 있으며 길게는 20km가 넘는 코스들도 있다. 평균적으로 15km로 가정하면 매일 하루에 두 코스를 걷는 것은 일정에 무리가 있을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여유 있게 하루 한 개의 코스만 걸으며 더 천천히 많은 것들을 보고 사진도 많이 찍기로 했다.

다음 날은 지난 5,6번 코스에 이어 7번 코스를 걸었다. 7번 코스는 수많은 올레꾼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인기 높은 올레길로써 나 또한 7코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이유인 즉, 7번 코스의 후반부쯤이었을까...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길게 펼쳐진 해안도로를 걷는 데 내륙지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말 그대로 광풍이 몰아쳤던 것이다. 또한 하필이면 그 광풍이 맞바람이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기조차 힘든 상황이었고 해안도로라서 그런지 말로만 듣던 제주 광풍의 기세는 더욱 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진_정용일 기자)
(사진_정용일 기자)

몸의 체온 또한 급격하게 내려갔고 강한 추위를 느낀 탓에 반팔만 입고 걸었던 상황에서 다시 배낭에서 후드티와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입었다. 그렇게 껴입었어도 추위를 느낄 정도의 매우 강한 바람이었다. 그런 맞바람을 맞으며 1시간 가까이 걷다보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까스로 7번 코스의 종착지에 도착한 후 내게 7번 코스는 다시는 걷고 싶지 않은 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7번 코스의 종착지 바로 앞이 버스 정류소였고 추가로 걸을 필요는 없었지만 배차간격이 길어 버스를 40여 분을 기다린 후에야 가까스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최고의 코스로 기억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지금 생각해도 가장 힘들었던 최악의 코스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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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제주 올레길을 걷다’(두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정용일 기자 zzokkoba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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