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리사이틀 ‘Romantic Sonata’ (2/27)
​​류재준 '피아노 소나타' 세계 초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리사이틀 ‘Romantic Sonata’ (사진=오푸스)

[시사매거진] 지난 2월 2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일리야 라쉬코프스키(Ilya Rashkovskiy)의 연주는 말 그대로 소리음(音) , 즐거울락(樂)인 음악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그의 표정만큼이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봄 냇가의 흐르는 시냇물처럼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흘러나온 음악들은 객석에 앉은 모두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이날 프로그램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작곡가 류재준의 <피아노 소나타> 세계 초연이었다. 

류재준 - Piano Sonata  

이 곡은 한마디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가'였다. 아무래도 피아노 한 대만으로는 부족한 듯, 여든여덟 개의 건반에 또 하나의 건반을 더한 것처럼 휘몰아치듯 쏟아내는 류재준의 음악은 거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촘촘히 짜인 그물망을 보는 것 같았다. 4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심도 있는 논문 한 권의 완성처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악보를 통째로 삼키는듯했다.

절경을 보여주는 화려한 이태리 해안 마을에서 듣는 스카를라티의 경쾌함과, 때때로 유럽 시골마을의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하는 쇼팽의 낭만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국적인 음계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듬은 다양한 모양새를 지나 무겁고 묵직한 굉음으로 점차 변해갔다. 삼십여 분 동안의 가득한 울림과 열정, 휘몰아치던 마지막은 작곡가가 세상을 향해 지르는 또 다른 절규와도 같았다.  

과거 폴란드 유학 시절, 고(故) 펜데레츠키 선생의 질문, "대위법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에 대해 수많은 고민과 거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화'라는 답변으로 합격을 받아낸 그가 이젠 자신의 음악을 통해 즐겁고 심오한 대화를 펼쳐가고 있다. 그의 모든 음악의 곳곳에 이 소통의 방식들은 매우 테크니컬하고 논리적으로 잘 구축되어 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리사이틀 ‘Romantic Sonata’ 리허설 중에서 (사진=오푸스)

류재준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는 만남은 십 년이 넘었다. 펜데레츠키의 응원과 함께 쇼팽 콘체르토를 통해 알게 된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 앙상블오푸스까지 이어졌다.

이번 세계 초연의 무대에서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를 바라보며 작곡가는 어려운 시기에 사투를 치르던 자신의 억울함과 해소되지 않은 소통의 출구를 보았을까?  

작년 한 해 가장 많은 무대를 통해서 자신의 피아니즘을 맘껏 선보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수많은 연주자들과의 협연에서 그들을 돋보이게 했던 그는 이제 대한민국 클래식계에서 가장 바쁜 아티스트가 됐다. 4월 2일 서귀포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리사이틀이 더욱 기대된다.  

그리고 작곡가 류재준은 4월 9일 앙상블오푸스의 연주로 <플루트 사중주 '봄이 오는 소리'>를, 7월에는 <2인 가극 '아파트 2021'>, 10월에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교향곡 2번>, 12월에는 <비올라 소나타>를 세계 초연으로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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